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전지 ESS 산업 분석]'위기를 기회로' 삼성SDI, 올해 中과 정면대결 예고③창립 39주년 비전 선언으로 사업 첫발...BMW·폭스바겐 수주에 '안전성' 입증
정명섭 기자공개 2023-06-01 07:19:50
[편집자주]
에너지저장장치(ESS)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급격한 기후 변화와 각국의 탄소중립 정책 가속화 등으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쓸 수 있는 ESS가 각광받고 있다. 최근에는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 발전 시장 확대와 맞물려 에너지 신산업 발전의 주춧돌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더벨은 글로벌 ESS 산업 동향을 살펴보고 국내 기업들의 기회 요인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5월 30일 16:1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SDI의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은 '지속가능 경영'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시작된 신사업이다. 사업 의도는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실제로 ESS 사업이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를 보면 기후변화나 천재지변, 각종 사고로 에너지 위기가 있었다. 중국 기업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리튬인산철(LFP) 전지 시장에 진출해 빼앗긴 점유율을 회복한다는 복안이다.◇창립 39주년에 내린 'ESS' 진출 결단
삼성SDI가 ESS 시장에 처음 발을 디딘 시기는 창립 39주년을 맞이한 2009년이다. 당시 전 세계에는 '그린 이코노미' 바람이 불었다. 자원 고갈과 에너지 가격 불안정, 기후 위기 문제 등이 불거진 탓이다. 주요 선진국은 경제 성장과 환경 보호를 선순환하는 지속가능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SDI는 세계적인 흐름을 고려해 '친환경·에너지 전문기업'을 새 비전으로 내걸었다. 소형전지 위주에서 ESS와 차세대 태양전지 같은 대형 전지 분야로 발을 넓히는 게 핵심이었다. 2000년대부터 휴대폰과 노트북, 전동공구용 전지 시장에서 쌓은 기술력과 생산능력이 자신감의 원천이었다.
이를 통해 전체 매출의 41%를 차지하는 이차전지 사업 비중을 50%까지 확대하는 목표를 세웠다. 사업 중심축을 이차전지와 에너지 중심으로 바꾸겠다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삼성SDI는 그해 10월 ESS사업 TF를 발족했다. TF는 전력 분야에 관한 시장조사를 해오다가 1년 후인 2010년 10월에 ESS사업팀으로 새출발했다. 이 시기에 연구개발(R&D)과 설비 투자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삼성SDI의 시설투자 비중을 보면 2009년 전무했던 ESS 부문 비중은 2010년 9%까지 오른다.
당시 삼성SDI는 경쟁사 LG화학이 에너지 밀도가 높은 파우치형 전지를 앞세운 것과 달리 각형 전지를 내세웠다. 마케팅 포인트는 '안전성'이었다. 삼성SDI는 각형 전지가 매일 충전과 방전이 반복되는 ESS 운영 환경에 견디기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겉을 둘러싼 알루미늄 캔은 부식과 충격에 강한 소재이며 발열 관리에도 용이하다고 설명했다.
2009년 삼성SDI가 BMW로부터 전기차용 배터리 단독 공급업체로 최종 선정된 것은 안전성을 입증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성과는 향후 미국 등 안전성을 높이 평가하는 국가에서 ESS 대규모 프로젝트를 수주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세계 곳곳 발생한 에너지 위기가 기회로
그러나 사업 초기에는 ESS 개념이 생소하고 수요가 적어 좀처럼 수주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ESS사업 TF가 2009년에 참여한 '제주도 스마트그리드 실증사업 프로젝트' 같은 정부 주도 시범과제에 참여해 레퍼런스를 쌓는 방법밖에 대안이 없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현지 전력 단가가 요동쳤다. 안전상의 이유로 원자력발전소 발전이 중단돼 화력발전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산업 현장과 가정에선 자급적으로 전력 시스템을 갖출 필요성을 절감했다.
특히 가정용 ESS가 전기절약이나 정전 같은 재난 대비를 위한 비상 전원으로 수요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는 그해 삼성SDI가 일본 전력제어 기술 기업 니치콘과 가정용 ESS를 독점 공급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삼성SDI가 ESS 전지와 제어시스템을 공급하면 니치콘이 전력제어장치를 추가해 완제품을 제작하는 협력이었다.
또 한 번의 기점은 2015년 유엔 기후변화 회의에서 채택된 '파리기후협약'이었다.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2도 이상 상승하지 않도록 하고 모든 국가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해 자체적으로 온실가스 배출 목표를 정하고 실천하자는 협약이다.
이를 계기로 독일과 영국은 원자력발전 폐지 정책이 추진됐다. 중국, 일본 등 주요 국가에서도 신재생 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정책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삼성SDI가 미국 발전사 듀크와 풍력 연계 ESS 프로젝트 부문에서 협력하고 세계 3대 엔지니어링 기업인 스위스 ABB 등과 연이어 협력 체제를 구축한 시기도 모두 2015년부터다.
같은 기간 미국 진출 기회도 왔다. 캘리포니아주에선 알리소캐년 가스저장소에서 가스 누출 사고로 전력 부족사태가 발생한 영향이다. 이후 2016년 5월 캘리포니아 공공발전위원회가 ESS 설치 계획을 발표했고 삼성SDI는 현지 ESS 시스템 회사들과 손잡고 240MWh 규모의 ESS용 전지를 공급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ESS 전지 수주 물량이어서 큰 주목을 받았다.
◇2021년 中에 1위 내줘...LFP로 점유율 회복 기대
이같은 성과에 힘입어 삼성SDI는 LG화학과 양강 체제를 구축했다. 두 회사의 글로벌 ESS 전지 시장점유율은 50%에 육박했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2016년 글로벌 ESS용 전지 시장점유율 1위는 LG화학(23%), 2위는 삼성SDI(21%)를 차지했다. 1년 후인 2017년에는 삼성SDI(38%)가 1위로 올라섰다.
이후 삼성SDI와 LG화학은 1·2위 자리를 다퉜으나 2021년 중국 CATL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중국 기업들이 저렴한 LFP 전지를 앞세워 국내외 ESS 시장을 빠르게 공략한 결과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각각 점유율 5위와 4위까지 떨어졌다.
지난 3월 LFP 전지 개발을 공식화한 삼성SDI가 향후 중국 기업들에 빼앗긴 점유율을 되찾아올 지 관심이다. 삼성SDI가 LFP 전지 개발이나 준비 상황 등을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LFP 전지는 국내 이차전지 제조사들이 강점을 보이고 있는 삼원계 전지 대비 기술 수준이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LFP 양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중국 기업과 점유율 격차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업체와 경쟁 상황을 차치하더라도 ESS 시장 자체가 고도 성장기에 돌입한 점은 삼성SDI에겐 호재다.
최근 3년간 삼성SDI의 ESS 매출을 보면 2020년 1조3000억원, 2021년 1조5000억원, 2022년 2조1000억원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올해는 2조8000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한 수치다. 이는 전기차 전지 매출만큼 빠른 성장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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