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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측 한달, 그래도 얻은 것은 있다 [수요예측편]<18>청약률 공개, 리테일 참여 유도…유효수요 기준은 숙제

황철 기자공개 2012-05-31 08:01:27

[편집자주]

2012년, 회사채 발행시장에 큰 변화가 예고됐다. 사실상 무늬에 그쳤던 대표주관사의 수요예측과 기업실사가 의무화된다. 이로 인해 관행으로 굳어졌던 수수료녹이기나 바터(barter) 등도 사라질 것으로 기대된다. 새로 도입되는 발행절차의 내용은 무엇이고 그로 인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인지 머니투데이 더벨이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이 기사는 2012년 05월 31일 08: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수요예측을 의무화한 지 한 달여가 지났다. 국내 DCM 역사상 첫 시도였던 만큼 시행착오가 적지 않았다. 시장 참가자마다 입장은 달랐지만 제도 도입에 대한 이질감만은 대동소이했다.

기업의 과도한 저금리 조달 욕구와 IB의 실적 과당 경쟁은 여전했다. 시장 컨센서스를 하회하는 밴드금리, 미매각을 감수한 유효수요 설정, 수요예측 결과 미공개 등 제도 도입 초기 발행사 우위 시장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비일비재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변화의 물결은 막을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다. 공정한 가격결정이라는 공동목표는 개개인의 노력보다 시장 전반적 분위기로 굳어졌다. 무엇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빌딩의 주체인 투자자들이 본격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일부 대형 IB를 중심으로 제살깎이식 경쟁을 지양하고 제도 정착을 위한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가 나타났다.

◇ 발행사, 투자자 과도기적 힘겨루기 시작

현재 수요예측을 완료한 기업은 한국캐피탈, AJ렌터카, STX, 신한금융지주(HB), 코오롱글로벌, 대성산업가스, SK, 성우하이텍, 현대백화점, LG엔시스, LG실트론, 두산중공업, 동부건설 등이다. 한진중공업, 한진해운, KT렌탈, 대우건설, 무림캐피탈 등 다수 기업도 희망밴드금리를 제시하고 투자자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최근까지만 해도 수요예측 과정들은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된 느낌이었다. 한국투자증권은 5월3일과 4일 한국캐피탈, AJ렌터카의 대표주관을 맡아 수요예측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KB투자증권도 4일 STX 회사채의 북빌딩을 마쳤다.

하지만 인수계약서에 수요예측 결과를 발행사와만 공유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시장에 청약률, 신청가격 분포, 유효수요 등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리지 않았다. 당시 증권사 대부분이 합의해 결정을 내렸고 금융당국과 금융투자협회도 이를 사실상 묵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한 가격결정과 발행시장 투명성 확보라는 수요예측의 취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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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약제도 자체를 사실상 부정하는 사례도 곳곳에서 나타났다. 청약과 납입이 같은 날 이뤄지는 것도 문제지만 개인투자자는 물론 기관의 추가 청약 통로까지 좁히는 일이 빈번했다. 청약기간을 1~3일로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게 했지만 대부분 발행사는 오전 9시~12시까지 단 세시간으로 제한했다.

가장 큰 원인은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려는 IB의 소극성에 있다. 소액 다건 청약으로 유무형적 비용을 치르느니 자체 인수 후 유통시장에서 소화하는 편이 낫다는 계산이 작용한 것. 이 같은 행태는 리테일 투자자를 의도적으로 배제하는 행위로도 나타났다.

대신증권과 KB투자증권은 대성산업가스 회사채를 대표주관하며 최소청약단위를 무려 100억원으로 잡았다. 단수 청약을 막아 절차상의 복잡함을 줄여보겠다는 의도. 사실상 자본력이 딸리는 개인들의 참여가 어려운 구조다.

현대백화점, 한진해운은 아예 리테일 투자자의 청약을 받지 않기로 했다. 대표주관을 맡은 신한금융투자(현대백화점)와 대우증권(한진해운)은 수요예측 후 배정액이 발행액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북 빌딩에 참여하지 않은 기관·전문투자자만 추가 청약할 수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리테일 투자자의 청약 자체를 원천 차단한 것은 이들이 처음이다.

북-빌딩의 최대 화두인 유효수요 논란은 미매각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달초만해도 비우량채에서 간간이 나타나던 미매각 이슈는 갈수록 대기업 우량채로 번져갔다.

발행사와 대표주관사가 시장 상황을 무시한 채 과도하게 낮은 금리밴드를 제시한 게 가장 큰 원인으로 분석된다. 수요예측 과정에서 밴드 상단을 소폭 벗어나기만 해도 극단값으로 치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투자자의 불만은 갈수록 쌓였고 수요예측 에 집단적으로 거부하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현재 우량 회사채일수록 발행사와 투자자의 기싸움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

◇ 시장 자정 작용 시작, 잔액인수 방식도 등장

그렇다고 앞날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시장의 자정 작업 또한 서서히 효과를 보고 있다. 수요예측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제도를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수요예측 결과를 공시하기로 한 것이다. 4월15일 도입한 '기업공시서식 작성기준'는 증권형태에 상관없이 공모가격 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신한금융지주 하이브리드채권을 대표주관하며 처음으로 수요예측 참여 건수와 물량, 청약률, 신청가격 분포 등 제법 자세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를 기점으로 이후 발행물들은 개략적이나마 수요예측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리테일 시장을 활성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은 신한금융지주 신종자본증권을 주관하며 기관·개인 청약분을 따로 나눴다. 시장에서 소외돼 있던 리테일 투자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개인투자자의 최소 청약 금액을 단돈 5000만원 수준으로 낮춰 누구나 손쉽게 채권 시장에 접근하게도 했다.

회사채 시장에서 당연시해 왔던 총액인수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도 변화 중 하나다. 동양증권은 최근 한국캐피탈·무림캐피탈 채권을 대표주관하며 잔액인수 방식을 적용키로 했다. 수요예측 도입 이후 영업구조가 바뀐 만큼 인수제도의 실질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을 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발행제도 개선으로 전체 물량이 아니라 미매각분에 대해서만 위험부담을 지고 있어 총액인수보다는 잔액인수가 법리적으로 타당하다는 해석을 내린 것.

이로써 그동안 사례를 찾기 힘들었던 잔액인수 방식의 확산 가능성이 커졌다. 기존 총액인수 방식과 영업형태가 크게 바뀔 것은 없지만 시장의 실질을 반영하려는 고민을 시작했다는 점만은 고무적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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