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PF유동화 긴급점검]건설사 밀어내고, 증권사 신용공여가 '대세'NCR 등 자본규제 완화·A1 우량채 선호 영향…"증권사, 주도 시장 당분간 유지"
이지혜 기자공개 2022-08-22 13:15:16
[편집자주]
증권사 IB에게 부동산PF는 금싸라기로 여겨졌다. 전통적 DCM·ECM만으로는 성장에 한계를 느끼던 상황에서 부동산PF는 비즈니스의 돌파구가 됐다. 여기에 NCR 규제 완화 등 정부의 암묵적 지원까지 더해지자 증권사들은 유례 없는 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불황없는 호황은 없는 법.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부동산 경기에 적신호가 켜졌다. 어느덧 부동산PF 시장의 주축으로 자리잡은 증권사도 타격을 피해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벨은 부동산PF의 주요 수단인 유동화증권을 중심으로 증권사의 리스크를 점검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16일 15: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PF론) 유동화시장에서 증권사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유동화 시장에서 신용공여는 건설사가 주도했지만 2018년부터 증권사가 주축으로 전면에 나서면서 판도가 바뀌었다. 부동산 경기가 괜찮은 상황에서 증권사가 넘쳐나는 유동성을 활용해 성장활로를 적극 모색한 결과다.안전자산을 향한 투자자의 선호도 영향을 미쳤다. AA급 등 우량 신용도를 보유한 증권사가 신용공여한 유동화증권이 갈수록 인기를 끌었다. 반면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건설사 신용공여물은 투자자들이 회피했다. 증권사가 유동화시장의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잡아나간 배경이다.
◇PF론 유동화증권 발행 견조…증권사가 ‘주축’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올 상반기(1월 1일~6월 30) 발행된 PF론 유동화증권은 23조4001억원인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 증가했다. 전체 유동화증권 발행량이 줄어든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평가다. 올 상반기 발행된 유동화증권은 101조2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4% 감소했다.
한국신용평가는 “금융과 부동산시장에 유동성이 지속적으로 공급된 영향”이라며 “주거용 부동산뿐 아니라 물류센터, 지식산업센터 등 비주거용 부동산 공급이 증가하면서 기초자산의 저변이 확대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증권사의 신용공여로 발행된 PF론 유동화증권이 견조한 수준을 유지했다. 이렇게 발행된 유동화증권은 2022년 상반기 14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2020년 이전까지만 해도 증권사 신용공여물이 반기 기준으로 10조원을 넘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성장세가 눈에 띈다.
건설사의 신용공여물과 비교하면 증권사의 존재감은 한층 두드러진다. PF론 유동화 시장에서 증권사의 신용공여물 비중은 60%가 넘는다. 반면 시공사의 신용공여로 발행된 유동화증권은 전년 동기 대비 줄었을 뿐 아니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30%에 못 미쳤다.
2017년까지만 해도 건설사의 신용공여로 발행된 PF론 유동화증권이 더 많았다. 불과 5년 만에 분위기가 바뀐 셈이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2012년 이후 NCR 규제가 완화하면서 채무보증 등에 대한 증권사의 자본 부담이 완화했다"며 "증권사에게 신용공여는 전통적 IB영역에서 부진한 실적을 만회할 수단으로 여겨졌다"고 말했다.
증권사의 신용공여 방식은 크게 세가지다. △기초자산 매입약정 △사모사채 인수확약 △지급보증 등이다. 그러나 세 방식 모두 유사 시 투자자에게 증권사가 원금을 지급한다는 점에서 실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초대형사 비중 ‘압도적’…사업초기 단계 투자 확대
증권사가 강화한 자본력을 앞세워 부동산PF 딜에 적극 뛰어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자기자본이 3조원 이상이며 종합금융투자사업자로 지정된 9개 증권사가 시장을 견인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9개 증권사는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신한금융투자, NH투자증권, KB증권, 하나증권, 한국투자증권, 키움증권을 가리킨다. 종투사로 지정되면 신용공여 한도가 자기자본의 200% 이내로 확대된다. 부동산PF 시장에서 활약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추는 셈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9개 대형 증권사가 참여한 PF론 유동화증권 발행금액은 9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9% 증가했다. 이들의 비중은 증권사가 신용공여한 PF론 유동화증권 가운데 70%에 가깝다.
눈에 띄는 점은 최근 증권사들이 토지매입 등 초기 단계부터 부동산개발사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신용평가는 “2020년 이후 건당 발행금액이 적고 조달기간이 짧은 토지개발, 브릿지금융 성격의 자금조달 규모가 늘었다”며 “증권사들의 사업 초기단계에 투자하면서 PF론 유동화 시장의 양적 성장을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증권사의 신용공여 구조를 뜯어보면 딜 규모가 100억원 이하인 비중이 지난해부터 급증했다. 신용공여 기간이 1년 이하인 비중도 같은 기간 29%에서 40% 정도가 됐다.
양적 팽창을 이뤘지만 그만큼 개별 증권사가 떠안는 리스크가 커졌다고도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브릿지론 등 초기 단계에서 리스크가 가장 크다”라며 “인·허가 지연 등으로 각종 비용부담이 확대될 수 있고 본PF로 넘어갈 수 있을지 불확실성도 높다”고 말했다.
◇증권사 주도 계속, 부동산 경기 ‘예의주시’
PF론 유동화시장에서 증권사의 주도권은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금리 인상과 원자재 가격 폭등, 부동산 매수심리 위축 등으로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전체 PF론 유동화증권 시장이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A1 등급 유동화증권에 대한 수요는 견조한 만큼 우량 신용도를 앞세워 증권사가 PF론 유동화증권 시장을 이끄는 경향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주요 건설사 가운데 단기 신용등급이 A1인 곳은 다섯 손가락에 꼽힌다. 더욱이 HDC현대산업개발이 올 초 대형 인명사고를 내면서 투자자들의 눈초리가 한 층 싸늘해졌다. 갈수록 리스크가 높아지는 가운데 건설사가 신용공여한 A2짜리 유동화증권을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A1 유동화증권을 향한 투자수요는 견조하게 유지되면서 발행증가로 이어졌다. 올 상반기 발행된 단기 PF론 유동화증권(ABCP, ABSTB)을 살펴보면 증권사의 신용공여로 A1 신용도를 획득해 발행된 물량이 전체의 80.5%에 이르렀다.
한국신용평가는 “금리가 상승하는 국면에서 A2+ 이하 유동화증권 수요가 줄었다”며 “이에 따라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우량한 증권사들이 부동산 투자에 적극 참여하면서 시공사 신용공여 구조를 대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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