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05월 21일 08:5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달 전 만났던 금융업계 관계자는 주택도시기금에 관한 비밀이라며 이야기를 하나 해줬다. 그는 금융사들의 전담운용사 지원 여부가 마감 당일 눈치게임에 달렸다고 했다. 쉽게 표현하자면 국가대표 선수들이 선수촌에서 몇달간 훈련해놓고 당일 상황에 따라 출전여부를 결정한다는 얘기였다. 그것도 본인 선택이 아닌 다른 선수들의 동향을 보고 말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설마는 현실이 됐다. 지난주 조달청에 전담운용사 제안서를 접수한 금융사는 다섯 곳에 불과했다. 그마저 운용사 부문은 미래에셋자산운용만 단독 지원해 유찰됐다. 삼성자산운용은 접수 장소까지 가놓고 현장에서 발길을 되돌렸다. 앞서 기자가 들었던 얘기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사정을 들어보니 이들도 나름의 이유는 있었다. 삼성자산운용을 포함해 최종 불참을 결정한 곳들은 '기울어진 운동장'에 상황을 비유했다. 주택도시기금은 정량평가를 매기는 방식으로 '표준화 점수법'을 쓴다. 경쟁자가 많아야 상위권과 점수 격차를 좁혀 정성평가에서 판을 뒤집을 수 있다. 지원자가 적은 이번 경기는 기존 전담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이기는 게임이라고 했다.
자금을 집행하는 국토교통부가 이런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 기자가 평가방식을 둘러싼 업계의 우려를 전달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국토부는 "다른 기금도 이런 식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눈치싸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42조원을 유치하는 경쟁에 금융사들이 이렇게 나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테다.
이보다 재미있는 건 이번 사태를 대하는 이해관계자들의 태도다. 수의계약으로 가기 위해 계속 유찰되기를 바라는 곳이 있는가 하면, 러닝메이트의 등장을 바라는 곳도 있다. 다자 구도를 형성한 증권사와 국토교통부는 잡음을 줄이기 위해 말을 아끼고 있다.
주택도시기금은 임대주택을 건설하려는 주택사업자나 집을 마련하려는 개인들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금의 출처는 국민주택채권, 청약저축 등이다. 금융사들에게는 회사의 입지를 높여주는 사업에 불과하겠지만 국민들에게는 주거의 질을 높여주는 사회적 안전판이다. 이런 기금을 두고 각 사들은 기싸움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이달 말까지 제안서 접수를 다시 받는다. 이번에 또 유찰된다면 수의계약으로 넘어가거나 재공고를 해야한다. 얼른 기금을 굴려줄 곳이 선정됐으면 싶다가도 한편으로는 누가 되든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집 하나를 마련하기 위해 아끼고 아껴서 청약저축을 가입하는 국민들이 대한민국에 태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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