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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세계와 '1호'의 용기 [thebell note]

서하나 기자공개 2023-04-14 08:32:05

이 기사는 2023년 04월 13일 07:4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기자가 된 후로 '커피' 없는 삶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카페인에 취약해 오후 3시를 넘겨 마시면 반드시 밤잠을 설친다. 그런데도 커피와 함께 마감하는 습관을 도저히 포기하지 못하겠다. 입맛만 고급화돼서 점점 비싸고 좋은 커피를 찾고 다니는 건 함정이지만.

주류의 세계에선 유독 '와인'에 매료된 사람들이 많다. 마실수록 자신만의 취향이 생긴다고 한다. 수많은 미식가들은 포도의 품종과 생산지, 제조법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맛을 즐기기 위해 와인에 빠진다. 어떤 이는 와인만이 주는 차분한 분위기가 좋아, 또 배워야만 제대로 즐길 수 있어 학문과 같다며 매료된다.

명품 저리 갈 만큼 값비싼 컬트 와인의 세상도 존재한다. 당장 없다고 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이 생기거나 큰 불편을 겪을 일은 없지만 누군가에게 이미 와인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세상 누군가가 문학, 미술, 음악 혹은 커피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국에서 와인 시장이 무르익고 있다. 2008년 리먼 사태 전까지만 해도 소득수준 상위 1% 인 톱라인만 와인을 즐겼다고 한다. 이후 경제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면서 보편화됐다. 최근엔 다양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MZ세대들도 와인에 열광하고 있다.

마승철 나라셀라 회장은 한국에서도 서서히 와인이 꽃 피는 시기를 맞을 것이라고 봤다. "때가 왔다, 누군가는 가야 할 길"이라며 기업공개(IPO)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다. 나라셀라는 국내 와인 업계 1호 타이틀을 걸고 코스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한국 와인 시장의 성장 여력은 여전하다. GDP 대비 1인당 와인 소비량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1인당 와인 소비량은 약 1.9병인데 한국보다 먼저 와인을 수입한 일본의 경우 3.6병이다. 중저가로 입문해 고가·프리미엄으로 넘어가는 와인 시장 특성만 감안해도 자연스레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기관 분위기는 반반이다. 나라셀라는 지난해 미래 전략 컨설팅, IPO 준비 등 8억원가량 비용이 들었지만 견실한 실적을 냈다. 미래 추정 이익만으로 기업가치를 산출하는 기업이 난무하는 상황 속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다음 주면 수요예측을 거쳐 받아들 성적표의 윤곽이 어느 정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LVMH를 피어그룹에 넣었다가 다시 제외하는 시행착오도 겪었다. 어디서든 '1호' 타이틀은 고단한 법이다. 오죽하면 '1호가 될 순 없어'란 프로그램도 있을 정도일까. 그만큼 부담이 크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게 1호의 몫이다.

첫 번째 펭귄의 완주 소식을 2, 3호도 기다리고 있다. 첫 번째 펭귄은 남보다 먼저 용기를 내고 도전해 다른 이를 참여시키는 선구자를 일컫는 관용어다. 천적에 잡아먹힐 일을 각오해야 수천 마리 배고픈 펭귄도 바다로 향할 수 있다. 한국 와인 문화를 선도하겠단 포부로 1호 타이틀을 짊어진 주인공이 그 포문을 잘 열어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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