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2월 06일 15: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투자에 보수적이던 삼진제약이 갑작스레 '오픈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이다. 치매·난치성 질환·AI(인공지능) 신약 등 주목하는 분야도 다양하다. 파트너사와 지분스왑을 하는 결단도 내렸다.

이 같은 삼진제약의 변신은 지배구조 측면에서도 꽤 중요한 전환점이다. 오너 2세들이 주요경영진으로 등극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성장동력을 '경영시험대'로 활용하는 분위기다. 하나제약이라는 애매모호한 신규주주가 최대주주로 오른 데 따라 오픈이노베이션 파트너사를 '우호세력'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작년부터 파트너사 MOU 적극적, 치매·난치성 질환·AI 등 분야 다양

삼진제약은 '게보린'이란 소염진통제로 소비자들에게 널리 알려져있지만 사실은 '전문의약품(ETC)' 중심의 제약사다. 순환기계·뇌신경계·소화기계 의약품 등 고령화 사회의 만성질환 치료에 필요한 제품을 생산 및 판매하는 데 주력한다. 매출비중은 ETC 75%, OTC 15% 비중이다.

최근엔 전문의약품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탈피해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기 위해 건강기능식품 등 새로운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컨슈머 헬스'라는 신규부서를 조직한 것도 이의 일환이다.


신약 연구개발(R&D)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파트너십을 맺고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기 위한 공동연구 및 양해각서(MOU)를 잇따라 체결하고도 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공개된 MOU 발표만 총 9건이다.

디지털 치료제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휴레이포지티브와 손잡았고 AI 신약연구를 위해 사이클리카·심플렉스·인세리브로 등과 제휴를 맺었다. 이밖에 온코빅스와 난치성 질환 치료제 개발, 핀테라퓨틱스와 표적단백질분해 신약 개발 등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삼진제약에 있어 가장 큰 파트너십은 아리바이오와 체결한 치매 치료제 개발이다. 지난해 5월 삼진제약과 아리바이오는 난치성질환 치료제 분야의 연구개발과 전략적 협력, 신약 후보물질 도출과 개발 연구,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 개발 등을 진행하는 MOU를 체결했다.

핵심은 아리바이오가 미국 임상 3상 진입을 준비 중인 다중기전 경구용 치매 치료제 'AR1001'의 국내 판권 우선적 지위 확보였다. 아리바이오가 미국 콜롬비아대학교로부터 도입한 복합기전 치매치료제 'AR1002'(글로벌 임상), 경도인지장애 타깃 천연물질 'AR1004'(국내 임상) 치료제의 공동개발에도 나섰다.

돈독한 파트너십을 위해 삼진제약과 아리바이오는 자사주 스왑도 체결했다. 삼진제약이 아리바이오 지분 5.47%, 아리바이오가 삼진제약 지분 8%를 확보했다. 삼진제약이 오픈이노베이션 목적으로 타 법인 지분을 확보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하나제약 최대주주 등극, 아리바이오 공동경영 시스템 뒷받침

삼진제약이 갑작스레 오픈이노베이션에 나선 건 궁극적으로 오너십과 연관돼 있다는 시각이 있다. 삼진제약은 현재 공동창업자인 조의환 회장과 최승주 회장이 공동경영하고 있다. 대표이사는 전문경영인에게 맡겼고 두 회장은 사내이사로 지배력을 행사한다.

두 회장의 자녀들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직급도 동일하다. 조 회장의 장남 조규석 부사장은 경영관리를, 차남인 조규형 전무는 영업을 담당한다. 최 회장의 장녀 최지현 부사장은 마케팅을, 차녀 최지선 전무는 커뮤니케이션을 맡고 있다.

창업세대가 중견 제약사로 골격을 만들었다면 2세로 넘어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가 부여됐다. 특히 후계자가 단 한명이 아닌 4명이 거론된 상황에서 신성장동력에 대한 갈망은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갈등없이 공동경영의 승계를 위해선 사세를 더 키워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경영권은 없지만 새로운 최대주주로 하나제약이 등극하면서 우호세력이 필요해졌다. 하나제약이 공동창업주 가운데 어느 한편과 연대를 맺었다는 설(說)도 나오지만 두 집안의 공동경영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의 지배력을 뒷받침 할 파트너가 절실했다는 분석이다.


최대주주인 하나제약측 지분은 13.1%다. 조 회장 일가는 12.9%, 최 회장 일가는 9.87%다. 조 회장과 최 회장측 지분율을 합하면 22.8%다. 아리바이오가 보유한 지분율까지 포함하면 30.8%로 늘어난다. 지분기 4개 주체로 분산돼 있는 셈이다. 두 집안에서 균열이 생기더라도 어느 한 곳이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기 어려운 만큼 균형을 이룰 수 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삼진제약이 오픈이노베이션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배경에는 신약개발 및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한 전략적 판단도 있지만 오너 지배력을 뒷받침하는 기반을 마련하는 차원으로도 해석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