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1년 12월 23일 14:3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텔레콤이 인공지능(AI) 반도체 법인을 분사한 배경에 대해 이목이 쏠린다. 그동안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탈(脫) 통신' 계열사를 늘리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으나 인적분할로 비통신 계열사들은 SK스퀘어 산하로 편입됐다.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새로운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이에 기존부터 강점을 지닌 통신업에 AI를 더해 밸류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통신업 자체를 재정의해 시장의 인식을 바꿀지 주목된다.

◇인적분할 후 'AI·디지털인프라' 회사로 변신 도모

SK텔레콤은 내달 4일 311억원 규모의 AI 반도체 사업을 계열사 '사피온 코리아(SAPEON Korea, 가칭)'에 양도하기로 했다. 사피온 코리아는 AI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팹리스)로 SK텔레콤의 사업 부문을 스핀오프해 출범할 예정이다.

이번 분사는 SK텔레콤과 SK스퀘어의 인적분할 이후 이뤄진 움직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SK스퀘어는 ICT투자전문회사로, SK텔레콤은 5세대 이동통신(5G) 1등 사업 역량을 기반으로 AI·디지털인프라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양 사의 산하 계열사를 보면 이 같은 방향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SK스퀘어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11번가, SK쉴더스(옛 ADT캡스), 티맵모빌리티, 원스토어 등 비통신 계열사들을 거느리게 됐다. 존속법인 SK텔레콤은 통신부문 시너지를 낼 수 있는 SK브로드밴드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인적분할 이전 옛 통합 SK텔레콤 시절에는 '탈통신'을 경영의 큰 방향으로 잡아 사업분화에 초점을 맞췄다. 2008년 11번가 론칭을 시작으로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 ADT캡스(현 SK쉴더스)을 순차적으로 인수했다. 지난해에는 모빌리티 전문회사 티맵모빌리티가 스핀오프로 출범했다. 커머스, 반도체, 보안 등 꾸준히 비통신 부문 포트폴리오를 확대했다.

이런 행보는 통신업이 전통산업으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인식 탓에 시장에서 지나치게 저평가된 데서 비롯됐다. 실제 통신 대장주인 SK텔레콤은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5배 수준에 불과하다. PBR이 1배 미만이면 해당 기업의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아울러 최근 비통신 계열사 대부분을 SK스퀘어로 넘겨주면서 신성장 동력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SK텔레콤은 유·무선 통신 등 기존 핵심사업을 강화하는 동시에 새로운 영역으로 발을 넓히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구독 △메타버스 △AI 에이전트 등 AI 기반 비즈니스를 비롯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산업용 사물인터넷(IoT) 등 디지털인프라 사업을 내세웠다.

◇AI 더해 통신업 '재정의' 꾀한다

이들 신사업은 본업인 통신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결합할 경우 상당한 시너지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가령 네트워크 트래픽이 일시적으로 몰리면 관리자 개입 없이 AI가 자동적으로 경로를 바꾸는 식의 접목을 할 수 있다.

경쟁사인 KT도 최근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부재중 걸려온 고객의 전화를 AI가 대신 받아주는 'AI 통화비서' 서비스를 선보였다.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상권분석 서비스도 도입했다. 아직 AI 비즈니스는 B2B가 주를 이루지만 B2C 영역으로 확장되는 추세로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이미 SK텔레콤은 본업에서 탄탄한 시장지배력을 갖추고 있다. 9월 말 기준 주요 사업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무선통신사업(MVNO 제외)은 48%, 초고속인터넷부문이 29%, IPTV부문은 30% 수준에 이른다.

여기에 AI 반도체를 담당하는 사피온 코리아를 만들고 주력 사업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하려는 것이다. 그동안 시장에서 소외된 통신주에 대한 관심을 제고하고 저평가된 주가를 끌어올릴지 주목된다.

이통업계 관계자는 "통신사들이 디지털 전환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른바 ABC(AI, Big data, Cloud) 기술을 활용해 통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AI가 기존에 정체된 통신 산업을 다시금 주목받게 할 트리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