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롤모델은 존 템플턴" [취중FUND談] ①배준범 한국밸류운용 자산운용1본부장
박상희 기자공개 2016-10-31 09:30:00
[편집자주]
펀드매니저의 세계는 냉정하다. 수익률이라는 숫자 앞에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펀드 매니저 역시 수익률이 잘 나오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속상한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살아간다. 펀드 좀 운용한다는 '고수'들을 만나 펀드 '희노애락'을 들어본다. 인터뷰 대상은 매니저 경력 10년 이상, 동일펀드 운용 경력 3년 이상으로 제한했다.
이 기사는 2016년 10월 27일 13: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채원 부사장과 가장 큰 차이점은 미래를 보는 관점이다. 이 부사장은 미래를 보수적으로 보는 데 반해 나는 낙관적으로 본다. 롤 모델로 삼는 투자자도 다르다. 이 부사장이 워렌 버핏 스타일이라면 나는 존 템플턴을 존경한다. 실제 포트폴리오에서도 차이가 있다. 경기민감주를 좋아하는데, 업황 안 좋을 때 사놓고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스타일이다. 템플턴이 살아 있었다면 한국의 조선주, 은행주, 포스코를 많이 사지 않았을까 싶다."'이채원 키즈(kids)'. 가치투자의 대가로 불리는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부사장(CIO) 밑에서 도제식으로 가치투자 수업을 받은 펀드매니저를 이르는 말이다. 배준범 한국밸류운용 자산운용1본부장(·사진)도 이 부사장과 16년의 세월을 함께 한 대표적인 이채원 키즈다.
지난 25일 저녁 서울 여의도의 한 전골식당에서 만난 그는 이 부사장을 펀드 매니저 스승으로서, 인생 선배로서 존경한다면서도 펀드 운용 스타일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채원 키즈란 수식어는 펀드매니저로서 '배준범'을 가장 잘 설명해 줄 수 있는 단어이면서 동시에 그가 넘어서야 할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 "친구 따라 주식 투자...이채원 부사장과 16년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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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본부장은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속담처럼 주식 투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가 펀드매니저가 된 것은 우연과 행운의 합작품이었다.
"주식 투자에 처음 나선 게 1998년이었다. 친구가 주식시장이 안 좋을 때 투자해야 한다면서 꾀였다. 과외비로 모아 놓은 종자돈 300만 원이 있었는데 150만 원은 예금통장에, 나머지 150만 원은 주식에 투자했다. 당시 예금 금리가 18% 정도 됐으니까, 주식 투자로 돈을 많이 벌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그런데 코스피가 300포인트에서 1000포인트까지 오르는 행운이 따랐다. 당시 투자했던 종목 중의 하나가 고려개발이었다. 당시 주가가 3000원에 주당순이익이 1500원으로, PER(주가순이익비율)이 2배에 불과했다. 어떻게 보면 처음부터 가치투자를 실천한 셈이었는데, 그 종목이 6배 이상 올랐다."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인 배 본부장은 광고회사 입사를 희망했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의 한파 탓에 신입사원을 뽑는 곳이 없었다. 금융권에서 유일하게 직원을 뽑았던 삼성생명에 입사해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연수를 마친 이후 동원증권으로 적을 옮겼다. 인생의 '멘토'라고 할 수 있는 이 부사장과의 인연이 시작된 곳이다.
"이 부사장과 20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16년을 줄곧 같이 일해 왔다. 긴 시간 동안 함께 하면서 느낀 건 사람 본성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부사장이 화를 내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최웅필 KB자산운용 본부장을 비롯해 많은 이채원 키즈가 회사를 떠났지만 나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부사장을 모시고 경험해 온 조직 문화가 좋다. 최근에 이 부사장과 담배를 피면서 왜 그렇게 삼성전자를 일찍 다 팔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이런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상사를 모실 수 있다는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배 본부장은 이 부사장 밑에서 도제식으로 가치투자 교육을 받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다고 했다. 이 부사장은 지난해부터 저성장 국면이 오래 갈 것으로 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가 힘드니 썼던 물을 정수해서 재활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이른바 퀄리티 스톡(quality stock)론이다. 배 본부장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부사장은 미래를 보수적으로 본다. 이 부사장뿐 아니라 가치주펀드를 운용하는 많은 매니저들의 관점이 보수적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성장이 끝났다는 뷰에 동의하지 않는다. 보통 선진국이 되면 성장이 느려진다고 하는데, 이걸 일반화하지 말고 세분화해서 봐야 한다. 선진국도 미국식 모델이 있고, 유럽이나 일본 같은 유형이 있고, 독일 같은 스타일도 있다. 비관론자들은 우리가 유럽이나 일본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하는데, 나는 독일식으로 간다고 본다. 인구 고령화 및 저출산으로 내수가 활력을 잃어도 수출이 잘 되면 풀리는 구조다. 수출이 살아나려면 역시 조선, 철강, 화학 같은 경기민감주들이 살아나야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이들 산업이 결국 재기할 것이라고 믿는다."
