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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이목(同想異目)] '달콤쌉싸름한' 현대차의 8월

이진우 부장(산업팀장, 건설금융팀장)공개 2014-08-26 08:54:56

이 기사는 2014년 08월 25일 08: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8월 15일은 광복절이자 천주교의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친 뒤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불려 올라갔음을 기념하는 날로,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일 중에서 가장 큰 의미를 지닌다.

특히 올해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성모 승천 대축일을 전후해 직접 한국을 찾으면서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적지 않은 주목을 받았다. 교황은 방한 기간 동안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미사 등의 천주교 행사를 주관하면서 실의에 빠진 세월호 유가족은 물론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큰 감동을 안겨줬다.

이러한 종교·사회적 의미와는 별개로 이번 교황 방문을 긴장 속에 숨죽이며 지켜본 곳이 있다. 바로 행사장 안팎에서 교황의 '포프 모빌(Pope Mobile·교황이 타는 차)'을 책임진 현대·기아자동차다. 교황은 이미 알려진 대로 서울 성남공항에 도착하자 마자 기아차의 소형차 '쏘울(SOUL)'을 타고 이동했고, 15일과 16일에는 카퍼레이드를 하면서 각각 현대차의 '싼타페'와 '카니발' 개조 차량을 이용했다.

현대·기아차는 대표적인 자동차 모델을 이용하는 교황의 모습이 국내는 물론 수많은 나라에 생중계로 잡히면서 적지 않은 홍보효과를 누렸다. 실제로 교황이 돌아가고 난 뒤 '쏘울' 등의 판매량이 급증하는 등의 '교황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물론 현대·기아차의 행보는 무척이나 신중했다. '성스러운 영역'인 교황의 방한을 마케팅에 활용한다는 부정적 여론을 우려해서인지 이를 적극 홍보하지 않았다. 최근 우리사회의 민감한 분위기 탓에 자칫 종교나 정치적 이슈가 맞물리면 예상치 못한 역풍을 맞을 지 모른다는 위기감도 작용한 듯 보였다. 국내외 유명 연예·스포츠 스타를 활용한 마케팅에 열을 올렸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행보다.

하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전세계에 '현대·기아차' 브랜드를 알린 교황에 대한 고마움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있을 듯하다.

이처럼 교황의 '고마운 행보'가 한창 이어지던 15일,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차 노조가 임금협상과 관련한 파업 찬반투표가 70% 찬성으로 가결되었음을 국내외에 알렸다. 노조는 이를 토대로 22일 부분파업에 돌입한데 이어 23, 24일 주말 특근거부에 들어갔다. 3년 연속 파업이자, 1987년 이후 3년(2009~2011년)을 제외한 '연례파업'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거의 매년 반복되는 파업인만큼 이젠 노사간 임단협 이슈 자체도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협력업체의 신음이나 국가경제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마치 매년 10월 마지막날 라디오에서 틀어주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 같은 유행가처럼 들린다.

그저 노조는 뭐 저렇게 파업이라도 하면 더 얻어지는 게 있으니 그러겠지 하는 자조섞인 비판만 이어진다. 올해도 역시 위협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르고 달래는 노사간 줄다리기 끝에 적당한 타협점을 찾을 것이 자명하다.

그나마 올해는 "교황께서 방문해서 약자보호와 상생을 외치는데도 자기들 생각만 한다", "아직도 현대차 노조가 약자라고 생각하나본데 이번에 교황께 좀 어루만져달라고 요청하지 그랬냐"는 등의 '시류에 맞는' 조롱섞인 반응이 추가된 정도다.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만에 이루어진 교황의 방한. 1987년 이후 거의 매년 반복되는 현대차 노조의 파업. 사실 상관관계가 없는 것 같은 두개의 이슈를 '교황이 타는 차'를 매개로 오버랩 시키는 것이 무리수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씁쓸한 감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예년 같으면 임단협과 노조 파업 뉴스로 뒤덮였을 8월에 이뤄진 교황의 방한이 그나마 '파업만 하는 현대차'란 오명을 희석시키는 효과를 가져다 줬을까. 현대차 입장에서는 '교황 카' 덕분에 잠시 달콤했다가 다시 쌉싸름을 넘어 쓰디쓴 뒷맛을 남기는 8월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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