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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의 재발견]'멀티' 현대차그룹과 HEV 토요타는 어떻게 맞붙었나④첫 하이브리드 '프리우스'로 시장 장악한 토요타, 현대차그룹 HEV·EV 투트랙으로 맞불

허인혜 기자공개 2023-09-22 07:25:02

[편집자주]

진화에 꼭 필요한 요소가 혼종(hybrid)이라면 하이브리드차는 그 이름부터 진화의 첫 걸음이다. 첫 하이브리드차로 거론되는 포르쉐 박사의 믹스테(Mixte)도 프랑스어로 '혼합된'이라는 뜻을 담았다. 1990년대부터 양산된 하이브리드차는 오랜 길을 걸었던 만큼 점차 당연한 존재가 됐지만, 최근 다시 핀 조명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내연기관차가 속도를 줄이고 전기차가 시동을 켜는 현 시점에 맞춰 하이브리드차의 역할이 급부상했기 때문이다. 더벨이 하이브리드차의 히스토리와 역할, 전망을 '재발견' 해본다.

이 기사는 2023년 09월 19일 16:0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토요타는 전기차 시장에서 약체로 꼽힌다. 하지만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토요타의 입지는 높고 단단하다. 토요타가 마음을 먹었다면 전기차 시장의 판도도 지금과는 달랐을 지 모른다. 토요타는 왜 내연기관차의 세대교체 차로 낙점된 전기차에 집중하지 않았을까. 믿는 구석인 하이브리드카가 있었기 때문이다. 늦었다기보다 전략적이다.

전략이어도 빈틈은 있었던 터, 토요타의 맞수인 현대차그룹은 전기차 퍼스트 무버를 지향하는 한편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에도 공을 들였다.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과 전기차의 공백, 그리고 그 틈을 잘 파고든 현대차그룹의 라이벌전을 스토리로 풀어본다.

◇'첫 하이브리드카' 프리우스의 의미는

토요타는 첫 상용 하이브리드카로 꼽히는 프리우스를 1997년 시장에 내놨다. 사실 이전에도 하이브리드카는 개발돼 있었다. 자동차 브랜드로 더 익숙한 포르쉐 박사가 '믹스테'라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를 만든 바 있다. 1900년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됐던 믹스테는 가솔린 엔진이 전기 모터를 돌리는 방식을 차용했다. 출력은 30마력, 최고 시속이 90km 수준이었다. 4륜 구동으로 '차'라고 부를 만한 조건은 갖췄지만 대중화는 안됐다. 랠리용으로 도로를 달렸다.

'진짜' 첫 하이브리드로 토요타의 프리우스를 꼽는 건 이때문이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출고된 양산형 하이드리드차다. 이후 10년 동안 다른 완성차 기업에서 이렇다할 양산형 하이브리드차를 내놓지 못했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었다. 덕분에 자리를 확실히 굳힌 차다. 프리우스는 여전히 같은 이름의 하이브리드차로 남아있다. 토요타 GR 프리우스 콘셉트다.

프리우스라는 단일 차종을 조명하는 이유는 프리우스의 성공이 단순히 한 차의 신화에 불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은 주요 완성차 시장 중에서도 손꼽히게 하이브리드에 집중돼 있는 곳이다. 올해 상반기를 기준으로 하이브리드차의 일본 시장 점유율이 약 55%에 이른다.

눈에 띄게 높은 HEV 점유율은 프리우스의 성공이 이어진 덕이다. 프리우스는 세대를 거듭하며 일본에서 대중화됐다. 프리우스를 처음 내놓은 지 10년 만에 토요타의 전체 매출 중 10%가 하이브리드카에서 나왔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이 갓 하이브리드카를 상용화하던 때다.

자동차 왕국으로 꼽히는 일본에서 하이브리드차가 우세하자 수출국에서도 하이브리드 점유율이 확대됐다. 2012년 신형 프리우스를 내놓았을 때 미국에서 가장 잘 팔린 하이브리드차로 프리우스가 한해 내내 최상위권에 올랐다. 현재도 글로벌 시장에서 팔리는 하이브리드차 중 절반 이상이 토요타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58%를 기록했다.

