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일방통행, 피로감 쌓이는 금감원·은행권 가계부채 점검 시점 제대로 된 협의 없어, '보고 위한 검사' 잡음
김장환 기자공개 2018-02-28 09:36:37
이 기사는 2018년 02월 26일 11:1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은행의 갑작스러운 은행권 가계대출 점검 요구로 금융감독원이 업무 과부하에 걸렸다. 지난해 말부터 은행들에 대한 별건 검사를 이어오던 중에 한국은행 요구로 어쩔 수 없이 겹치기 검사를 진행하게 됐기 때문이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국내 은행권 가계대출 검사에 돌입했다. KB국민·신한·우리·부산은행 등 복수 시중은행이 검사 대상에 포함됐다. 한국은행 요청으로 지난 20일 시작된 이번 검사는 내달 중순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은행권은 이로 인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금감원 검사가 지난해 말부터 이달 들어 까지 쉴새없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3~4개월 사이 금감원의 승계 프로세스 점검에서부터 채용비리 검사, 지배구조 검사 등이 은행권 전반에서 진행됐다. 은행권에서는 가계부채 점검까지 갑작스럽게 시작되자 "유례 없는 검사 릴레이"란 말도 들린다.
정작 금감원 내부에서도 "부담스럽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은행권을 상대로 이처럼 단기간에 전방위 검사를 잇따라 단행한 사례는 많지 않다. 금감원 역시 은행권이 지나치게 잦은 검사로 인해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아울러 금감원은 최흥식 원장이 지난해 9월 부임하자마자 개별 검사가 지속되면서 은행권이 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높일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우려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금감원은 애초 지배구조 검사를 끝으로 별건 검사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했다. 은행권을 향한 압박 수위를 낮출 필요성이 내부에서도 꾸준히 제기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가계대출 점검을 갑작스럽게 요구하면서 추가적인 검사 착수가 불가피했다는 후문이다. 금감원 은행국 직원들도 이로 인해 쉴 틈도 없이 재차 은행 현장에 나갈 수밖에 없게 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배구조 검사에서 나오는 지적사안을 토대로 추가적인 검사를 벌일 가능성은 있었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 이어진 검사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향후 은행권 별건 검사 일정은 하반기 등으로 조율해야 할 필요성이 금감원 내부에 거론되고 있었다"며 "하지만 한국은행 요구로 계획했던 일정이 모두 꼬였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검사를 요구하면 금감원으로서는 이를 거절할 수 없다. 한국은행법 제28조(통화신용정책에 관한 의결) 14항에는 '금융감독원에 대한 금융기관 검사 및 공동검사를 요구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고 '다만 통화신용정책의 수립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로 한정한다'는 제한조항이 달려 있다. 은행권 가계대출은 통화신용정책 수립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행이 이에 대한 검사를 요구하면 금감원은 반드시 따라야 한다.
물론 금감원이 진행 중인 각종 검사 일정을 토대로 시기를 조율할 수 있지만 한국은행이 '일방통보'식으로 검사 시점을 잡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권에서는 심지어 이번 가계부채 점검을 두고 왜 은행들의 검사 일정을 다르게 해야 하는지 금감원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마저 들린다. 한국은행이 이번 검사에서 KB국민은행만 7일을 할당하고 나머지 은행들은 조사 일정을 5일로 잡아둔 것에 대한 잡음이다.
금융권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검사를 요구하면 협의는 하지만 금감원에 제대로 된 이유를 알려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일정을 잡는 경우가 많고, 또 금감원은 이를 법적으로 거절할 수도 없다"며 "국민은행 가계부채 검사 일정을 7일, 나머지 은행은 5일로 했는데 그 이유조차 금감원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있고, 한국은행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해주지도 않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국은행 측은 이에 대해 "가계부채 점검은 1년에 4차례 정도 나가고 있고 항상 비슷한 시점에 가고 있어 (금감원이) 예상을 못했다는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작년 12월부터 계속 얘기를 했던 부분이고, 유선통보와 이메일로 꾸준히 협의했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은행이 '보고를 위한 검사'를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금감원과 은행권 피로감만 높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지난해 말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내놓은 이후에도 부동산 가격이 잡히지 않자 이에 대한 보고꺼리를 만들기 위해 무리하게 서둘러 검사 일정을 잡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더구나 한국은행은 지난해 금감원과 공동으로 이미 수개 은행에 대한 가계부채 점검을 벌였음에도 불과 1년도 안돼 재차 이를 계획했다.
앞서와 또 다른 관계자는 "금감원이 진행 중이던 지배구조 검사 등이 이로 인해 올스톱될 정도"라며 "한국은행이 금융통화위원회 보고만을 위한 검사를 무리하게 계획하면서 금감원과 은행권 양쪽 모두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은행이 제대로 된 협의 없이 금감원에 일방통보 식으로 검사 일정을 잡기를 요구하면서 비롯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은행 같은 관계자는 "공동검사는 한은법 등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고 있고 금감원과 조율을 잘해 나가고 있다"며 "금감원과 상호 협의 하에 (검사 일정을) 반영한 것으로 법적으로 금융통화위원회 의결을 토대로 진행하는 검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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