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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김장하'의 나비 효과 [thebell desk]

김용관 부국장 겸 산업1부장공개 2023-10-04 12:08:47

이 기사는 2023년 08월 04일 07:3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국어사전에 나오는 '어른'의 뜻이다. 단지 덩치 큰 나이많은 사람을 어른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조건이 달려있다. 그런 점에서 요즘 어른스럽지 않은 성인이 정말 많다.

최근 *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 '어른 김장하'를 봤다. 고향 사람이 주인공이라는 이야기에 별 기대없이 봤는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는 시쳇말로 폭풍 감동이 밀려왔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가 있지, 요즘 같은 돈이 최고인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게 가능할까.'

가난한 시절, 머슴살이 하던 19세에 우연찮게 면허를 따고 한약방을 시작해 평생 수백억 넘게 번 돈을 지역 사회에 기부하면서 어떤 자랑도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

얼마를 기부하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왔는지 몇번을 물어봐도 눈만 껌뻑거리고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쏟아지는 미담들이 기자의 취재 발길이 닿는 곳에서만 드러날 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타인에게 자신을 자랑하고 싶어하는 관종의 세상, 스스로 자신을 숨기는 그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결국 아프고 괴로운 사람들 약값으로 돈을 벌었다. 다른 직업을 선택했더라면 그 돈을 가지고 호의호식할 수 있었고 호화 방탕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소중한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서 차곡차곡 모아 가지고 사회에 환원한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김장하가 재산 환원의 이유에 대해 직접 말한 거의 유일한 이야기다. 이 한마디에 김장하의 돈에 대한 철학이 담겨있다. 모든 후원이 잘 된 것도 아니고, 모든 장학생이 성공한 것도 아니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는다. 김장하는 "돈이란 똥이랑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하는데, 밭에 골고루 뿌려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사람이 되지 못해 죄송하다고 찾아온 사람에게 김장하는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거다"라고 위로한다. 후원을 받은 여고생이 대학에 가서 데모를 하다 형사에게 쫓길 때도 김장하는 말했다. "사회에 기여하는 길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데모도 그 방법 중의 하나다."

'줬으면 그만'인 삶의 나비 효과가 멀리멀리 퍼진다. 결국 김장하의 행동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다.

돈많은 재벌, 우리나라 재계에 이런 어른이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있을까. 이병철, 정주영, 구인회, 최종현. 대한민국 4대 그룹의 창업자로 그들 나름대로 사회에 큰 기여를 했다. 가난한 시절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돈을 모았고, 사회에 베풀었다.

숨기고 싶은 치부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 덕분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오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장하라면 돈많은 재벌 역시 사회를 이루는 좋은 구성원이라고 답할지 모른다.

이제 그들을 이어받은 2세, 3세들이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고 있다. 그들 중의 대표주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국민도 아닌, 현대차 직원도 아닌 인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정의선은 "인류의 행복에 공헌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라고 했다. 김장하처럼 자신을 숨기고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 외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경영 활동을 펼쳐 성공을 쟁취하는 기업 경영자라면 믿고 응원할만 하지 않을까.

어떤 삶이 좋다 나쁘다 평가하기는 어렵다. 김장하의 삶은 숭고한 삶이다. 모두가 그렇게 살 수 없고, 그렇게 살 필요도 없다. 시대는 계속 변하며 자신의 능력만으로 현재를 살아가기는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인간에 대한 배려, 곁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줄 아는 단단한 내면을 가지는 것,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다.

반평생 살아오면서 제대로 어른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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