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3년 06월 14일 08시06분 thebell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얼마전 스마트폰 부품사 A의 한 임원이 티타임 중 독특한 질문을 건넸다. "요새 블루오션 산업군 좀 알려주세요." 처음엔 주식 종목을 추천해달라는 뜻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정체된 카메라모듈 시장 굴레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할 만한 사업을 찾고 있다고 했다.자동차 전장, XR기기(VR+AR), 게이밍 모니터,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등. 전자업계 출입기자로서 보고 들은 최신 키워드들을 생각나는 대로 읊어봤다. 그의 표정은 썩 새롭지 않다는 듯 실망감이 가득했다. 이미 다 검토했던 사업인데다 경쟁사들이 선점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고 했다. M&A도 수차례 검토했지만 쉽진 않았다.
A업체의 사연은 이렇다. 모태는 금형회사다. 47년 업력을 다져왔다. 한 때는 소니 TV 외관에 쓰이는 플라스틱 사출 제조사로 선정돼 매출성장 기조의 영광을 누리던 시절도 있었다. 국내 TV 판도가 삼성과 LG로 좁혀지며 먹거리를 잃었다.
한번은 카메라모듈사의 수주를 받아 외관을 감싸는 육각형 사출을 만들어 납품한 적이 있는데 직접 카메라 모듈을 개발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에서 기회를 만들어 냈다. 공격적 투자로 캐파도 늘렸고 결국 삼성 공급망 진입에도 성공했다. 이젠 스마트폰 카메라모듈 매출로 먹고 사는 회사가 됐다.
다만 고객사 눈칫밥은 여간 힘든게 아니었다. 삼성은 협력사를 선정할 때 1차적으로 중저가 라인인 A시리즈 공급망에 투입시켜 검증하고 이후 어느정도 신뢰가 쌓였을 때서야 프리미엄 라인인 S시리즈나 Z시리즈 협력 대열에 투입시킨다. 삼성과 관계를 고려하면 애플 등 다른 고객사 문을 두드리기도 어렵다.
문제는 이렇듯 삼성만 바라보는 카메라 모듈 등 부품사만 국내에 30여개에 달한다는 점이다. 경쟁은 점점 치열해지고 새로운 캐시카우에 대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다.
그가 생각한 신사업은 부품사 관점에 얽매인 게 아니다. 보다 주체적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완제품 아이디어도 생각 중이다. A업체도 과거 의자 브랜드 '커블'의 금형부분을 납품한 적이 있었다. 커블은 히트상품으로 대박을 쳤지만 부품사인 A업체가 누리는 수익은 미미했다.
최근엔 사업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스타트업들도 쫓아다녀봤다. 내부적으로 공모전도 수차례 진행했다. 아예 플라스틱 사출 자체를 판매하는 방식까지 검토 중이다. B2C를 위한 홈쇼핑부터 B2B채널까지 방식은 폭넓게 검토 중이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만감이 교차했다. 아무리 오랜 전통을 가진 제조사일 지라도 급변하는 시장 트렌드를 따라가는 건 쉽지 않다. 결국은 스타트업들과 같은 출발선상에 서야 한다는 점이 씁쓸했다.
성숙기에 접어든 스마트폰 시장의 한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부품사들 마다 치열한 고민을 하고 있으리라 짐작된다. 이들이 삼성전자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과 더불어 향후엔 4차산업 혁명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길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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