◇현대차 '3대'의 라이벌, HEV 허들 어떻게 넘었나

토요타의 프리우스가 양산될 때 현대차그룹은 어디쯤 서 있었을까. 하이브리드차를 한창 개발 중이었다. 프리우스 출시 2년 전인 1995년 서울모터쇼에 하이브리드 컨셉트카인 FGV-1 등을 내놨다. 2004년에야 상용화된 '클릭'을 내놨다. 그마저도 일반 대중용은 아니었고 관용차였다.

정주영·정몽구·정의선 3대의 오랜 라이벌은 토요타다. 창업주 정주영 명예회장이 늘 부품의 국산화를 강조한 일례나 정몽구 명예회장이 오랜만에 등장한 월례회의에서 토요타를 네 번이나 찾은 에피소드만 봐도 두 명예회장에게 '숙적'의 의미가 작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의선 회장도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토요타와 1위 경쟁을 벌이고 있다.

때문에 토요타의 하이브리드차 선전은 현대차그룹에게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사실 하이브리드차 시장에서 10년이 뒤쳐진 현대차그룹이 토요타를 라이벌로 여기는 것 자체가 맞지 않는 전제였다. 하지만 '안되는 것도 되게 하는' 게 현대차 회장들의 기조였던 터, 토요타의 속도가 높아질 수록 현대차그룹에게는 자극제가 된 셈이다.

현대차그룹은 토요타와의 하이브리드차 간극을 어떻게 풀었을까. 하이브리드차 시장만을 두고 보면 현대차그룹이 아직 열세지만 존재감은 꽤 커졌다. 최대 완성차 시장으로 불리는 미국을 예로 들면 지난달 하이브리드카 시장의 업체별 점유율은 토요타가 53%였고 현대차와 기아는 합산 점유율이 14% 수준이었다. 아예 명함도 내밀지 못했던 과거와 비교하면 큰 발걸음이다.

현대차그룹의 무기는 '멀티'다. 하이브리드차 개발과 함께 전기차 시장 선점에 공을 들였다.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 시장으로 선점이 필수라는 교훈을 얻어서다. 전기차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과 토요타의 입장이 뒤바뀐다. 2000년 현대차가 싼타페 전기차를 하와이에서 시범운행할 때 토요타는 2세대 프리우스 출시 준비에 한창이었다.

자국 전기차 시장에서 급부상 중인 중국 3대 기업을 제외하면 현대차그룹은 폭스바겐이나 스텔란티스 등 굴지의 기업들과 함께 전기차 판매량 톱5안에 든다.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가 함께 팔리는 지금이나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열릴 앞으로는 현대차그룹이 웃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라이벌전 벌어질 지역은…한일 넘는 결전지

현대차그룹이 하이브리드차로도 토요타를 껑충 뛰어넘는 곳이 있다. 홈그라운드인 내수 시장이다. 상반기를 기준으로 국내 하이브리드차 판매량 1~8위가 모두 현대차와 기아에서 나왔다. 그랜저와 쏘렌토, 스포티지, K8 등이 선전했다. 토요타의 고급차 브랜드 렉서스가 5033대로 9위에 올랐지만 현대차 그랜저의 판매량인 3만3056대의 15.2% 수준에 그쳤다.

최대 시장 미국에서도 현대차그룹이 선전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의 하이브리드 수요는 8월을 기준으로 전년 대비 31%나 늘었다. 같은 기간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의 판매량이 전년대비 72%, 투싼 하이브리드가 41% 확대됐다. 월간 기준 역대 최대 판매량이다.

미국의 하이브리드차 수요는 급격히 늘고 있지만 현재 전체 차종 중 점유율은 7% 수준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국가다. 토요타가 장악하고 있지만 패가 뒤집힐 여지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인도네시아 현지 배터리셀 공정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현대차그룹

동남아도 빼놓을 수 없는 시장이다. 토요타는 텃밭을 지키려, 현대차그룹은 새 주인이 되려 전력을 쏟고 있다. 특히 세계 4위의 인구 대국인 인도네시아 쟁탈전이 치열하다. 전체 판매량을 기준으로는 일본차가 여전히 인니 시장을 장악 중이다. 올해 상반기 판매량을 기준으로 토요타의 점유율만 32.5%에 이른다.

동남아 시장에서는 하이브리드차에만 집중하기보다 멀티 전략, EV 시장에 승부수를 걸 것으로 보인다. 아이오닉5가 이미 인니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량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인도와 베트남, 태국 등 일본이 차 시장을 장악한 국가들도 현대차그룹의 새 먹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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