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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3사 엔진 전쟁]'거북선 지폐' 내민 할아버지, 친환경 엔진 꿈꾼 손자②'글로벌 선박엔진 1인자' HD현대중, 한화그룹의 도전 맞설 방법은

허인혜 기자공개 2023-08-22 09:12:10

[편집자주]

선박엔진 산업은 국산끼리의 경쟁이 곧 글로벌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분야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상위권을 독식하고 있어서다. HD현대가 '원톱'으로, 중견 3사를 더해 4곳의 기업이 경쟁해 왔던 국산 선박엔진 시장에 최근 변화가 감지된다. 또 다른 대기업 한화의 등장 때문이다. HD현대와 한화가 엔진 전쟁으로 맞붙으면서 조선업계 빅3에도 파동이 예상된다. 더벨이 조선3사의 선박엔진 히스토리와 경쟁 전략을 살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8월 18일 15:57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990년~2000년대에는 의외의 장소가 수학여행·현장학습 인기 1위 장소로 꼽혔다. HD현대중공업 울산 본사다. 방문객들의 면면도 다양했다. 수학여행길에 오른 중고등학생부터 숭실대학교에서 '정주영 창업론' 주제의 교양수업을 듣던 대학생, 2002년 한국을 찾은 북한의 시찰단 등이다. 베트남과 몽골, 필리핀, 멕시코 등 여러 국가의 주요 정치인들도 HD현대중공업에 방문했다.

이들이 꼭 들렀던 장소가 현대중공업의 선박엔진 공장이다. 그만큼 HD현대중공업에게 엔진 사업부문은 오랜 자랑이다. 산업 기술과 제품을 주로 수입했고 국산은 제대로 팔아본 적이 없던 1980년대부터 글로벌 점유율 1위의 기록을 남겨준 사업 부문이라서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 명예회장의 '뼈 있는' 질문으로 출항한 선박엔진 사업

정주영 명예회장은 기세도 기세지만 뼈 있는 말을 잘 하는 '회장님'이었다. 특유의 질문식 화법으로 답을 이끌어내는 데도 능했는데, HD현대중공업의 엔진사업부를 출범하게 한 것도 임원과의 문답에서 시작됐다.

유명한 일화는 김형벽 전 현대중공업 회장에게 물었던 "전공이 뭐지?"다.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김 전 회장에게 선박에서 가장 중요한 기계를 만들라는 지시를 물음으로 건넨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일본 사람들도 하는데, 우리는 왜 못해?"라는 질문도 던졌다.

현대엔진이 1979년 개발한 국산 선박용 엔진 1호기. 사진=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은 1972년 3월 현대조선소 기공식을 열었다. 정 명예회장의 에피소드 중 가장 잘 알려진,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가 거북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설득해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의 차관을 얻어온 것이 시초다.

거북선의 정신을 내밀고 시작한 조선소인 만큼 국산 부품의 꿈을 꿨지만 사정이 녹록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HD현대중공업의 조선소 자체가 국산 1호였는데 부품까지 국산화를 찾기는 시기상조였다. 당연히 1970년대는 외국에서, 특히 일본에서 제품을 수입해 탑재했다.

HD현대중공업 엔진 사업의 본격적인 출항은 1978년 엔진 공장을 준공하면서부터다. 이 시기 정 명예회장이 '전공이 뭐지' 질문을 남겼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엔진사업 진출이 본격화 됐다. 이듬해인 1978년 8월 국산 1호 엔진공장이 설립됐다. 단일공장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약 10년뒤인 1989년에 HD현대중공업은 대형선박 엔진 부문에서 글로벌 1위를 수성한다. 1981년 외국 선주인 리바노스 선박에 자체 제작 엔진을 탑재한 것을 시작으로 수출길이 열렸다. HD현대중공업의 글로벌 대형 엔진 점유율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36%에 이른다.


