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02월 05일 08:0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00여년 역사를 자랑하는 한 기업의 체질을 바꾼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다. 오너도 아닌 전문경영인인 이정희 대표는 연임을 통해 부여받은 총 6년의 임기 동안 유한양행에 ‘신약 연구개발(R&D)’이라는 DNA를 주입한 인물로 평가된다.2026년 창립 100주년을 맞는 유한양행은 6년간 이 대표 체제하에서 확실한 신약 개발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취임 첫해인 2015년 국내 바이오 벤처에서 도입한 폐암 치료제는 3년 뒤 글로벌 기술수출을 달성하며 ‘혁신 신약’ 가능성을 입증했다.
더 나아가 이 치료제는 올해 들어 31호 국산 신약으로 허가를 받으면서 상업화에도 성공했다. 통상 신약 개발 시작 단계에서 마지막 단계인 상업화에 이르기까지 10년에서 15년 정도 걸리는 것을 감안할 때 엄청난 성과임이 분명하다.
이 대표는 비단 유한양행에만 신약 개발 DNA를 이식한 것이 아니다.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개발(Development)’ 가능성을 현실로 입증했다. 유한양행은 이 폐암 치료제를 전임상(동물실험) 직전 단계에서 오스코텍으로부터 도입했는데, 국내 바이오 벤처가 발굴한 약물도 임상을 거쳐 개발에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국산 ‘신약(New Drug)’의 경쟁력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껏 30여개의 국산 신약이 우리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았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제품은 전무한 게 현실이었다. 유한양행이 미국 얀센에 기술수출한 이 폐암 치료제는 이미 글로벌 상업화에 성공한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의 강력한 경쟁 약물로 꼽힌다.
끝으로 국내에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이라는 분위기(Atmosphere)’를 조성하고 안착시켰다는 점이다. 유한양행은 전임상을 앞둔 국내 바이오 벤처의 유망 신약후보물질을 사들였다. 그리고선 보란 듯이 임상에 성공한 뒤 글로벌 제약사에 이 약물을 수출했다. 바이오 벤처와 글로벌 빅파마 사이의 가교로서 오픈 이노베이션의 모범 사례다.
유한양행은 그간 R&D에 인색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신약 개발보다는 외형 성장을 위해 다국적 제약사 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하는 데만 집중하며 ‘외산 신약 유통업체’라는 비꼼을 받기도 했다. 이런 부정적인 평가를 깨뜨리려 한 게 이 대표였다.
유한양행은 2015년 이 대표가 취임하면서 새로운 R&D 전략으로 대형 제약사가 외부 기업이나 대학이 개발한 치료 물질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신약후보물질로 개발하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본격화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폐암 치료제 ‘레이저티닙’이었다.
이 대표는 오는 3월 임기를 마치고 유한양행 CEO에서 물러난다. 하지만 그가 유한양행과 국내 제약업계에 뿌리내린 DNA는 글로벌 무대를 휘젓는 ‘K-바이오’의 자양분이 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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