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B그룹은 지금]새 정체성 'Human Life Better' 중심엔 리보세라닙①바이오 기업으로 정체성 재정립 사활, 관건은 美 허가 여부
차지현 기자공개 2023-07-17 09:32:16
[편집자주]
에이치엘비가 종합 바이오사로 탈바꿈을 예고했다. 한국거래소 업종 변경을 마친 데 이어 물적분할로 기존 선박 사업 부문도 떼어냈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바이오 사업을 위한 기반도 다졌다. 정체성 재정립의 마지막 퍼즐은 '리보세라닙'이다. 10여 년에 걸친 노력 끝에 올해 간암 치료제로 미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다. 에이치엘비는 진정한 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변화 행보를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3년 07월 13일 07:4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에이치엘비의 역사는 '리보세라닙'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리보세라닙은 지난 10여 년간 에이치엘비가 개발해 온 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이다. 이를 앞세워 시가총액 5조원대 기업으로 성장했지만, 위암 대상 임상 3상에서 고배를 마시며 성공 가능성에 대한 의심을 받아왔다.늦어도 내년 5월 리보세라닙의 미국 시장 진출 여부가 판가름 난다. 에이치엘비 입장에서 리보세라닙 미국 식품의약국(FDA) 품목허가는 신약 개발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선박 제조업 꼬리표를 떼어 내고 바이오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공고히 할 기회다.
최근 변신 작업에 한창이다.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바이오 사업을 영위하기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선박 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해 그룹 역량도 바이오 사업으로 응집시켰다. 다만 리보세라닙 성공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진정한 바이오 기업으로 거듭나기 어렵다.
◇'제조업' 꼬리표 떼고 체질개선 본격화
Human Life Better. 에이치엘비가 올해 새롭게 제시한 비전이다. 인류의 생명을 연장하고 삶의 질을 개선하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신약 개발 등 바이오 사업을 기반으로 해당 정신을 현장에서 실천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에이치엘비의 전신은 1975년 현대그룹 자회사로 설립한 경일요트다. 고급 요트, 관공선, 어선, 구명정 등 선박 제조업이 주력이었다. 2000년 현대라이프보트(Hyundai Life Boat)로 이름을 바꿨다. 영문 앞 글자를 따서 만든 게 현재의 사명이다.
사명은 기업 정체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설립 40여 년 만에 사명 의미를 바꾼 건 바이오 기업으로 정체성을 재정립하겠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실제 새 비전을 정하기 위해 그룹 내부적으로도 깊게 고민했다는 후문이다.
에이치엘비는 2008년 이노GDN를 인수하면서 바이오 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바이오 사업을 확대하면서 '기타 운송장비 제조업' 꼬리표를 떼기 위해 공을 들였다. 바이오 기업으로 체질개선을 통해 기업가치를 제고하기 위한 차원에서다.
최근 변화가 가시화하는 모습이다. 활발한 M&A 전략으로 바이오 사업 기반을 마련한 뒤 지난해 말 한국거래소 분류 업종을 의약품 제조업으로 전환했다. 5월엔 선박 사업 부문을 떼어내 비상장법인 HLB ENG를 세웠다. 이로써 바이오 사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
◇우여곡절 20년 여정, 결실 눈앞
제법 바이오 기업으로서 면모를 갖췄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체질개선의 핵심은 신약 개발 성과다. 10여 년간 투자해 온 주력 파이프라인의 FDA 허가 여부가 최장 내년 5월 15일 이전에 결정될 예정이다.
에이치엘비는 지난 5월 FDA에 리보세라닙과 항서제약의 면역항암제 '캄렐리주맙' 병용요법을 간암 1차 치료제로 허가받기 위한 신약허가신청서(NDA)를 제출했다. 허가심사 착수(Filing) 여부는 빠르면 이달 중순 이후, 늦어도 다음 달 중순까지 통보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리보세라닙은 암 형성에 관여하는 신생 혈관 생성을 억제하는 원리의 2세대 표적항암제다. 암젠의 수석연구원 출신 폴 첸 박사가 미국 어드벤첸 연구소에서 2004년 발굴했다. 이후 HLB가 리보세라닙의 글로벌 특허권을 확보, 2011년부터 위암·간세포암·대장암·선양낭성암 등 여러 적응증으로 다국가 임상을 진행 중이다.
에이치엘비에 있어선 우여곡절이 많은 약물이다. 리보세라닙에 대한 기대감으로 에이치엘비는 시가총액 5조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19년 말기 위암 대상 다국가 임상 3상에서 1차 유효성 평가지표를 달성하지 못하며 주가 급락을 겪었다. 최종 관문에서 실패한 탓에 충격이 더욱 컸다.
임상 결과를 두고 시장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의구심을 낳기도 했다. 당시 에이치엘비는 세부 데이터를 확인했을 때 임상적 유의성이 있다고 판단, 위암 치료제로 NDA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그러나 4년 가까이 NDA 제출이 지연되자 성공 가능성에 의문부호가 붙었다. 여기에 리보세라닙이 에이치엘비가 자체 개발한 게 아닌, M&A 등 투자로 획득한 물질이라는 점도 의심을 키운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NDA는 그간 논란을 불식하고 바이오 기업으로서 정체성을 공고히 할 마지막 기회라는 데서 특히 중요하다. 또 파이프라인에서 리보세라닙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높았던 만큼, 실패하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긴 여정의 결자해지는 리보세라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임상 결과 자신감, 허가 전 '상업화' 준비한다
여느 바이오 기업이 그렇듯 에이치엘비도 지속해서 리보세라닙 성공 자신감을 피력해 왔다. 진양곤 회장이 그룹 공식 유튜브에 출연하며 임상 결과와 향후 전략을 설명하는 것도 자신감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가 기업설명회(IR)에서 '킬레가 또 데켕게'를 언급하며 주주를 설득했던 일화도 유명하다. 킬레가 또 데켕게는 '꽃이 피면 알게 될 것이다'라는 뜻의 힌디어다.
이번에도 리보세라닙 병용요법이 FDA 허가를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신감 원천은 임상 결과다. 간세포암 1차 치료제 임상 3상에서 대조군인 '소라페닙'(제품명 넥사바)보다 우월한 효능을 입증했다. 신생 혈관 생성 억제 기전 경구용(먹는) 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요법이라는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시한 점도 허가 가능성을 높인다.
특히 FDA 허가 결과를 받기 전 선제적으로 상업화 준비에 나선 점을 주목할 만하다. 품목허가 후 빠른 판매를 위해 생산 및 판매·유통 등 상업화 준비에 나섰다. 미국 자회사 엘레바는 이미 뉴저지주에서 의약품 판매 면허를 취득했다. 미국 전역에서 순차적으로 면허를 받을 계획이다. 리보세라닙 상업화를 위한 미국 내 전담 영업 조직도 꾸렸다.
에이치엘비 관계자는 "리보세라닙은 HLB그룹이 글로벌 신약바이오그룹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 자산"이라며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항암제 FDA 신약허가 단계에 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어 "리보세라닙은 미국에선 직접판매를, 유럽 및 아시아 등은 전문 유통업체와 협업 방식으로 판매할 방침"이라며 "미국의 경우 피크세일 기준 1조원 이상의 매출을 기대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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