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목(同想異目) ]삼성-LG '싸움의 기술' 관전법
이진우 부장(산업팀장, 건설부동산팀장)공개 2015-02-26 10:08:06
이 기사는 2015년 02월 25일 08:2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00년대 중반 전자업계를 출입하던 시절. 삼성과 LG쪽 취재원을 만나면 서로 다른 말을 하곤 했다. 이를테면 삼성 사람을 만날 때면 "우리집 가전제품은 대부분 삼성"이라고 하고, LG쪽 사람을 만나면 "LG 가전제품을 애용한다"고 하는 식이다. 경쟁사 제품을 쓰고 있다고 뭐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취재원을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이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실제로 집에서 쓰는 가전제품이 어디 브랜드인지 자세히 살피지는 않았지만 삼성·LG·중소기업 등 여러 가전회사의 제품이 섞여 있는 듯 하다).삼성과 LG의 자존심 싸움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당시에도 해외 유명 가전이나 IT 전시회 취재를 가면 크고 작은 신경전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세계 최초' '세계 최대' '세계 최소' 등등 글로벌 톱의 언저리를 들먹이며 경쟁적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방의 '세계 최초' 등을 깎아 내리곤 했다. 급기야 양측 홍보 관계자들이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이는 일도 벌어졌다. 출입기자들도 양측 눈치를 살펴야 했을 정도였다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최근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양측의 세탁기 싸움도 정도의 차이만 있지 역사적으로 별반 새로울게 없다. 주변에서는 "글로벌 기업에 걸맞는 품위를 지켜라", "집안 싸움으로 남(해외 경쟁기업) 좋은 일만 시키는 것 아니냐" 등의 점잖은 충고가 쏟아지지만 이러한 지적질 역시 잔소리에 불과할 뿐이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러냐"는 식이다. 이는 내가 옳다고, 또는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삼성은 LG쪽 잘못이 명확한데 쌍방과실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 한다. LG쪽 역시 억울함을 넘어 반드시 무고함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태도다.
삼성과 LG는 서로 공·수를 바꿔가며 잊을만 하면 한번씩 이런 식의 자존심 싸움을 벌여 왔다. 언론에서는 사돈지간인 양측의 해묵은 갈등을 46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스토리 텔링에 열중한다. 삼성전자가 1969년 전자산업에 진출하면서부터 LG(당시 금성)와 틈이 벌어졌고 이후 40년 넘게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는 식이다. 과거 싸움의 사례를 일목요연하게 표로 정리해 보여주기도 한다. 냉장고, 에어컨, 휴대폰, 디스플레이 장치 등 싸움의 대상이 되는 제품도 아주 다양하다.
이쯤 되면 여론은 승자와 패자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이번에 누가 이기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싸움의 패자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싸우지 말라고 거듭 충고하지만 사실 싸움구경 자체에 흥미를 느끼는 시선도 부지기수다. 결과적으로 양측의 이번 세탁기 싸움 역시 '46년 전쟁'의 역사에 한가지 사례가 더 추가된다는 것 정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승패를 지켜본 뒤 승자의 제품을 굳이 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말리면서 즐기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어정쩡하게 봉합하는 것보다는 끝까지 법정소송을 통해 승패를 가리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법적으로 승패가 가려지면 그에 상응한 처벌을 받으면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어느 한쪽이 공개적으로 시원하게 사과할 것으로 기대하지도 않는다. 법적으로는 내가 이기거나 졌지만 숨은 진실을 보면 내가 옳다고, 내가 억울하다고 생각할테니까.
사실 따지고 보면 '집안 싸움'으로 규정해서 그렇지 크게 보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거대기업간 다툼으로 봐도 무방하다. 툭하면 특허 소송을 벌이는 글로벌 업체들간 신경전이 싸움에 휘말리지 않기 위한 더 나은 제품과 기술개발로 이어지는 순기능을 하는 것도 무시해선 안된다.
같은 맥락에서 감정 섞인 자존심 대결 보다 기술개발 경쟁을 펼쳐야 한다는 공자님 말씀같은 충고가 줄을 잇지만 반대로 이런 신경전이 서로 책을 잡히지 않기 위한 경쟁으로 이어진다면 뭐 썩 나쁘게만 볼 일도 아니다. '집안 망신'이라며 무작정 창피해 하지 말고 느긋하게 '별들의 싸움의 기술'을 관전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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