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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 독립성 낮은 이사회의 '태생적 한계' [한국전력 5조 어닝 쇼크]⑥최대주주와 다른 입장 가진 이사 선임 어려워···이사회 내 정부 견제 위원회도 없어

양도웅 기자공개 2022-04-21 14:02:04

[편집자주]

'전력 공룡'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이 자그마치 5조2200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대기업이 이익으로 내기 힘든 숫자를 손실로 냈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전력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답은 '전기 요금 현실화'이지만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뜨뜻미지근한 모양새다.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과 비용을 대신 짊어진 한전을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4월 18일 14:23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대규모 이사진을 꾸리고 있다. 상임이사 7명, 비상임이사 8명을 포함해 총 15명의 이사로 구성된 이사회다. 국내에서 가장 선진적인 지배구조를 갖췄다고 평가받는 SK㈜의 이사회가 9명인 점을 고려하면 한전 이사회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규모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이사회도 총 11명으로 한전 이사회보다 적다.

다만 규모에 비해 독립성은 낮은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15명의 이사 전원을 최대주주인 정부가 사실상 임명하는 구조에서 최대주주와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이 이사회에 진입하는 길이 막혀 있는 셈이다. 정부가 5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주총에서 정부를 견제할 만한 세력도 없다시피하다. 최근 대규모 적자 만회를 위한 전기료 인상 등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기 힘든 구조도 이 때문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2년까지 한전의 지배구조 등급은 2020년을 제외하고 모두 'B+'였다. 지배구조 등급 평가에서 중요한 고려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이사회 독립성이다. 주요 주주와 경영진 등을 견제할 수 있는 이사를 선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출처=각 사 2021년 사업보고서)

◇ 15인의 이사 전원, 사실상 정부가 다 뽑는다

한전 이사회의 부족한 독립성은 선출 절차에서부터 확인된다. 회사는 현재 △사장 △상임감사위원 △상임이사(상임이사 중 사장·상임감사위원 제외) △비상임이사의 선출 절차를 구분하고 있다. 이 가운데 사장과 상임감사위원, 비상임이사의 선출 절차는 서로 유사하다. 사장과 상임감사위원을 제외한 상임이사 선출 절차만 상대적으로 간소하다.

사장 선출 절차는 '임추위 추천→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의결→주주총회 의결→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제청→대통령 임명' 순이다. 상임감사위원은 주총 의결 단계 전까진 위 선출 절차와 동일한 대신 산자부 장관이 아닌 기획재정부장관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는 점이 다르다. 비상임이사는 상임감사위원 선출 절차에서 주총 의결만 제외하면 같다.


선출 절차의 출발점인 임추위는 이사회 내 비상설기구다. 사장과 상임감사위원, 비상임이사를 새롭게 선출할 필요성이 있을 때만 조직한다. 5~15인 범위에서 비상임이사와 이사회가 추천한 외부 위원들로 구성된다.

이사회 내 임추위가 1차 후보군을 추리는 까닭에 독립성 확보가 가능한 것처럼 판단된다. 하지만 기재부 산하 위원회이자 기재부 장관이 위원장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가 임추위 추천 인물을 심의·의결한 뒤 주총에 다시 추천한다는 점에서 임추위의 권한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설령 임추위 추천 인물이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더라도 정부는 주총 의결에서 해당 인물의 선임에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정부는 산업은행과 함께 한전 지분 51.1%를 보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다. 보유 지분량을 고려했을 때 다른 주주들이 정부를 견제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정부와 산은 외에 국민연금공단(5.91%)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액 주주들이라 주주 간 규합도 쉽지 않다.

종합하면 정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 심의와 주총 의결, 산자부·기재부 장관 제청, 대통령 임명 등의 단계에서 사장과 상임감사위원, 비상임이사 선출에 대한 이사회의 자율적인 목소리를 제한할 수 있다. 상임감사는 이러한 절차로 선임된 사장이 임명한다.

