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0년 05월 27일 07:5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700조원 이상을 굴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는 국내 연기금·공제회 사이에서 명실상부한 '맏형'이다. 맏이 답게 국민연금이 시도하는 운용 전략과 스탠스는 시차를 두고 다른 기관에 전파되곤 한다. 때문에 국민연금의 운용과 관련한 변화는 늘 시장의 관심사 중 하나다.이는 사모투자 부문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사모투자펀드운용회사(PE)와 벤처캐피탈(VC) 등 위탁 운용사를 선정하는 출자사업의 경우, 국민연금의 선정방식이나 선정 운용사 등은 잇따르는 타 기관들의 출자사업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다.
맏형 국민연금이 올해 사모대체 분야 출자와 관련해 미묘한 변화를 꾀했다. PE와 VC의 블라인드펀드 출자 심사에 있어 '무한경쟁'의 장을 만들어줬다.
국민연금은 통상 매년 정기출자 사업을 통해 GP를 선정할 때 체급별로 리그를 나눠 경쟁을 하게 했다. 이는 대부분 다른 기관들의 출자사업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올해는 리그 구분을 확 없앴다. 라지캡, 미드캡, 그로쓰캡 등 체급에 따른 구별 없이 한 리그 안에서 크고 작은 운용사가 오로지 '성과'만 갖고 경쟁하게 했다. 각자 원하는 금액과 전략을 소신있게 제안하면 성과에 기반한 평가로 출자금을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국민연금의 이런 실험은 국내 사모투자 시장이 이제는 성숙단계에 접어 들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국내에도 PE가 생겨난지 이제 15여년 이상 됐다. 어느정도 옥석가리기를 시도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시장 규모도 커진 셈이다. 그만큼 역량있는 PE도 많이 늘어났고 이는 새로운 평가방식을 도입해 봐도 될 때라는 결단의 배경이다.
당연히 운용사 입장에서는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업력과 규모가 어느정도 갖춰져 시장내에서 명성있는 운용사라도 최근 성과가 부실했던 경우 탈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업력은 짧지만 탄탄한 성과를 효과적으로 입증할 자신이 있는 운용사에게 이번 실험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올해 예정된 정기 출자금액 총 1조9500억원 중 일괄심사 방식으로 진행되는 9500억원을 받을 운용사가 이같은 방식으로 선정된다. 이중 PE 부문인 8000억원을 출자할 위탁사 선정 작업이 최근 먼저 시작됐다. 현재 제안서 접수를 마감하고 서류심사 작업 중이다. 1500억원을 출자하는 VC 부문은 하반기 선정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PE 부문 제안서를 받아본 결과 경쟁률은 3대 1 정도 수준을 나타냈다. 2대 1을 소폭 넘어서는 수준에 그쳤던 예년보다 경쟁률이 높았다.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리그제 칸막이를 없애면서 오히려 흥행에 성공한 셈이라 상당히 긍정적이다.
내달 운용사 실사와 프레젠테이션(PT) 심사 등 정성평가를 거치면 선정 운용사의 윤곽은 드러날 전망이다. 무한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만큼 올해 선정될 운용사는 적어도 실력면에서만큼은 업계 평가가 후해질 공산이 크다.
또 이들 운용사가 기대에 걸맞는 활약을 보여줄 경우 이번 국민연금의 무한경쟁 시도는 다른 기관에도 전파될 여지가 있다. 맏형 국민연금의 실험이 업계 출자사업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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