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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논란]"대형사만 웃는다?" 계열사 밀어주기 현실화 우려②판매비중 25% 제한 불구 “회피 여지 많아 실효성 의문”

이민호 기자공개 2022-09-05 07:42:36

[편집자주]

7월부터 본격 시행된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으로 인해 관련업계가 분주하다. 사업자와 자산운용사들은 오는 10월 첫 번째 상품 승인을 위한 사전 준비에 한창이지만 논란도 여전하다. 고용노동부가 승인상품수를 소수로 제한하면서 과도한 포지티브 규제를 지적하거나 대형 자산운용사 상품에 대한 쏠림현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원리금보장상품을 포함시키고 정기평가 기간을 3년으로 정하면서 실효성에 의문을 표하는 시선도 있다. 더벨은 디폴트옵션을 둘러싼 쟁점과 대응 현황을 5편에 걸쳐 자세히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2년 08월 31일 06:2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고용노동부가 퇴직연금 사업자별로 승인받을 수 있는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수를 소수로 제한하면서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 밀어주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용노동부는 계열사 펀드 판매비중 제한 규제를 디폴트옵션 상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업계는 디폴트옵션 상품 포트폴리오에서 계열사 펀드 비중을 늘려 퇴직연금 자금을 끌어들이고 향후 롤오버가 빠른 계열사 다른 펀드 판매를 줄이는 방식으로 계열사 밀어주기가 사실상 가능해 결국 대형사에 크게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디폴트옵션 상품수 한정…계열사 펀드 대거 포함 가능성 대두

고용노동부는 퇴직연금 사업자가 승인받을 수 있는 디폴트옵션 상품을 최대 10개로 제한했다. 퇴직연금 가입자의 투자성향을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등으로 구분하고 초저위험(1개)을 제외한 각 투자성향에 최소 2개 최대 3개의 상품만 허용하기로 했다. 사업자가 단일 상품이나 포트폴리오 상품으로 최대 10개 상품을 꾸려 신청하면 고용노동부 심의위원회가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퇴직연금 업계에 따르면 사업자들은 디폴트옵션 신청상품에 계열 자산운용사의 펀드를 대거 포함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디폴트옵션 신청상품수가 애초 소수로 한정되면서 사업자로서는 계열사 펀드를 먼저 포함시키려는 유인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는 오는 9월 심의위원회 위원 구성을 확정하고 10월 첫 위원회를 개최해 디폴트옵션 상품을 승인할 계획을 밝힌 상태다. 사업자들은 이 계획에 따라 신청할 상품을 꾸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퇴직연금 적립금 규모 상위에 위치한 대부분 사업자는 계열사로 자산운용사를 보유하고 있다. 디폴트옵션이 확정기여형(DC)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에만 적용되는 점을 감안해 올해 상반기말 기준 DC와 IRP 적립금 합계로 나열한 상위 20곳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현대차증권을 제외하고 계열사로 자산운용사를 모두 확보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 퇴직연금 자금 의존도가 높은 삼성생명이나 현대차증권이 강세인 확정급여형(DB) 시장과 달리 DC와 IRP 시장은 KB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 등 시중은행이 주도하는 가운데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가 추격하는 구도를 보이고 있다. 이들 사업자의 계열 자산운용사도 삼성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KB자산운용 등 운용업계 최상위 플레이어들이다.

특히 이들 대부분 자산운용사는 고용노동부가 디폴트옵션 상품으로 가능하다고 명시한 핵심 유형인 타깃데이트펀드(TDF)와 밸런스펀드(BF) 라인업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TDF 라인업을 갖춘 자산운용사는 모두 17곳으로 이중 TDF 분야 선두를 다투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을 비롯해 KB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 하나UBS자산운용 등 대부분 자산운용사가 상위 퇴직연금 사업자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BF에 포함되는 EMP(ETF Managed Portfolio) 펀드는 TDF보다 운용 중인 자산운용사가 더 많다.

◇판매비중 제한규제 회피 여지 충분 ”대형사만 이익”

고용노동부는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비중 제한 규제를 디폴트옵션 상품에도 동일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계열사 펀드 밀어주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가 근거로 든 것은 금융위원회가 금융사의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2013년 4월부터 금융투자업규정으로 정하고 있는 계열사 펀드 판매비중 제한과 관련된 내용이다.

금융투자업 규정에 따르면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 펀드 판매사는 그해 펀드 총 판매금액 중 계열 자산운용사 펀드 판매금액이 25%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판매비중 상한선은 최초 50%에서 매년 5%포인트씩 축소됐으며 2020년 35%, 지난해 30%를 거쳐 올해 25%로 최종 굳어졌다. 고용노동부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펀드만으로 상품을 구성할 위험을 이미 검토했고 디폴트옵션 상품도 판매비중 제한 대상에 포함시키면서 이런 위험을 해소했다는 입장이다.


고용노동부의 해명에도 퇴직연금 업계는 빈틈을 지적하면서 실효성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먼저 상품 구성 측면에서 보면 퇴직연금 사업자가 포트폴리오 상품을 구성할 때 해당 포트폴리오에 편입되는 각 펀드의 비중을 위험도에 따라 임의로 정할 수 있다.

계열 자산운용사가 디폴트옵션 상품 유형에 포함되는 TDF, BF, 스테이블밸류펀드(SVF), 사회간접자본(SOC)펀드 등 4개 유형에서 다양한 위험도의 펀드 라인업을 다수 확보하고 있다면 이들 계열사 펀드가 포함될 여지는 더 커진다. 대형 자산운용사를 계열사로 보유하고 있는 사업자일수록 계열사 펀드가 더 많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상품 포트폴리오에서 계열사 펀드 비중이 늘어날 경우 반대로 다른 자산운용사 펀드는 아예 포함되지 않거나 포함되더라도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포트폴리오 내 펀드별 비중 조절을 통해 다른 자산운용사 펀드를 사실상 배제할 수 있는 것이다.

계열사 펀드 판매비중 제한 규제에도 빈틈은 존재한다. 이 규제를 적용하는 기준은 판매잔고가 아닌 사업연도별 신규 판매금액이다. 이 때문에 기존에도 펀드 판매사들은 연초에 장기예치가 기대되는 자금에 계열사 펀드를 집중적으로 판매한 이후 연말로 갈수록 롤오버가 빠른 계열사 다른 펀드의 판매를 줄이는 방식으로 판매비중 제한 규제의 영향을 최소화해왔다.

이같은 방식을 디폴트옵션 상품에도 그대로 적용하면 판매비중 제한 규제를 사실상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평가다. 특히 퇴직연금 자금은 업계에서도 일단 한 번 유치하면 적어도 3~5년은 유지할 것으로 인식할 만큼 대표적인 장기예치 자금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퇴직연금 사업자로서는 계열사 펀드를 디폴트옵션 상품 포트폴리오에 높은 비중으로 포함시켜 퇴직연금 자금을 끌어들여도 롤오버가 빠른 계열사 다른 펀드를 당분간 판매하지 않으면 대응이 가능하다.

금융투자업규정은 계열사 펀드 판매금액 산정에서 제외되는 상품으로 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금융펀드, 기관투자자 및 전문투자자 전용 사모펀드, 상장지수펀드(ETF)만 포함시키고 있다. 사업자는 이들 펀드 이외에 롤오버가 빠른 다른 펀드를 골라 판매를 줄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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