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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왕국' 세운 신춘호 별세…'우보만리' 정신 남겼다 '농부의 마음' 56년 외길 스테디 셀러 장본인, 정직·성실 자산 5조 그룹 일궈

최은진 기자공개 2021-03-27 10:22:39

이 기사는 2021년 03월 27일 10: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농심그룹을 창업한 신춘호 회장(사진)이 27일 타계했다. 신 회장은 맏형인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을 도와 롯데그룹 성장의 한축을 담당하다가 '라면'에 대한 열정으로 독립을 이루며 오늘날 자산 5조원 규모의 농심그룹을 일궜다. 평소 정직과 성실함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으며 실패에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을 강조한 그의 삶의 철학은 농심그룹의 근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춘호 회장은 27일 오전 3시 38분 향년 92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입원 중이던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새벽에 갑작스럽게 발생한 일이라 가족들이 임종을 지켰는 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장례는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진행되고 4일장으로 발인은 30일이다.

신 회장은 지난달 농심그룹 주요 계열사의 사내이사직을 내려놓을 당시 신장투석 등을 위해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 중이었다. 숙환으로 꽤 위독한 증세를 보이면서 장남 신동원 부회장 등 가족들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 회장은 1930년 12월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5남 5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경찰로 군 복무를 마친 후 20세가 넘어서야 동아고등학교에 입학해 동아대학교에서 학업을 마쳤다. 이후 1958년 일본에서 성공한 맏형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다.

신 회장은 롯데그룹 계열사인 롯데공업의 사장까지 지내면서 롯데그룹을 성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공신으로도 추대됐다. 그러나 '라면'사업에 반대하던 신격호 명예회장과 갈등을 겪은 끝에 1965년 롯데공업이 계열분리를 단행하며 오늘날 농심을 설립했다.

농심이라는 말은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의 줄임말로 성실과 정직으로써 행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농부의 마음을를 담았다. 정직하고 성실하게 꾸준히 노력하는 농부의 마음으로 행사면 못 이룰게 없다는 의미다.

당시 라면이 우리나라보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된 일본에서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있다는 점에 착안해 국내에도 도입했다. 특히 누구도 배 곯지 않도록 라면이 단순 간편식이 아닌 '주식'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지가 기반이 됐다.

불가능할 것 같았던 그의 의지는 국내 라면사업을 만드는 시초가 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5년 첫 라면을 생산한 해 라면연구소를 세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라면맛에 대한 본격 연구를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70년대 신라면, 너구리, 육개장사발면, 짜파게티, 안성탕면 등 지금은 스테디 셀러가 된 라면제품이 잇따라 생산됐다.

신 회장은 스스로를 '라면쟁이'라고 부르라고 할 정도로 라면에 대한 애정이 상당했다. 제품 개발에 직접 뛰어들면서 국물맛부터 라면질까지 챙길정도로 연구개발까지 참여할 정도였다. 농심그룹을 독립시키자마자 연구소를 설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제품을 카피하는 게 아닌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표였다.

첫 생산시설인 대방공장에 이어 안성공장을 설립할 때에도 신 회장의 맛에 대한 고집은 상당했다.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 수준의 제조설비를 검토하면서도 한국입맛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으로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인 만큼 농심그룹이 축적한 노하우가 구현되지 않을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맛에 대한 열정 뿐 아니라 제품명에도 직접 참여하며 신 회장만의 트렌드를 만들었다. 신라면, 새우깡 등은 신 회장이 직접 작명한 제품으로 유명하다. 신라면의 경우 발음하기 편하고 소비자들도 쉽게 주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제품의 특징도 잘 잡아야 한다고도 했다.

이렇게 탄생한게 '매울 신(辛)'자를 쓴 신라면이다. 그러나 당시 직원들은 제품명에 오너의 '성씨'를 쓰는 게 예의가 아니라며 논란이 있었고 신 회장은 '괜찮다'며 오히려 흡족하게 신라면으로 결정하는 패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어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과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히트제품들 모두 신 회장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이렇게 라면시장의 55%를 장악하게 된 농심그룹은 글로벌 시장으로 외연을 확대하고 있다. 영화 <기생충>의 히트로 짜파구리부터 신라면까지 다양한 제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끌었고 이를 기반으로 지난해 기준 해외매출은 1조원을 웃도는 기염을 토했다.

농심그룹은 라면과 스낵을 판매하는 ㈜농심부터 화학을 담당하는 율촌화학 등 국내외 총 36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전체 계열사의 자산총액은 5조원에 이를 정도로 국내 대표적인 라면기업으로 자리매김 했다. 현재 계열사는 신 회장의 장남 신동원 부회장을 중심으로 3남매가 분리경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분승계 역시 분쟁을 최소화 하기 위해 이미 10년전에 마무리 지었다.

신 회장은 평소 정직과 성실을 최우선으로 강조했다. 답답하고 보수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라면과 스낵이라는 '외길'을 우직하게 걸었고 이는 후대에 이르러서도 큰 변화가 없다. 그의 장남 신 부회장 역시 부친인 신 회장의 경영철학 하에서 라면사업을 해외로 확장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또 신 회장은 화려하고 드러내는 것보다는 자연의 섭리 하에서 우직하게 성실한 땀으로 일구는 삶을 숭고하다고 믿었다. 농심의 경영이념을 '우보만리, 이농심행 무불성사'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는 것도 신 회장의 정직과 성실 원칙에 기반했다. 한눈을 팔지 않고 56년간 라면과 스낵 외길을 걸어오며 최고의 자리에 오른 농심그룹에는 그의 정신이 녹아들어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는 1년 여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맏형 신격호 명예회장과는 끝내 화해를 나누지 못하고 눈을 감게 됐다. 신격호 명예회장 장례식에 참여하지 못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의 두 아들도 신 회장의 장례식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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