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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V 리포트]HD현대와 카카오의 합작, 4년 만의 이별⑦2019년 의료 빅데이터 기업 설립...의견차이 극복 못하고 지난해 청산

조은아 기자공개 2023-04-07 07:35:47

[편집자주]

최근 몇 년 사이 기업들의 만남 소식도, 이별 소식도 부쩍 늘었다. 산업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경영환경도 빠르게 변하면서 합작법인(조인트벤처·JV)은 기업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로 떠오른 지 오래다. 끝이 정해져있다는 명확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단 손부터 잡고보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더벨이 주요 기업의 만남과 이별 사이에 숨겨진 이해관계를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4월 05일 08:1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2018년 8월 29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정기선 당시 HD현대 경영지원실장과 김범수 카카오 의장, 여민수 카카오 공동대표가 한자리에 모였다. 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그룹)과 카카오가 만나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맺는 자리였다. 합작법인에 거는 양측의 기대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다소 어색한 조합이지만 당시엔 의도도 목표도 명확했다. 4개월 뒤인 2019년 1월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가 야심차게 출범했다. 국내 최초의 의료 빅데이터 기업이었다. 그러나 둘의 만남은 오래가지 않았다. 3년 반가량을 조금 넘긴 지난해 7월 이사회를 통해 공식 청산이 결정됐다.

둘의 만남과 이별까지의 과정은 합작법인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다는 현실을 잘 보여준다. 특히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합작공장)의 경우 운영 과정에서 의견차이가 크지 않지만 뚜렷한 길이 아직 없는 신사업 분야에서는 의견 충돌 역시 잦을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의료 빅데이터로 의료 생태계 기여" 야심찬 출발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는 국내에는 생소한 의료 빅데이터 기업이다. HD현대가 100% 출자해 현대미래파트너스를 세운 뒤 현대미래파트너스가 합작법인 설립에 참여하는 방식으로 설립됐다. 지분은 현대미래파트너스 45%, 아산사회복지재단(아산병원) 5% 등 HD현대그룹이 50% 카카오인베스트먼트가 50%였다.

양측의 지분율이 절반씩이었던 만큼 이사회 자리 역시 동등하게 유지했다. 각각 한명씩 대표이사를 선임하는 공동대표 체제를 이어갔고 사내이사 혹은 기타비상무이사도 각각 한명씩 뒀다. 사외이사는 아산병원 심장내과 교수가 맡았다.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가 병원 전자의료기록(EMR)과 다양한 임상시험 정보, 예약기록 등 의료 빅데이터를 제공하는 플랫폼을 개발해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바이오 기업, 관련 스타트업 등에 제공하는 모델이었다. 병원의 서비스 질 향상은 물론 희귀난치성 질환 극복을 위한 신약 개발에도 기여한다는 포부 역시 있었다.

역할 분담도 명확했다. HD현대는 사업모델 다각화 및 전략을 담당했다. 아산병원은 국내 최대규모 병상과 하루평균 외래환자 약 1만2000명, 연간 6만4000여건에 이르는 고난이도 수술을 시행해온 노하우 등을 바탕으로 데이터 구성을 담당했다. 카카오 측에선 인공지능 기술과 플랫폼 개발 및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자료를 분석하고 이를 데이터로 만든다는 계획이었다. 플랫폼 개발 역시 카카오 측에서 맡았다.

각자의 목표도 뚜렷했다. HD현대그룹의 경우 그룹 차원의 신사업 추진이라는 목표 외 정기선 사장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목적 역시 있었다. 당시는 정기선 사장은 그룹 내 존재감을 높이면서 적극적으로 신사업을 진두지휘하던 시기였다. 기존 주력사업뿐만 아니라 신사업을 통해서도 경영능력을 증명해 안팎에서 입지를 더욱 단단히 다진다는 구상이었다. 자본금 100억원짜리 회사를 만드는 계약식 자리에 정 사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낸 것만 해도 알 수 있다.

카카오 역시 경쟁사인 네이버 추격에 속도를 내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당시는 네이버가 국내 굴지의 제약사와 함께 의료 빅데이터 분야의 특수목적사(SPC) 설립을 공언한 상태였다.

사업의 성장성 역시 높았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의료 빅데이터 시장은 2023년 5600억원 규모로 2013년 대비 약 6.5배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업계 역시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 첫 의료 빅데이터 전문회사로 의료업계는 물론 IT업계 역시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에 주목했다. 수익은 2020년쯤 낼 것으로 예상했다.

카카오인베스트먼트·HD현대·서울아산병원 경영진이 2018년 8월 29일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에서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 설립 계약을 맺은 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뒷줄 왼쪽에서 네번째부터 정기선 당시 HD현대 경영지원실장, 김범수 당시 카카오 이사회 의장, 여민수 당시 카카오 공동대표. <제공=카카오>
◇계속된 잦은 의견 차이... 3년 반 만에 합작 종료

아산카카오메디컬데이터는 지난해 결국 청산 절차를 밟았다. 사업의 핵심인 플랫폼의 방향성을 놓고 양측이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충돌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HD현대그룹이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전문적 플랫폼을 구상했던 반면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측은 일반인 대상의 대중적인 플랫폼을 원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사업자와 플랫폼을 만드는 사업자 간 태생적 간극이 합작 과정에서도 전혀 좁아지지 않았던 셈이다.

처음 결별설이 흘러나온 건 지난해 5~6월, 실제 청산을 위한 이사회가 열린 건 7월이다. 2018년 8월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계약을 맺었는데 정확히 4년 만에 계약부터 실제 설립, 그리고 청산까지 빠른 속도로 결정됐다.

특히 출범 초반부터 운영이 삐거덕거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카카오인베스트먼트 쪽에서 빅데이터 플랫폼을 구축할 개발자 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았고 EMR 데이터 소유와 활용 문제를 두고도 처음부터 잡음이 있었다.

아산병원이 EMR 데이터 제공에 소극적으로 임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사실 병원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었다. 환자의 의료 관련 정보는 개인정보 중에서도 특히 민감한 정보인 탓에 아산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설립 초반부터 제기됐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계획한 대로 돈을 벌 수가 없었다. 당초 출범 이듬해인 2020년부터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했지만 청산 직전인 2021년 매출은 1억200만원에 그쳤다. 영업손실은 5억1000만원이었다.

업계 관계자는 "합작공장 등 생산을 위한 합작법인은 상대적으로 운영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사업 성격이 전혀 다른 두 곳이 만나 제3의 사업을 하는 건 또 다른 얘기"라며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하나 의사소통을 통해 의견을 맞춰가는 게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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