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2년 10월 24일 08시32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팹리스 반도체 회사 대표인 P씨는 지난 2006년 산업 스파이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당시 검찰은 디지털 카메라용 반도체 기술을 빼돌려 해외로 유출했다는 이유로 P씨를 구속했다. 대기업 출신 엔지니어들과 공모해 반도체 설계도와 공정 기술을 넘겼다는 내용이었다. 추정 손실액이 4000억 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왔다.검찰과 회사는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해외 반도체 테스트 업체와 파운드리(위탁 생산) 업체에 도면과 생산 공정을 전달한 것은 명백한 기술 유출이라는 논리였다. 회사는 검찰의 주장이 설계만 담당하고 생산과 조립, 테스트는 전문 업체에 위탁하는 팹리스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며 맞섰다.
회사는 원가 절감을 위해 해외 업체와 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의 눈 밖에 나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대기업 출신 연구원들을 영입한 것이 결정타로 작용했다. 하지만 누군가 P씨의 회사를 '찔렀다'는 심증만 있지 물증을 찾을 수는 없었다.
2006년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P씨는 퇴사 의사를 밝힌 직원들에게 '이직 금지' 서약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회사 입장에서는 산업기술보호법상 보장된 권리지만 이 때문에 당시 P씨와 직원들이 말 할수 없는 고초를 겪었던 기억이 떠올라서다.
최근 삼성전자가 중국에 차세대 반도체 공장을 설립한다는 소식을 들은 P씨는 만감이 교차했다. 그는 더이상 반도체 산업이 공정 효율 극대화로 원가를 절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인건비가 싼 중국에 공장을 세우는 것도 이해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중국은 절대 안 된다"는 게 P씨의 주장이다 삼성전자쯤 되는 대기업은 몰라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를 이용할 팹리스 업체의 기술은 '바다 건너자 마자' 유출될 것이 뻔하다는 이유에서다. 특히나 삼성전자가 현지에서 생산키로 한 낸드플래시는 중국과 한국의 기술 격차가 10년 가까이 벌어져 있다는 점에서 불안감은 커진다.
그래서 P씨뿐 아니라 많은 팹리스 업계 종사자들은 "차라리 나라에서 파운드리를 세워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해외 파운드리를 이용할 때보다 기술유출 우려도 적은 데다 반도체 업계 공룡 두 마리에게 휘둘리지 않아도 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팹리스 업계는 한 가지 묘수를 짜냈다. 정책금융공사나 국민연금공단 등에서 펀드를 조성한 뒤에 이 자금으로 파운드리를 설립하자는 것이다. 대신 경영은 전문 경영인에게 위임하고 향후 기업공개(IPO)를 통해 정부 지분을 줄여나가면 공공기관 민영화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역행하지 않는다.
이같은 바람이 당장 실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나랏돈을 수조 원은 들여야 하는데 뾰족한 명분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미래의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원동력은 기술을 가진 강소기업이라는 인식이 부쩍 커졌다. 그래서 이런 제안을 그냥 흘려버리기에는 뭔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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