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은 상장사, '이사회 중심 경영' 해야" [한국전력 5조 어닝 쇼크]⑩김종갑 전 사장, 정부·정치 무원칙한 개입 '최소화' 강조
양도웅 기자공개 2022-04-28 11:03:34
[편집자주]
'전력 공룡' 한국전력공사(한전)가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손실을 기록했다. 당기순손실이 자그마치 5조2200억원에 달한다. 웬만한 대기업이 이익으로 내기 힘든 숫자를 손실로 냈다.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급등한 원자재 가격을 전력 판매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답은 '전기 요금 현실화'이지만 정부와 시민사회는 어느 때와 다름없이 뜨뜻미지근한 모양새다. 사용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과 비용을 대신 짊어진 한전을 더벨이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4월 25일 15:24 thebell 유료서비스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전력공사(한전)는 상장사다. 그에 걸맞게 이사회 중심 경영이 가능하도록 이사회 운영에 자율과 책임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반면 정부는 목표를 제시하고 평가하는 역할에 그쳐야 한다. 그렇게 돼야 한전 스스로 원가 효율성이 높은 경영을 실천할 수 있다."김종갑 전 한전 사장은 최근 더벨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할 때마다 수익성이 악화하는 문제를 해결할 근본 대책으로 '이사회 중심 경영'을 꼽았다. 지금처럼 전기요금 인상에 부정적인 여론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정부가 요금을 결정하는 구조에선 한전의 반복된 적자는 피할 수 없다는 인식에 따른 지적이다.
1951년생인 김 전 사장은 대구상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했다. 1975년 제1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면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특허청장과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을 역임한 뒤 공직을 떠나 2007년 하이닉스반도체 사장, 2011년 한국지멘스 회장에 선임됐다. 2018년부터 2021년까진 한전 사장으로 재직했다. 고위 관료와 공기업 대표, 민간기업 대표 등을 두루 경험한 흔치 않은 경력을 갖고 있다.
◇'한전 입장' 반영할 통로가 안 보인다
지난달 한전은 연료비 조정단가를 분기당 상한선인 kWh당 3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정부에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해 올해 2월 한전의 전기 매입 가격은 kWh당 125.3원에서 162.5원으로 37.2원 증가했다. 원가 상승분의 10분의 1만큼만이라도 올려달라는 제안을 정부는 거절했다.
분기마다 한전이 연료비 변동에 따라 전기요금 조정안을 정부에 제안하는 '연료비 연동제'는 김 전 사장의 재직 시절 도입된 제도다. 하지만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가 협의해 인가하는 체계는 변하지 않았다. 한전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여전히 막힌 셈이다. 전기요금 결정에 한전 입장이 반영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김 전 사장은 "단기적으로는 연료비 연동제를 원칙대로 시행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독립규제위원회를 출범시켜 정치로부터 전기요금을 놓아주는 조처를 해야 한다"며 "전기요금을 통제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한전 실적이 좋지 않다고 비판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고 지적했다.
새로운 독립규제위원회가 전기요금을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위원장은 정부나 지자체, 의회 등이 임명하지만 독립성과 임기가 보장돼 있다. 우리나라도 산자부 산하에 전기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전기요금 산정 시 '자문' 역할만 할 뿐이다. 권한은 없다.
이러한 구조에 대해 조성봉 숭실대 교수는 "모든 정부가 출범 초엔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며 독립규제위원회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말해왔다"며 "하지만 실제 도입 시기를 물으면 모두 '중장기'라고 답하는데, 이는 추진할 의사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지금 구조에서 한전이 할 수 있는 실적 개선책은 없다"라고 잘라 말했다.
◇40% 지분 보유한 일반주주 이익, 누가 대변하나
15명에 달하는 한전 이사진의 선임 절차도 고민해봐야 할 문제다. 상임이사와 비상임이사 모두 정부가 최종 임명하거나 정부 임명 임원이 다른 임원을 선임하는 구조다. 정부와 다른 입장을 가진 인물이 선임되기 어렵다. 한전 지분 51.1%를 보유한 정부(산업은행 지분 포함)가 사실상 지분 100%에 달하는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에서 한전이 지분 40% 이상을 보유한 일반투자자들의 이익을 지속가능하게 보장해주는 건 어렵다. 최대주주인 정부의 제1 경영 목표는 '전기요금 인상 억제를 통한 물가 관리'고 이는 한전의 실적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달성해야 한다는 게 역대 정부의 방침이었다. 반면 일반주주들의 목표는 차익 실현, 배당금 수익 등이다.
지난해 5조원 넘는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한전은 결산 배당금도 올해 지급하지 못했다. 최근 5년 코스피 시가총액 상위 50개 기업 가운데 총주주수익률(TSR)은 -45.1%로 꼴찌다. 주가는 25년 전과 비슷한 2만원 초반대다. 일부 일반주주들이 상장폐지를 주장하거나 한전 이사회와 정부를 '배임'으로 고소하겠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전 사장은 "정부의 공공기관에 대한 무원칙한 개입 방식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며 "원칙만 정하고 세부 사항은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행정 지도니, 창구 지도니 하는 개입 방식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 공공기관이 스스로 효율을 높이는 경영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데서 그쳐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양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 전 사장은 역대 한전 사장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는 인물이다. 올드보이가 된 지금도 그렇지만 현직으로 조직을 대표한 시절에도 '전기요금 현실화'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 가감없는 의견을 피력했다.
특히 2019년 6월21일 김 전 사장을 포함한 이사회가 정부의 '누진제 완화안'을 의결 보류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일주일 만에 다시 이사회를 열어 해당 안건을 의결했지만 이러한 충돌은 이사 전원을 사실상 정부가 선임하는 구조에서 매우 드문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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