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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칼럼]삼성, 모순적 성공의 역사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공개 2021-03-29 09:13:46

이 기사는 2021년 03월 29일 09:1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이 사람은 왠지 짠..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이 수감 중에 충수 파열로 병원에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았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중 하나다. 한국에서 가장 큰 회사 최고경영자, 가장 부자 중 한 사람이 대중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특이한 현상이 생겼다. 가장 중한 경영책임을 지고 있는데 끊임없이 수사를 받고 재판에 불려 다니며 지금 두 번째 수감 중이다. 그 연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회사의 경영권을 ‘위법하게’ 승계받았다는 것이다.

2015년 7월 17일 자로 한 신문이 “‘이재용의 삼성’ 힘겨운 승리…‘승계 과정’ 정당성 확보 숙제로”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양사 주주총회에서 승인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필자가 “삼성의 역사에서 오늘이 중요한 날이 될 것”이라 말했다고 보도했다. 필자가 그렇게 말한 것은 이제 삼성의 리더십이 안정되어서 헤지펀드 등 외부 압력에서 보다 자유스러운 상태의 경영이 가능할 것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전혀 다른 의미로 삼성의 역사에서 중요한 날이 되어버렸다. 주주총회의 두 회사 합병승인 날이 삼성과 이 부회장이 추후 끝없는 사법적 문제로 고난을 겪게 된 출발점이 된 것이다. 사람이 재판, 특히 형사재판에 연루되게 되면 정상적인 생활과 심리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것도 극도로 어렵다. 더해서 이 부회장과 같은 유명인사는 언론이 일거수일투족 세상에 알리기 때문에 고통은 몇 배가 된다. 그 짐을 지고 한국 최대 기업 경영이라는 의무를 이행하고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제는 옥중에서다.

이 부회장이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이유는 뇌물공여다. 향후 진행될 재판에서는 자본시장법과 외감법 위반 혐의가 다루어지게 된다.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즈음하여 부정거래와 시세조종으로 주가를 조작했다고 한다. 합병거래에서의 업무상배임 혐의도 있다. 한 매체에서 검찰의 공소장 전문을 공개했기 때문에 향후 재판에서 다루어질 쟁점들이 다 알려졌는데 장기간의 법정 공방이 예상된다. 그 후 공소 내용에 대한 법원의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의 배경에는 수년간 진행되어 온 삼성의 경영권 승계라는 사실과 이른바 그 화룡점정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라는 회사법적 사건이 있다. 그 두 가지 문제는 형사재판의 직접적인 쟁점은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전제가 되고 그 두 가지를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재판의 향배도 좌우될 수 있다. 경영권 승계를 반사회적인 행동으로 보는 일부의 시각에 대해서는 필자가 수차 이견을 제시한 바 있으므로 생략한다.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했다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를 본다.

주식회사 간 합병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누군가의 내심의 의사를 통해 확인할 일이 아니다. 주식회사의 합병이라는 사건은 상법상 회사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지 대주주를 포함한 그 외 누군가의 의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복수의 자연인으로 구성되는 이사회에는 내심의 의사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이사회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 내부, 외부의 이런저런 동기가 개입될 수는 있으나 그 또한 이사회 결의로 정리되고 최종적으로 주주총회에서 참석주주 2/3의 합동행위에 의한 승인으로 법률적 효력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사회 회의록, 토의와 결의 내용, 그리고 주주총회 안건과 토의, 결의 내용에 합병이 경영권 승계목적으로 행해지는 것이라는 표시나 그를 합리적으로 추론할 만한 근거가 없는 한 당해 합병은 경영권 승계와 무관한 것이다. 경영권 승계는 특정 회사 내부의 인사조치다. 이사회의 승인을 받는 경우가 많지만 주주총회의 목적 사항이 될 수는 없다. 합병 이사회 결의 관련 자료에는 당연히 사업적 목적이 기재되어 있을 것이고 주주총회도 마찬가지다. 사업적 목적이 타당하기 때문에 이사회 결의가 이루어졌고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외의 목적은 존재할 수 없다.

설사 누군가가 승계라는 목적을 배후에 두었다 해도 그 목적만으로는 합병의 사업상 목적을 만들어 낼 수 없었을 것이고 부당한 사업 목적 내용을 배후의 의사를 추측해서 이사들이 결의하고 주주총회에 모인 주주들이 그에 협조한다는 것은 여러 단계의 비약을 전제로 한다. 주주 중에는 기관투자자를 포함한 전문가들이 다수 있고 외국인도 많다. 주주들은 설령 의안에 경영권 승계라는 동기가 먼 배경으로 내포되어 있다고 합리적으로 의심하더라도 합병의 사업적 타당성과 그로 인한 주주가치가 긍정적으로 여겨지면 합병을 승인한다. 사실 대다수 주주들에게는 승계가 합병의 동기인지 아닌지는 일차적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주주들은 합병 자체가 발생시키는 경제적 효과 분석에 치중한다.

이 논리가 타당하다면, 향후 진행될 절차에서는 공소장에 적혀있는 피고인들의 행위가 실제로 존재했는지, 존재했던 경우 위법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면 되고 그 행위가 이른바 ‘반사회적인’ 동기의 경영권 승계와 그 수단으로서의 회사간 합병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맥락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공소장을 공개한 매체도 기사에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 사건’이라는 부제를 붙여 놓았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삼성의 성공을 ‘모순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성공적인 기업의 경영진이 지속적으로 사법적 문제에 연루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순항한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은 삼성을 포함한 한국기업들이 처해왔던 역사와 정치경제환경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들은 정치, 시민사회와 부담스러운 관계를 끊임없이 유지하면서 성장해야 했다. 이 부회장의 경우 뇌물사건에서는 공교롭게 ‘구시대의 상투’를 잡은 것이다. 삼성도 한국의 다른 대기업들과 마찬가지로 준법경영을 포함하는 ESG 경영과 투자에 천착한다. 이번 사건이 모순적 성공 시대의 마지막 사건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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