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 시장의 흑역사 '2003년 카드위기' [한국의 NPL시장]③신용위기 직전의 호황…카드업계 구조조정과 연이은 투자 실패
강예지 기자공개 2015-11-19 16:03:52
이 기사는 2015년 11월 10일 17:1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길거리 모집'. 2000년대초 국내 카드업계의 영업행태를 나타내는 키워드다. 소비 진작을 겨냥한 정부의 다양한 신용카드 활성화 대책과 카드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2001년 국내 소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린 트리거였다. 2001년 한 해 국내 소비자의 신용카드 사용액은 400조 원을 넘어서 전년 대비 80% 이상 급증했다.#카드사 최대의 호황기였다. 상위사 LG카드의 2001년 신용카드 실적은 전년 대비 2배 이상 늘어 98조 원을 넘어섰다. 삼성카드는 영업수익 3조 3800억 원, 순이익 6000억 원이라는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2003년 3월 국내 금융시장에 신용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2001년 카드산업이 급격히 팽창함과 동시에 카드회사들은 불어난 부실채권을 털어내려했고, 투자자들은 시장에 갑자기 등장한 카드채권을 반겼다. 투자자들은 부실자산 디스카운트를 반영한 것으로 여겼지만 결론적으로 대거 손실을 피하지 못했고, 카드회사들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겪었다. 카드대란은 부실채권 시장 최악의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2003년 1분기 카드채권 정점…위기 직전 쏠림
카드론과 카드대금 등 개인 신용 무담보 채권은 2001년 시장에 처음 등장했다. 조금씩 팔리던 카드채권 물량이 정점을 찍은 것은 2003년 1분기, 국내 금융시장에 신용위기가 불거지기 직전이다.
부실채권 시장에 공급이 불어난 점은 다급했던 카드회사의 상황을 방증한다. 당시 전업 카드사인 삼성카드와 현대카드, 은행계 카드사인 국민카드 등 금융회사의 부실채권이 풀(pool)로 묶여 매각됐다. 수조 원의 단위였다. 상각채권과 연체채권, 일부에서는 담보는 이미 팔아버린 채권 등 히스토리를 추적하기 어려운 자산들이 시장에 뒤엉켜 풀렸고, 조 단위를 얹어 투자해달라 했다는 카드사의 여담도 들려온다.
위기 수준의 심각성이 부각되기 직전까지도, 시장이 늘어나는 카드채권을 반겼다는 점은 흥미롭다. 투자 경험이 없어 자산의 질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던 카드채권은 통상 10%후반에서 20%대 안팎의 가격에 거래됐다. 카드회사로서는 이미 부실화된 자산이었지만 기대보다 좋은 값에 매각되자 입찰매각에 관심이 쏠렸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조흥은행은 분기별로 상각한 지 얼마 안된 '따끈따끈'하다는 채권을 시장에서 매각했다"며 "당시 현대카드도 최근 연체된 채권을 위주로 매각했다. 회수율이 높을 것이란 예상때문에 30%에 거래됐고 이는 시장 최고가로 회자되고 있다"고 말했다.
◇론스타·SSB 등 투자 실패 속출…"소매여신은 쳐다보지도 말라"
당시 카드채권에는 일부 저축은행과 자산관리회사(AMC) 등 국내 투자자 외에도 골드만삭스와 론스타, 살로만스미스바니 등 외국계 투자자들이 투자했다. 초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투자자들도 여러 사례가 나타나자 카드채권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2003년 론스타는 삼성카드와 외환카드, 우리카드 등으로부터 원금(OPB) 기준 약 2조 원 가량의 카드채권을 20%대의 가격에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는 20만 명 상당의 개인 차주를 분석하기 위해 새 프로그램을 구축했고 탄탄한 평가체계를 만들었다. 또 여러 명의 인원을 투입해 별도의 조직을 만들어 채권의 회수·자산관리 업무를 전담하게 했다.
론스타의 투자 실패는 시장참여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카드채권 투자 당시 펀딩을 제공받은 은행에는 가까스로 원금을 돌려줬지만 정작 론스타는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론스타의 한국 투자 중 유일하게 손실을 기록한 사례다.
살로만스미스바니와 랜드리스도 론스타와 비슷한 시기에 10%대 후반의 가격으로 카드채권에 대거 투자했지만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예상했던 현금흐름이 나오지 않자 골드만삭스 등 일부 투자자는 매입했던 카드채권을 다시 매각하고 투자에서 손을 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외국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소매여신은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2003년 하반기 투자자들의 카드채권 손실이 가시화됨과 동시에 LG카드와 외환카드, KB국민카드 등의 부실문제가 크게 불거졌고 금융시장 위기론이 퍼졌다"며 "은행권이 카드회사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끊었고, 카드회사들이 합병 또는 외부 매각을 통해 정리된,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말했다. 이어 "경쟁 투자자의 카드채권 투자와 시장에 쏟아지는 물량 등에 자극을 받고 투자했다가 손실을 본 뒤로는 (카드채권은) 쳐다보지도 않았다는 투자자도 있다"고 말했다.
◇카드업계의 구조조정…금융시장 되돌아본 계기
카드회사들은 치솟는 연체율과 대규모 적자를 피할 길이 없었다. 2003년 비씨카드를 제외한 모든 카드사가 적자를 기록했다. LG카드와 외환카드, 우리카드, 삼성카드 등 4개 회사는 1조 원 이상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했고, 8개 전업 카드사의 당기순손실은 10조 5000억 원에 가까웠다. 2003년말 관리자산을 기준으로 총 채권에 대한 1개월 이상 연체율은 평균 14.05%로 2002년말 보다 8.09%포인트 상승했다.
증자와 후순위채 등으로 카드업계가 4조 원 이상의 자본을 확충하고 자산규모를 줄이려 노력했음에도 카드업계의 자본적정성은 급격히 나빠졌다. 이가운데 외환카드는 외환은행에, 우리카드는 우리은행에 합병됐고 LG카드는 채권은행단의 출자전환이 이뤄지는 등 카드업계는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악성채무로 고생하기는 부실채권을 사간 투자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카드채권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분석모델과 방대한 통계를 근거로 합리적인 가격을 냈지만,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연체율 등은 부실채권 평가론은 물론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다시 보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불황일 때 부실채권에 투자기회가 있다지만 경기가 바닥을 모르고 나빠지면 수익이 날 수가 없다"며 "무분별한 카드발급과 시장의 쏠림현상, 이어진 카드사태 등 금융시장 위기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카드채권 투자로 느낀 바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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