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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전기의 황당한 변명

김장환 기자공개 2013-06-18 11:37:57

이 기사는 2013년 06월 13일 08:3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A사의 약속을 믿고 더리즈에 수백 억 원대 자금을 투자했는데, 단 두 달만에 물량이 끊겼다. 계속 일감이 들어올 줄 알고 한 투자였다. 무너지는 것 외에 방법이 있겠나"

'번개표'로 유명한 금호전기에 오랫동안 몸을 담은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계열사 더리즈가 워크아웃에 들어간 배경을 취재하던 과정에서 얼마 전 수첩에 담아두게 된 얘기다.

금호전기가 더리즈를 인수한 것은 지난 2009년이다. 당시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앞다퉈 호의적 분석들을 내놨다. '금호전기(소재)→루미마이크로(패키징)→더리즈(에피칩)'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가 마침내 완성됐다고 했다. 주가도 상승곡선을 그렸다.

현실은 전혀 달랐다. 더리즈는 지난해 부채가 자산을 넘어서는 지경에 몰렸다. 11월 결국 채권단과 워크아웃을 맺었다. 차입금을 갚을 여력이 없어 금융권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증권가에서 그토록 그룹 역량에 긍정적이라고 외쳐댔던 기업이, 이제는 '짐'만 되고 있다.

무너진 배경은 뭘까. 앞서 언급한 금호전기 관계자는 '갑을관계'에 빗대 설명했다. A사는 더리즈에 2011년 중순부터 에피·칩 공급을 약속했다. 이 말만 믿고 금호전기는 2010년 말부터 2년간 대규모 증설을 했다. 약속이 지켜진 것은 2012년 1~2월 단 두 달뿐. 납품처가 사라지니 회사도 순식간에 무너졌다.

그렇다고 A사에 따지지도 못했다고 한다. 또 다른 부문에서 공급 계약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양사의 '갑을관계'가 이어지고 있는 마당에,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한개 계열사가 부도 직전에 몰렸지만 말조차 못 꺼냈다. 한 마디로 '불쌍한 피해자'의 넋두리다. 그것도 한창 이슈가 되고 있는 '갑을' 문제까지 겹치니 안쓰러움이 더한다.

그러나 정작 내면을 살펴보면, 조금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일단 문제가 된 A사의 '오더(order)'다. 구두로 약속이 이뤄졌다고 했다. 2010년부터 2년 동안 총 투자비를 600억 원이나 들였다. 대부분 증설자금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만큼 자금을 쏟아 부었다. 상식을 벗어나 있다.

둘째는 시황이다. 투자가 이뤄진 시기는 이미 LED 업황이 '악화일로'에 접어들었을 때다. 2009년 LED TV 수급전망은 크게 우호적이었다. 2010년 들어 대외환경은 급변했다. LED 칩 생산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공급과잉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고, 결국 '떨이'조차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A사가 아니면 공급할 곳도 없는데 대규모 투자를 했다. 그만큼 맹목적 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를 보면 금호전기 고위 관계자가 내세운 더리즈의 실패 원인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전략적 판단이 잘못됐을 뿐이다. 2011년 순자산 115억 원이었던 회사가 6배에 달하는 투자금을 집행했다. A사의 단 한 마디 약속 때문이었다니, 황당할 정도다.

기업에게 '흥망성쇠'는 언제든지 올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취재과정에 만난 '흥'하고 '성'한 기업의 대부분은 실패에 대한 성찰에서 지금의 길을 찾았다고 말한다. 더리즈의 사례도 금호전기에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물론 '남의 탓'이 아닌, '반성'이 선행됐을 경우다. 아니면 언제 또 같은 실수가 반복될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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