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대 오른 CB 규정]쿠폰금리 부활하나...리픽싱 주기조정 카드 '부상'③차익실현 가능 기한 확대, 리픽싱 주기 3→6개월 연장 가능성
이민호 기자공개 2021-05-31 13:09:22
[편집자주]
금융당국이 전환사채(CB) 규제 강화에 나선다. 큰틀에서는 기존 주주에게 불리했던 규정을 바로 잡겠다는 취지다. 전환가액을 조정하는 리픽싱(refixing) 제도와 최대주주의 콜옵션(call option) 규정이 가장 먼저 수술대 위에 올랐다. 이 영향으로 발행사와 헤지펀드 운용사의 전략 변화도 불가피하게 됐다. 더벨은 이번 규제 배경과 CB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칠 영향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1년 05월 27일 10:3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전환사채(CB)에 전환가액 상향조정 조건 삽입이 의무화되면 운용업계에서는 리픽싱(refixing) 주기 조정으로 대응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상향조정 주기를 하향조정 주기보다 길게 잡아 차익실현 타이밍을 노리거나 리픽싱 주기 자체를 늘려 관찰기간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상향조정 조건 삽입의 반대급부로 현행 0%인 쿠폰금리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CB 투자 단기위축 가능성 희박…대체자산 대비 매력 여전
펀드 운용전략에서 CB는 리픽싱과 풋옵션 조건이 삽입되는 이점으로 하방을 막는 주요한 역할로 각광받았다. 발행사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리픽싱에 따른 전환가액 하향조정으로 보통주를 직접 보유하는 것보다 일정 부분 방어가 가능한데다 차익실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풋옵션 행사로 원금 수준을 조기상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이용해 CB에만 투자하는 블라인드펀드와 프로젝트펀드가 다수 생겨났으며 멀티전략(Multi Strategy) 펀드에서도 분산투자에 필요한 주요자산으로 인식됐다. 특히 지난해부터 공모주 투자에 시중자금이 몰리면서 코스닥 공모주 우선배정 혜택이 주어지는 코스닥벤처펀드가 전문사모운용사를 중심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이에 따라 우선배정 요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신규발행 CB 인수 수요도 증가했다.
사모발행 CB는 발행사와 투자자가 △쿠폰금리(표면이자율) △만기금리 △만기일 △리픽싱 한도 및 주기 △전환청구기간 △풋옵션·콜옵션 비중 및 행사기간 등 다양한 발행조건을 두고 협상해 양측이 만족하는 최적의 조건을 찾는 과정을 거친다. 하나의 조건을 취하면 다른 조건을 내주는 형식이다.
이번에 금융위원회가 입법예고한 ‘증권의 발행 및 공시 등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안에는 주가가 상승할 경우 발행 당시 전환가액 범위 내에서 상향조정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기존에 CB에는 주가가 하락할 경우 전환가액을 최초 전환가액의 70%까지 하향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단 하향조정된 전환가액은 주가가 재상승해도 상향조정되지 않는다. 이는 투자자가 쿠폰금리와 만기금리를 0%로 포기하는 대신 수익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로 작용했다.
하지만 전환가액 상향조정 조건이 추가되면 투자자로서는 기존보다 불리한 조건을 떠안는 셈이 된다. 운용업계는 CB에서의 수익 가능성이 기존보다 줄어들기 때문에 중장기적인 투자위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CB 편입비중이 절대적인 이벤트드리븐(Event Driven) 전략의 펀드는 투자매력 감소 가능성이 높게 전망된다. 다만 이번 일부개정안이 전환가액 하향조정 조건까지 부정한 것은 아닌데다 지난해부터 운용업계의 핵심 수익원으로 떠오른 코스닥벤처펀드에서의 CB 편입 필요성을 고려하면 투자수요가 당장 위축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운용사가 결국 CB 인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다. CB를 대체할 수 있는 자산으로는 전환우선주(CPS)나 상환전환우선주(RCPS)가 꼽히는데 둘 다 CB보다 투자매력이 떨어진다. CPS는 상환의무가 없기 때문에 발행사에게는 유리하지만 정작 운용사로서는 주가 하락시 손절하는 수밖에 없어 애초 선호도가 낮았다. 이런 약점을 보완해 CPS에 상환조건을 붙인 것이 RCPS다. 하지만 RCPS의 경우 상환받으려면 발행사에 배당가능이익이 있어야 하는데 메자닌 형태로 자금을 조달하는 상장사 중 이 정도 여력을 갖춘 곳은 드물어 상환 가능성이 떨어진다.
◇리픽싱 주기 조정 가능성…쿠폰금리 인상도 고려
이 때문에 향후 운용사의 협상능력이 CB 투자의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운용업계는 CB에 전환가액 상향조정 조건을 삽입하는 대신 발행사에 제시할 협상 카드로 쿠폰금리 인상과 리픽싱 주기 조정을 고려하고 있다. 상향조정이든 하향조정이든 리픽싱 조건을 아예 덜어내는 방안도 제기되지만 이는 운용사가 스스로 핵심 수익기회를 포기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실효성은 낮게 전망된다.
먼저 쿠폰금리 인상은 주가 방향과 관계 없이 안정적인 현금흐름 확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로 요구할 수 있다. CB는 기본적으로 채권이기 때문에 금리를 지급하는데 통상적으로 쿠폰금리 지급주기는 매 3개월로 정하고 있다. 투자자가 풋옵션을 보유하는 한 만기금리는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2018년 4월 코스닥벤처펀드가 출시된 이후 CB 인수 수요가 몰리면서 발행사 우위시장이 형성되자 ‘제로(0%)’ 쿠폰금리가 보편화됐고 이 기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발행사가 쿠폰금리 인상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게 전망된다. 쿠폰금리 지급은 발행사로서도 최후의 선택지다. 3개월마다 이자를 지급하는 것이 재무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리픽싱 주기 조정이 가장 현실적인 카드로 지목된다. 현재 전환가액 하향조정 주기는 매 3개월로 정하는 것이 통상적이다. 여기에 전환가액 상향조정 조건이 추가될 경우 운용업계가 고려하고 있는 우선적인 방안은 상향조정 주기를 하향조정 주기보다 길게 설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하향조정 주기가 매 3개월이라면 상향조정 주기는 매 6개월 또는 1년으로 두는 방식이다.
리픽싱에서 전환가액은 조정일 이전 일정 기간 동안의 가중산술평균주가로 산출하기 때문에 결국 주가흐름에 후행하는 성격을 가진다. 전환가액 상향조정 주기를 길게 두면 운용사는 이미 하향조정된 전환가액 수준에서 주가가 상승을 시작할 경우 전환가액 상향조정일 도래 이전에 보통주 전환으로 엑시트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하향조정 주기와 상향조정 주기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을 금융당국이 허용할지는 미지수다. 이는 일종의 편법으로 명목상으로만 상향조정 조건이 삽입될 뿐 금융당국의 취지를 사실상 무력화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현재 조정주기에 대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은 제시되지 않은 상태다.
하향조정 주기와 상향조정 주기를 동일하게 설정해야 한다면 결국 리픽싱 주기 자체를 현행 3개월에서 6개월 정도로 늘리는 방안을 차선책으로 고려하고 있다. 전환가액 조정이 주가흐름에 후행하는 만큼 리픽싱 주기가 길면 그만큼 대응시간을 벌게 돼 일단 CB 형태로 보유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전환 타이밍을 포착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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