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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회사 죽이기 [thebell desk]

문병선 기자공개 2015-12-16 09:43:51

이 기사는 2015년 12월 15일 07:3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요즘 카드회사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는 지를 알고 나면 수수료 인하에 따른 시장 원리 침해 논란에 휩싸인 카드업계를 다시 보게 된다. 신용카드 사용과 관련 중소상인을 위한 정책이 연이어 입안되고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전혀 중소상인을 위한 정책이 아니고, 되레 카드 소비경제를 침체시켜 결국 중소상인이나 카드회사 고객 모두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 올 수 있는 정책들이 입안되고 있어 우려가 깊다.

카드회사가 발행한 선불카드 미사용잔액(낙전·落錢)이라는 게 있다. '낙전'을 말하는 것으로, 이 '낙전'이란 선불카드 고객이 시효가 지나더라도 소비에 사용하지 않고 남긴 선불카드 잔액을 말한다. 10만원짜리 선불카드를 지인으로부터 받아 그 중 9만8000원을 쓰고 나서 나머지 2000원을 소멸 시한이 지났는데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게 바로 낙전이고 카드회사 수익으로 귀속된다. 금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이런 선불카드 미사용잔액은 연간 약 51억원이다.

그런데 카드회사의 낙전 수익을 카드회사가 수익으로 잡기 전에 특정 재단에 기부하도록 강제하는 법안이 발의됐고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다. 이상직 의원의 여신전문금융업법 개정안(2015년 7월13일 제안)에 따르면 카드회사의 낙전 수익을 여신전문금융협회에서 설립한 기부금관리재단에 기부하도록 하고, 이를 기반으로 협회가 카드결제 승인업무를 대행하는 전자금융보조사업자(VAN사)를 설립하는데 사용된다. 이 법안은 언뜻 보면 카드회사가 고객 몰래 주머니 속에 챙긴 낙전 수익을 되찾아 와 중소상인의 카드결제수수료를 줄여주는 데 사용하는 혜안처럼 보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데 논란이 생긴다.

카드회사 입장에서 선불카드는 그저 손해보며 서비스해야 하는 상품이다. 카드회사들은 가맹점주에게서 선불카드결제수수료를 원하는 만큼 받지도 못하고 발행 비용, 전표 관리 비용을 직접 들여 이 선불카드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선불카드 발행 및 유지 비용을 발행시점에서 비용으로 처리하고 시간이 지나 낙전이 생기면 그 때 수익으로 잡는다. 회계적으로는 시차를 두고 수지를 맞추는 시스템인데, 법안은 마치 카드회사가 직불카드 발행 초기부터 '낙전율'을 계산해 수지타산을 맞추고 이를 마치 딴 주머니를 챙기는 양 바라보게 한다.

우리나라처럼 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국가에서는 카드 사용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주는지 카드회사 고객들은 잘 알지 못한다. 워낙 오랜기간 무료로 사용하다보니 '무료'에 익숙해져 있어 카드회사가 제공하는 부가서비스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선불카드 낙전 수익을 카드회사가 챙겨갔다는 말이 나오기만 해도 카드회사가 고객의 부를 빼돌려 배를 불리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고, 입안된 법안도 같은 배경에서 발의된 것으로 보인다.

유효기간 내에 사용되지 않은 신용카드포인트를 '신용카드포인트 관리재단'으로 귀속시키자는 김을동 의원의 발의안(2015년 7월17일 제안)도 비슷한 맥락이다. 신용카드포인트는 카드회사가 포인트 충당부채를 쌓으면서까지 카드회사 순수 자금으로 고객들에게 현금과 비슷한 금전적 혜택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카드회사는 포인트를 제공할 때마다 일정 비율의 충당부채(손실)를 회계적으로 잡고 있고, 시효가 지나면 이미 쌓아놓은 부채를 환입해 이익으로 잡는다. 그런데 정치인이나 일부 고객은 이 포인트를 카드회사가 부당하게 챙기는 이익 쯤으로 치부해, 카드회사의 이미지를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정부는 연매출 3억원 이하 '영세 가맹점'의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율을 1.5%에서 0.8%로 대폭 낮추기로 결정했다. 6700억원 가량의 카드회사 연간 수익을 감소시키고 반대로 6700억원 가량의 중소상인 연간 수익을 증대시키는 결정이라고 홍보되고 있다. 마치 국민에게 큰 혜택을 돌려주는 것처럼 거리에는 큼지막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대동소이하지만 정부의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율 인하 방침 역시 중소상인을 위하는 정책일 지 몰라도 카드사를 죽이는 정책이고, 궁극적으로 중소상인과 카드 소비자들의 부담을 보이지 않게 요구하는 정책임을 주의해야 한다. 카드회사들은 당장 카드 고객에게 제공했던 서비스, 예컨대 포인트제공 서비스 등을 줄여 6700억원 가량의 수수료 수입 감소 부담을 경감시키려 머리를 짜내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종국엔 카드회사가 망하거나, 카드 소비자가 카드 사용에 대한 부담을 모두 져야 하는 시대가 도래할 지 모른다. 그렇다고 중소상인들이 고마워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은 더 많은 수수료율 인하 정책이 나오길 지금도 주장한다.

민간기업의 수수료 체계는 민간기업이 자율적으로 시장 메커니즘에 따라 결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시장의 원리를 꺼낼 필요도 없다. 카드회사 수수료율 체계를 정부가 결정하는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지적은 정말 많았다. 뭐든 다 알아서 하되, 말도 안되는 법안은 자제해주고 살 길만 열어달라는 게 카드사들의 하소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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