◇ "오타쿠적 기질을 자극하는 건 주식·야구·역사책"
배 본부장은 한국밸류운용 설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계속해서 리서치 헤드를 맡고 있다. 신입사원을 교육시켜 쓸만한 펀드매니저로 키우는 것도 8할이 그의 몫이다. 최근 이채원 키즈가 회사를 떠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아쉬움과 속상함은 어쩔 수 없었다.
"올 봄에 홍진채 매니저가 회사를 옮겼다. 공채 1기였는데, 많이 아끼던 후배였다. 회사 내에서 말이 많긴 했다. 가치투자 회사에서 왜 자꾸 성장주에 투자하느냐는 얘기가 나왔다. 홍진채 케이스처럼 두드러지진 않더라도 회사 투자 철학과 미묘한 차이로 회사를 나간 후배가 많다. 가치투자 전문 하우스이기 때문에 그들이 하고 싶어 하는 성장주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못주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체질에 안 맞는 걸 계속 하라고 붙잡고 있을 수는 없지 않나."
한국밸류운용 창립 멤버이기도 한 배 본부장은 회사가 선호하는 인재상으로 '오타쿠' 기질을 꼽았다. 오타쿠는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어다. 그는 "학교 성적이나 스펙은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다"면서 "주식에 미쳐 학교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면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배 본부장은 본인의 오타쿠 기질을 자극하는 것들로 주식, 야구, 역사책을 꼽았다. 주식이야 본업이니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터. " LG 트윈스의 전신인 MBC 청룡 어린이 야구단 출신이다. 시즌 중에도 LG 경기는 다 챙겨본다. 전날에도 잠실야구장에서 LG와 NC의 경기를 보고 왔다. 경기 시작부터 경기가 끝나고 12시가 다 되도록 야구장에 있었다."
역사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최근 임진왜란 관련된 책을 읽었는데, 왜적들이 걸어서 15일 만에 부산에서 한성까지 도달했다고 하더라. 지금도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어 올라온다고 하면 2주 안에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 그 옛날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지 상상해봤다."
역사책을 읽는 게 운용에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숫자로 보이지 않는 정성적인 부분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상상력이 중요하다. 좋아하는 종목 중의 하나인 현대자동차를 예로 들면 외환위기 이전만 해도 자동차 메이커 글로벌 순위가 20위권이었는데 10년 만에 5위권으로 올라섰다. 이런 건 회계나 숫자만으로 설명이 안 된다. 상상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런 이면의 스토리를 알아가는 게 즐겁고 재밌다. 역사 장르 책을 읽을 때와 비슷한 쾌감이다."
그가 취중펀담 인터뷰 장소로 선택한 곳은 그의 단골 식사 집이었다. "아마도 여의도에서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많이 찾은 식당일 것이다. 신입사원 환영식도 여기서 하고, 회식도 여기서 한다. 술을 못 마시기 때문에 술집은 잘 가지 않는다."
배 본부장은 체질적으로 술을 마시지 못한다. 조부, 부친, 형까지 모두 술을 입에도 못 댄다고 한다. 술을 조금이라도 마시면 온 몸이 빨개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2시간의 인터뷰를 마친 그의 옆에는 김 빠진 맥주잔이 남아 있었다.
◆배준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자산운용1본부장 약력
△1973년생
△1999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99년 동원증권 기획실
△2001년 동원증권 주식운용부
△2006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주식운용부장
△2013년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자산운용1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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