◇대형 끌고 중형 밀던 엔진사업부, 중소형까지 확대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 부문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얼마나 크고 얼마나 힘센 엔진을 제작했는 지를 자랑하곤 했다. 그도 그럴것이 HD현대중공업이 잘 팔았던 배들은 주로 대형선박이었다. 1990년 수주한 선박만 봐도 초대형 광석운반선, 대형 유조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이었다. 미국과 말레이시아, 독일 등에 연달아 팔렸다.

HD현대중공업이 엔진의 '간결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한 건 2000년 8월 중형엔진 '힘센(HiMSEN)엔진'을 시장에 내놓으면서다. 1990년에도 중형엔진 1호기를 내놓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때는 독자개발한 힘센엔진 생산 이후다. 2011년 이후부터 HD현대중공업은 중형엔진은 100% 힘센엔진만 사용하고 있다. 글로벌 점유율은 28% 수준이다.

대형엔진을 필두로 중형엔진이 받치고 있던 제품 라인업은 최근 또 한번의 확장기를 맞았다. STX중공업 인수를 마무리하면서다. STX중공업 인수로 소형부터 대형 까지 라인업을 모두 갖추게 됐다.

STX중공업은 중소형 선박 엔진을 주로 생산한다. 선박용 저속 디젤 엔진, DF엔진, 액화천연가스(LNG)·액화석유가스(LPG) 엔진 등이 주요 제품이다. 여기에 STX중공업이 주요 부품인 터보차저(엔진 과급기) 분야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STX중공업은 1986년부터 터보차저를 국산화해 생산, 글로벌 조선소에 2만대 이상을 보급했다.

◇손자 정기선, 전무 시절부터 집중한 미래 엔진은

여전히 굳건한 1위지만, 영원히 안전한 1등은 없다. 그만큼 도전자의 견제가 큰 자리라서다. 최근 HD현대중공업 엔진사업부의 자리도 흔들릴 가능성이 엿보인다.

대기업 한화그룹의 참전 때문이다. 한화그룹이 HSD엔진을 사들이면서 HD현대중공업과 HD한국조선해양의 '현대팀', 한화오션과 HSD엔진의 지분을 보유한 한화임팩트의 '한화팀'이 겨루게 됐다. 기존에 대기업 vs 중견 3사의 대결구도와는 부담감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 엔진 전쟁도 전쟁이지만, 정기선 HD현대 사장도 자신만의 포트폴리오가 꼭 필요했다. 정 명예회장의 손자만으로 HD현대 차기 총수의 자격을 입증하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의 성과로 자격을 인정받는 게 3세들의 가장 큰 과제다. 정 사장이 미래 먹거리이자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로 집중한 분야는 친환경 엔진 선박이다.
HD현대그룹이 개발 중인 액화수소운반선 개념도. 사진=HD현대

정 사장과 '친환경'이 같은 키워드로 묶인 건 꽤 오래됐다. 2016년 당시 전무였던 정 사장은 현대중공업 기획실 부실장의 자격으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사와 가스터빈 추진 선박에 대한 포괄적 사업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가스터빈 선박은 LNG연료 엔진의 친환경 선박으로 분류된다.

최연소 부사장에 오른 뒤부터 친환경 선박 행보는 더 빨라졌다. 35세의 나이로 부사장을 달며 재계 최연소 3세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이 시기 정 사장이 느끼는 중압감도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 부담감을 떨치는 방법이 친환경 선박 개조사업이었다.

HD한국조선해양과 HD현대중공업은 수소를 추진 동력으로 사용하는 수소연료전지 추진선을 개발 중이다. 대기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으면서 내연기관보다 에너지 효율도 40%나 높은 '꿈의 엔진'이다. 꿈이지만 현실로 다가오는 중이다. 수소엔진의 초석인 LNG·수소 혼소 엔진 실증에 지난해 성공하면서다. 정 사장이 8년간 걸어온 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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