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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회 모니터]서경배 회장이 이룬 진화…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①사외이사 제도 손질, 첫 외부인력 기용…오너 측근 대부분, 이사회 사유화 여전

최은진 기자공개 2020-11-24 08:09:08

[편집자주]

기업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과거 대기업은 개인역량에 의존했다. 총수의 의사결정에 명운이 갈렸다. 오너와 그 직속 조직이 효율성 위주의 성장을 추구했다. 효율성만큼 투명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접어들면서 시스템 경영이 대세로 떠올랐다. 정당성을 부여받고 감시와 견제 기능을 담보할 수 있는 이사회 중심 경영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다. 이사회에 대한 분석과 모니터링은 기업과 자본시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척도다. 더벨은 기업의 이사회 변천사와 시스템에 대한 분석을 통해 바람직한 거버넌스를 모색해본다.

이 기사는 2020년 11월 19일 13: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업경영의 투명성 요구는 역설적이게도 기업들이 붕괴되는 시점에 이뤄졌다. 외환위기(IMF) 당시 기업들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시스템으로 부정과 비리가 횡행한 것이 줄도산의 근본원인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1998년 사외이사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되면서 외부인의 감시·감독이 법제화 됐다. 불과 20년 전 일이다.

저항도 만만찮았다. 제도화 되기도 전인 1997년 현대그룹이 가장 먼저 시작하자 경쟁 대그룹들은 비난을 쏟아냈다. 외부인의 경영간섭 우려와 실효성 논란도 빗발쳤다. 기업이 오너 소유물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사회도 대체적으로 용인했다.

붕괴와 재건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교훈을 남긴다. 사회적 시선이 날카로워지면서 대그룹들도 비자발적으로나마 투명화 요구에 발맞췄다. 그러나 오너의 사유화 욕망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제도의 빈틈을 노리는 시도는 방식만 바뀔 뿐 계속됐다.

◇1998년 사외이사 도입, 임원 출신 인물 선임

불과 20년 전만해도 중견그룹으로 분류되던 아모레퍼시픽그룹도 변화의 시류에 따랐다. 핵심 계열사인 태평양이 상장사였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나마 투명화에 대한 기반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태평양의 사업보고서와 등기를 보면 사외이사가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건 1998년 3월이다. 상장사의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가 시행되자마자 제도를 도입했다. 상장사가 아닌 태평양제약, 태평양종합상사 등 다른 계열사들도 사외이사 제도를 적용시켰다.

하지만 그 면면을 들여다 보면 이사회 투명성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구색맞추기에 지나지 않았다. 모두 다 내부 임원 출신 인력들로 채우면서 제도의 본질에서 비켜났다. 첫 선임된 한정섭·한동근 사외이사는 모두 태평양에서 사장까지 지냈다. 이후 선임된 이병욱·오원식 사외이사도 역시 계열사 임원이었다. 이들은 태평양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계열사의 사외이사 자리까지 채우면서 구색맞추기에 동원됐다.


사외이사 규정에는 내부 임원출신 인력은 안 된다는 제한이 없다. 최근 2년 내 회사의 상무에 종사한 경우는 불가하다는 기간 제한만 있다. 당시 사외이사로 선임된 이들 대부분이 퇴사한 지 5년 이상 지난 인물이었기 때문에 규정을 피할 수 있었다.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지만 경영진을 견제하는 사외이사 본연의 기능에는 취약할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창업주 서성환 회장은 물론 후계자인 서경배 당시 사장까지 사내이사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상황이었던 만큼 임원 출신 사외이사들이 제 목소로리를 내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이사회 제도 대폭 손질, 사외이사 규정 정관 반영

서 전 회장이 작고하고 차남인 서경배 회장이 경영권을 확보한 2003년부터 그룹 시스템이 대폭 손질되면서 사외이사 제도를 포함한 이사회 운영 방식도 변화를 맞았다.

