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5년 03월 24일 09:1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전리품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에서 적에게 빼앗은 물품'을 일컫는다. 기본적으로 '망쳐 놓다' '약탈하다'를 의미하며 '탈취물', '노략물(노략질한 물품)'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정치 역시 '정권'을 잡기 위한 전쟁인만큼 쿠테타나 혁명을 통해서든, 선거를 통해서든 정권을 잡으면 이루 헤아리기 어려운 유무형의 전리품을 거두게 된다. 아니 '정권' 그 자체가 전리품이다. 따라서 정권은 스스로 리스트를 만들어 기여도에 따라 논공행상을 벌인다.그런데 이 '정권 전리품'의 목록에 거대기업 포스코가 포함된 것은 기이한 일이다. 정확한 의미로는 '인사 전리품'의 대상이다. 정권이 바뀔때마다 수난을 겪었던 역대 경영진들 역시 전리품의 수혜자이자 희생양이었다. 정권지형이 바뀌거나 권력 실세의 눈밖에 나면 가차 없이 내쳐지는 일이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물론 수많은 공기업은 물론 정부 지분이 전혀 없는 금융권에서도 이같은 일은 다반사로 일어난다.
최근 포스코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지켜보는 대다수 사람들은 잠시 잊었던 '역시나 포스코는 정권의 전리품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어차피 한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는 식이다. 포스코 임직원들조차 전리품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참담함을 느끼면서도 검찰 수사에 대해서는 의외로 담담한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그 이유는 말 그대로 '새삼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가지 덧붙이자면 과거와는 달리 현 경영진이 아닌 '직전 경영진'이 칼날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과거 정권이 바뀔때마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 내지는 사정당국의 수사를 받아 왔는데 설마 조직적으로 부정한 일을 저질렀겠냐는 조심스러운 자신감도 엿볼 수 있다. 정준양 전 회장은 내부에서도 그리 신망이 두터운 편이 아니다. "그런(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일을 벌일만한 배포도 없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그렇다면 과연 정준양 전 회장 재임 시절 포스코는 비자금 조성 등을 포함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비리들을 저질렀을까. 포스코의 한 임원은 "일부 개인 차원의 비리는 있을 수도 있지만, 비자금 조성 등 경영진의 조직적인 비리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경영상 판단의 잘잘못에서 비롯돼 법리다툼이 필요한 혐의 등은 충분히 불거질 수 있지만 그 이상의 범죄 행위는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영진 차원의 비리가 실제로 발각된다면 정 전 회장은 속된말로 '용감무식'한 경영자란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다. 오늘 날의 검찰 수사를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변수는 있다. 검찰 수사의 칼끝이 단순히 정 전 회장을 필두로 한 과거 경영진만을 향하고 있지 않을 경우다. 재계와 법조계 안팎에서는 이미 MB의 친인척을 포함한 과거 최측근 실세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무엇인가 나올 때까지 계속 털어댈 것이고, 그 와중에 포스코는 외풍에 흔들리며 경영상 큰 차질이 우려될 수 밖에 없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취임 이후 '철강 본연 경쟁력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역으로 말하면 전 경영진이 본업인 철강 외에 샛길로 접어들어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재무구조에도 많음 흠집을 냈다는 비판과 기업 차원의 자성이 깔려 있다. 하지만 경영 판단의 잘잘못과 기업의 비리를 같이 묶어서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검찰 수사를 무작정 '불순한 의도'로 몰아가며 비판할 생각은 없다. 비리에는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다만 수사는 포스코 안팎에 미치는 파장을 감안해 최대한 신속, 정확해야 한다. 혹시 이번 수사를 통해 노리는 것(?)이 있더라도 거기에 집중해서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정치적'이라는 오해섞인 검찰 수사를 받는 포스코 회장이 더 이상 나와서는 안된다. 현재의 '권오준 체제' 는 태생부터가 정치색에 물든 과거 경영진과는 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만큼 이제부터라도 '전리품'이라는 치욕스런 꼬리표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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