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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투자는 '숙제'가 아니다

이진우 부장(산업팀장, 건설금융팀장)공개 2014-07-21 08:34:39

이 기사는 2014년 07월 18일 13: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대기업 현금 쌓아두고 투자 안한다', '법인세 깎아 줬더니 현금만 쌓아 놓는다', '더 벌고 덜 쓰는 기업들', '대기업 금고에 쌓아둔 돈 풀지 않는다' .

기업들의 투자행태와 관련해 잊을만하면 한번씩 언론에 등장하는 기사의 제목들이다. 내용도 대부분 뻔하다. 기업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사내유보금을 쌓아 놓고도 투자를 하지 않아 '나라경제가 이모양 이꼴이다'는 식이다. 얼핏 들으면 말이 된다. 그렇게 돈을 많이 벌고도 금고에 돈을 쌓아두기만 할뿐 투자를 하지 않으니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고백컨데 예전에 나도 이런 류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소위 말하는 '야마'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는 무식한 발상이다. 사내유보금이란 개념 자체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내유보금이란 기업이 벌어들인 당기이익금 중에서 배당·세금 등을 제외하고 회사에 남은 자금을 말한다. 얼핏 보면 투자하지 않고 그냥 갖고 있는 돈을 사내유보금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내유보금은 투자하지 않은 돈이 아니라 영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 중에서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은 돈을 말한다. 현금으로도 남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이미 공장이나 기계, 토지, 특허 등에 투자되어 있다. 그런데도 모두 사내유보금이라고 부른다.

기업들의 투자 부진을 굳이 나무라고 싶으면 사내유보금이 아니라 '현금성 자산'을 갖고 따져야 한다. '유보'라는 회계용어에 현혹돼 마치 유식한 것처럼 떠들면 안된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투자를 한다고 사내유보금이 줄고, 투자를 안한다고 유보금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최근 재계에서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여부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는데, '이중과세' 어쩌고 따지기 전에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입법을 추진한 의원님들이나 정부 당국자들이 무식하게도 이런 개념자체를 모르고 일을 추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앞서 얘기한 언론 기사처럼 '야마'가 되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국민들이 들으면 속이 시원할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카드를 만지작 거리고 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전문가들 역시 사내유보금에 대해 과세를 한다고 해서 투자가 늘어나지도, 가계로 돈이 흘러들어가지도 않는다고 지적한다. 다만 '투자를 하지 않고 버티는 것처럼 보이는' 대기업, 더 직접적으로는 재벌에게 '벌'을 주거나, 적어도 더 미워할 수 있는 효과는 거둘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해외에도 사내유보금에 대해 세금을 매기는 곳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국가는 대부분 '조세회피'를 막는게 목적이지 돈을 풀라고 하지는 않는다. 주주가 배당을 받으면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사내유보를 하면 낼 필요가 없어 악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몇몇 주주들이 짜고 '유보'를 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오너 기업'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그런데 지금 재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이런 폐단을 저지를 소지가 있는 곳이 아니라 대기업, 즉 재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냥 단순하게 생각하면 대기업 등기임원에 대한 연봉공개를 보면서 오너나 임원들에게 그렇게나 많은 돈을 퍼주면서 투자도 하지 않으니 말 그대로 '나쁜 기업'으로 찍히기 딱 쉽다.

정부입장에서 기업들의 투자부진이 얼마나 맘에 안들었으면 이런 생각까지 할까 이해가 되면서도 기업의 속성을 너무도 모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업들의 투자를 늘 밀린 숙제라고 생각하는 한 '논란의 악순환'은 끊어지기 어렵다.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예전처럼 대통령이 총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투자에 나서달라"고 압박(?)하는 편이 훨씬 효과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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