태평양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아모레퍼시픽으로 변경하면서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글로벌 시장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이미지 개선과 주주가치 제고 및 경영위험 분산 등을 고민했다. 대그룹으로서의 골격을 갖추는 것은 물론 이사회 투명성을 강화하는 시대적 요구에 발맞추려는 행보였다.

이 과정에서 이사회의 투명성을 한단계 높이고 주주친화정책 및 임직원 복지 프로그램 등이 상향됐다. 중간배당 제도가 도입되고 임직원의 주식매수선택권이 확대된 것도 이 시기다.


이사회의 진화는 사외이사부터 시작됐다. 정관에 사외이사 규정을 넣어 반드시 뽑아야 하는 의무규정으로 바꿨고 임기도 3년에서 1년으로 줄였다. 제도 도입 6년만에 처음으로 외부인력을 사외이사로 선임하기도 했다. 태평양의 사외이사에 손명현 전 외교관을 선임하면서다.

이후부터는 아예 전체 사외이사를 외부출신으로 채우려는 기조가 안착했다. 대학교수나 삼성출신 기술인력, 외교관 등이 기용됐다.

사외이사 제도가 안착되면서 이사회 제도를 정비했다. 2015년 사업회사로 분할된 아모레퍼시픽의 이사회에 경영위원회·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추가하면서 전문성 및 독립성을 높였다. 2018년에는 리스크관리위원회를 2019년에는 보상위원회·내부거래위원회를 추가했다. 사외이사 제도를 손보고 이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이사회 중심의 의사결정이 가능한 구조를 마련했다.

◇서경배 회장 측근 사외이사 기용, 압도적 대주주 입김 여전

서 회장 시대가 열리면서 이사회의 투명화가 한층 진화를 이루긴 했지만 그렇다고 '사유화' 욕망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외부출신을 기용하는 기조로 변화를 이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서 회장의 측근 인사가 대다수였다. 이사회에 자기 사람을 앉히면서 궁극적으로 서 회장 중심의 일원화 된 의사결정 시스템을 만들었다.

지주사인 아모레G와 사업회사인 아모레퍼시픽의 사외이사 면면을 살펴보면 지주사 전환 후 최근까지 각각 11명, 14명의 사외이사가 있었다. 그러나 이들 중 절반은 서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서 회장의 모교인 연세대학교 동문 혹은 교수이거나 아모레퍼시픽그룹 내에서 기술 고문을 맡은 인물도 있었다. 내부 임원출신 임원을 선임하면서 과거로 역행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임기 규정이 있있음에도 사외이사 한 인물을 9년씩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아모레G의 사외이사 임기가 끝나면 아모레퍼시픽으로 넘겨 재기용 하기도 했다.


서 회장과 동문인 신동엽 사외이사, 아모레퍼시픽에 자문용역을 제공한 김진영 사외이사 등은 특히 논란이 됐다. 그러나 과반을 넘어서는 대주주의 압도적 지분율로 선임을 강행했다.

측근을 사외이사로 앉힌 결과는 거수기로 이어졌다. 지주사 체제 전환 후 아모레G와 아모레퍼시픽 이사회에선 단 한차례도 반대 의견이 나온 적 없이 모두 가결됐다. 그나마도 몇몇 사외이사는 이사회에 불참하기 일쑤였다.


경영진의 판단이 늘 합리적일 수는 없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이 일감몰아주기나 계열사 부당지원 의혹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올 초에는 계열사 부당 자금지원으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맞았다. 이사회 의결 사항에 내부거래 승인 건은 매년 올라오지만 단 한차례의 반대도 없이 가결됐다. 이사회의 감시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지 의문점이 드는 지점이다.

과거 창업자 시절 만들어 놓은 이사회 제도에서 표면적으로는 한층 더 진화를 이룬 것으로 보이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아모레퍼시픽그룹의 이사회를 분석했던 한 연구원은 "이해관계가 얽힌 사외이사를 추천하는 경우가 빈번했고 이는 이사회 독립성을 훼손할 여지가 충분하다"며 "사외이사 추천위원회가 있기는 하지만 대주주 입김이 강한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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