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3월 27일 07:5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IB는 늘 선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선을 넘으면 범법이지만 잘 타면 묘수를 찾는다." 과거에 만난 한 증권사 IB가 한 말이다.증권사 IB에게 애로사항을 물으면 언제나 규제 리스크를 꺼내든다. 업무 영역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도, 그렇다고 한정되어 있지도 않다. IB라는 개념이 국내에 도입된 역사까지 짧다보니 무엇이 합법이고 범법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최근 회사채 수요예측을 두고 일어난 사태가 그랬다. 국내 한 발행사와 주관사는 15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해 치른 수요예측에서 2190억원의 수요를 확보했다. 희망금리밴드로 -30~+170bp를 제시한 가운데 신고가 기준 140bp에 수요를 채웠다. 나머지는 140bp 이상에 들어왔다.
2500억원으로 증액 발행과 함께 낙찰 가산금리는 140bp로 확정했다. 그 결과 수요예측에서 140bp보다 높은 가산금리를 써낸 기관투자자들은 자신들이 써낸 금리에 매입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다. 조달금리를 절감하면서 발행사와 주관사는 묘수로 여겼을 터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에 발생했다. 이를 두고 투자자들이 금융투자협회에 민원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IB업계 여론이 악화됐다. 금융감독원은 주관사를 제외한 대형 증권사 DCM 본부장들을 불러모아 해당 사태를 논의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수요예측 모범규준에 허점이 있다는 데 모두 공감했다. 금감원의 검토를 거쳐 금투협은 모범규준을 수정했다. 앞으로는 밴드내 들어온 주문을 모두 유효수요로 인정하고 주관사 임의로 미배정할 수 없도록 했다. 이를 즉각 배포하고 이달말부터 재개되는 회사채 발행에 반영토록 했다. 이로써 이번 사태는 일단락됐다.
하지만 냉담했던 IB업계 여론과 달리 주관사에 어떠한 패널티도 적용되지 않았다. 수요예측 제도의 허점을 발견해 개정하고 보완했을 뿐이다. 고객의 만족과 규제 사이에서 선을 탔던 주관사는 모험을 했지만 묘수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IB의 의무는 적절한 전략을 제시해 고객의 원활한 조달을 돕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규제 리스크를 안고 묘수와 범법 사이에서 늘 선을 타야 하는 처지다. 선을 잘 타면 자본시장에 좋은 선례를 남기는 모험으로 남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뭇매를 맞고 만다.
그렇다고 이들의 모험을 위축시키는 것 만이 답일까. 국내 대형 증권사들이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의미에서든 더 많은 모험이 필요하다. 그럴때마다 자본시장이 한 층 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지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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