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2년 02월 08일 07시4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알이백, 그레이수소, 블루수소, 그린수소, 택소토미"며칠전 대통령 후보자 방송 토론회에서 나온 단어들이다. 품격이 있어 보이는지 영어로 된 전문용어가 난무했다. 일반인들은 처음 들어보는 단어들이 꽤 있을 것으로 짐작해본다. 심지어 기사 댓글에는 이즈백은 알아도 알이백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달렸다. 대통령 후보자가 이 정도는 알아야된다는 주장부터 일국을 통치하는 리더가 이런 세세한 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는 반박까지 논란이 한창이다.
알이백은 RE100이다. R200이 아니다. 아일비백도 아니다. 'Renewable Energy 100%'의 약칭이다. 쉽게 말해 기업이 생산과 경영 활동에서 100% 신재생에너지만 사용하라는 것이다. 2014년 미국 뉴욕에서 기후 변화를 주제로 한 대규모 정상회의가 열린 뒤 기업들의 자발적인 재생에너지 전환을 촉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합의(Initiative)'의 이름이다.
현재 280곳 넘는 글로벌 기업이 참여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SK㈜, LG에너지솔루션 등 13개사가 공식 가입했다. 현대차·기아 등 5개 기업은 가입선언 후 승인 대기 중이다. 산업부를 출입하는 기자들은 기업에서 종종 사용하는 단어라 익숙할 수 있지만 일반인의 경우 단어의 개념이나 배경, 의미에 대해 생소할 수도 있다.
차라리 '신재생에너지 100%'라고 표현했어도 충분했을 질문이었다. 관념적인 단어의 사용이 논란을 야기한 측면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포장지가 아니다. 목표의 달성 방법,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파장, 기업들의 대응 방침에 대한 논쟁이 필요했지만 결국 내용은 없는 말싸움만 돼버리고 말았다.
이왕 나왔으니 말인데 언론이나 기업의 문제도 크다. 기업의 홍보자료를 보면 이해가 힘든 환경 용어들로 가득하다. 카본 투 그린(Carbon To Green), 넷 제로(Net Zero), 그린 뉴딜(Green New Deal), 플로깅(Plogging),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그린 워싱(Green Washing) 등 기업은 영어가 잔뜩 들어간 구호를 생산해내고 기자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쓴다.
에너지를 비롯한 환경 문제는 거대 담론이다. 기업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관심과 실천이 성공의 핵심이다. 이런 낯선 용어로는 관심을 끌기 쉽지 않다. 실질적인 친환경 경영과는 거리가 있지만 구호로만 녹색 경영을 홍보하는 것(그린 워싱)으로 오해하기 딱 좋다.
실제로는 탄소 저감이나 RE100 뿐만 아니라 환경 문제,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기업들은 수조원의 돈과 막대한 인력을 쏟아붓고 있다.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흉내만 내는게 아니라는 말이다. 많은 기업들이 수십년간 이어온 사업 구조까지 재편하며 미래에 대응하고 있다. 대외적인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홍보실에도 재무 출신이나 엔지니어 출신같은 전문가들을 대거 포진시키고 있다.
현대차는 2045년까지 탄소 중립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가 시대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친환경차로의 전환은 거부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연도별로 목표 달성을 위한 세부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혔다는 점에서 달성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평이다.
빠르게 그린 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는 SK그룹은 심지어 통근·출장 등 직원들의 이동으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에 대해서도 순배출 0의 상태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유회사나 철강회사, 조선사 등 탄소 배출이 막대한 기업들도 수소를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정하고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그래서 "RE100은 일부 기업의 캠페인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환경에 맞지 않다"는 해명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RE100을 모른다고 해서 에너지 정책에 대한 기본이 없다는 지적은 과한 측면이 있지만 단순히 캠페인으로 치부할 이슈는 아니다.
외면하는 순간 글로벌 공급망 속에서 우리 기업의 생존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달성 수준의 문제이지,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가능한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필수적이다.
이번 대선 토론은 에너지와 친환경이라는 거대 담론에 대응하는 우리 기업들의 치열한 고민과 노고를 희화한 측면이 없지 않다. 실천하지 않는 말잔치가 차기 정권에서도 이어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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