(출처=한국전력공사 2021년 사업보고서, 한국거래소)

◇ 대통령과 가까운 사장이라도···반대 의견 내면 '직' 유지 못해

사장부터 비상임이사까지 정부 정책에 반하는 인물이 이사로 선임되기 어려운 구조이지만 이사회는 간혹 정부와 전기요금 산정과 같은 사안을 놓고 부딪히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표적 사례는 2011년 9월에 임명된 김중겸 전 사장 시절의 이사회 반발이다. 당시 한전은 지금과 동일하게 수조원 대의 적자가 예상되던 때였다.

이사회는 더 이상의 실적 악화를 막기 위해 그해 11월 정부와 협의하지 않고 10%대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가결했다. 전기요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정부가 이를 인가하지 않음으로써 실제 이뤄지지 않았지만 이사회와 정부 간 갈등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결국 이듬해 8월 이사회는 4%대로 소폭 인상하는 정부안을 받아들였고 3개월 뒤 김 사장은 자진 사퇴하기까지 이른다.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운 사장이라도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을 내면 자리를 보전하기 어렵다는 게 증명된 셈이었다. 김 전 사장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었다.

정부와 전기요금 산정을 놓고 충돌했던 한국전력공사의 김중겸 전 사장(왼쪽)과 김종갑 전 사장(오른쪽).

이러한 모습은 진보 정권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2019년 6월 김종갑 전 사장을 포함한 이사회는 7·8월에 한해서 주택용 전기요금을 인하하는 정부의 '누진제 완화안'을 '의결 보류'했다. 당시 14인의 이사 전원이 보류 의견을 냈을 만큼 이사회 태도는 강경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다시 회의를 열어 정부안인 누진제 완화안을 가결했다.

김 전 사장은 문재인 정부가 계승하는 노무현 정부에서 산자부 차관보, 특허청장, 산자부 제1차관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했을 만큼 친노 인사들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된다. 그는 2021년 4월 연임 전망이 우세했던 가운데 3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현재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 지배구조 등급 'A+' SK㈜와 비교해보니

이사회의 낮은 독립성 탓에 한전은 올해 KCGS로부터 지난해 지배구조 등급 'B+'를 받았다. KCGS 관계자는 "지배구조 등급 평가의 중요 요소 중 하나는 '이사회 독립성'"이라며 "이사회가 최대주주와 경영진에 얼마나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지, 이사 선임 절차는 독립적으로 운영되는지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지배구조 등급 'A+'를 받은 SK㈜는 이사 선임과 관련한 이사회 내 위원회로 인사위원회를 두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역할을 확대하며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으로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과 사외이사 2명이 인사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위원장은 이찬근 사외이사다.

(출처=한국전력공사 2021년 사업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SK㈜ 사외이사 선출 절차는 '인사위원회 추천→주총 의결'이다. 최대주주인 최태원 회장이 인사위에도 참석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전과 동일하게 이사 선임에 대한 최대주주의 영향력이 적지 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SK㈜는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거버넌스위원회를 따로 설치해 이사회 평가제도 개선, 지배구조 헌장 제·개정, 계열사 관리 등의 역할을 맡기고 있다. 감사위원회와 함께 확실한 견제 조직을 만든 셈이다.

이는 한전 이사회와 비교했을 때 명확한 차이점이다. 사실상 정부가 모두 뽑은 인물로만 구성된 한전 이사회엔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직(위원회)이 없다. 과거 김종갑 전 사장이 '노동 이사제' 도입을 주장했던 이유 중 하나도 공기업이지만 상장기업으로서 회사 이익을 지키고 정부를 견제하는 목소리를 이사회 차원에서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전력업계 관계자는 "현재 한전 이사회는 단순한 의사결정 기구밖에 되지 않는다"며 "지난해에 이어 한전이 적정 이윤도 내지 못하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이사회와 주주 구성 등 지배구조 측면에서 변화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출처=SK㈜ 2021년 사업보고서와 기업지배구조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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