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텍 CFO 스토리]레고켐바이오 박세진, R&D 매진할 '재무환경' 만들다①창업주와 LG화학서부터 36년간 인연, '빅딜 원천' 2&3법칙 및 1.6년 원칙
정새임 기자공개 2024-01-09 09:56:12
[편집자주]
기업의 곳간지기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역할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업권별로 그 역할과 무게가 다르다. 바이오텍 CFO는 단순히 재무·회계 등 숫자만 잘 알면 되는 정도가 아니다. 무르익지 않은 기술을 투자자들에게 선뵈며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 때로는 기술수출 현장을 직접 뛰며 사업 중심에 서기도 한다. 이 같은 바이오텍 CFO 역할은 투자 혹한기인 지금 시점에 그 중요성이 배가 된다. 기술이 바이오텍의 존재의 이유라면 CFO는 기술의 생존을 이끌어 내는 키맨이다. 최근 주목받는 바이오텍의 CFO를 만나 혹한기 생존전략을 물었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05일 15:20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올해 업력 19년차를 맞은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이하 레고켐바이오). 1세대 ADC(항체약물접합체) 개발 전문 기업으로 글로벌에서 인정받는 플레이어다. 최근 얀센과의 2조2000억원대 '빅딜'로 기술수출의 질적 성장까지 이뤘다.다수 1세대 바이오텍들이 유동성 부족으로 위기를 맞는 상황에서 레고켐바이오의 행보는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칸메드 합병을 통한 안정적인 매출과 영업이익, 꾸준한 기술수출과 적절한 조달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유동성 확보, 레고켐바이오가 혹한기 시장에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는 이유다.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자금 환경을 마련한 박세진 수석부사장(최고재무책임자)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선제적 자금조달, 혹한기 시장에도 연구개발 매진 환경 조성
2019년 레고켐바이오는 '1년 내 시가총액 1조원의 유니콘 회사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이듬해 현실로 이뤄졌다. 2020년 한 해에만 5건의 ADC 기술수출이라는 기록적인 성과를 내면서다. 비공개 계약을 제외한 전체 계약 규모는 약 1조5000억원. 글로벌에서 레고켐바이오의 ADC 기술력을 인정받은 순간으로 기억된다.
레고켐바이오는 상장 후 기업가치를 꾸준히 증명해 나갔다. ADC에 대한 기대보다 우려가 더 많던 시기에도 꾸준히 차세대 ADC 기술력을 어필했고 2020년 퀀텀점프를 이뤄냈다.
주가가 급등하고 기술수출 계약금이 들어오던 시기 레고켐바이오는 1600억원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유동성 압박을 받던 시기가 아니었기에 대규모 유증 결정이 상향하는 주가에 찬물을 끼얹는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당시 유증은 '신의 한 수'가 됐다. 이듬해부터 코로나19 팬데믹 그리고 고금리 정책 기조로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만약 레고켐바이오가 미리 대규모 자금을 유치하지 않았더라면 이후 조달 규모는 1600억원에 미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레고켐바이오의 유증은 향후 10년을 위한 선제적 결정이었다. 유증 전액이 3자배정으로 이뤄진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오랜 투자파트너사인 한국투자파트너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KB인베스트먼트, 쿼드자산운용이 모두 유증에 참여했다. 설립 초기부터 끈끈히 다져온 신뢰관계가 후속투자로 이어졌다.
미리 실탄을 확보해놓은 덕분에 레고켐바이오는 혹한기 시장에서도 자금확보에 대한 고민 없이 연구개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연구개발에 매진한 결과가 최근 얀센과의 '빅딜'로 나타났다.
이번 딜은 지금까지의 딜과 사뭇 다른 의미를 갖는다. 자체 임상 진입으로 물질 가치를 높인 덕분에 총 계약규모 '2조2000억원'이라는 역대급 규모의 계약으로 이뤄냈다.기술수출에서도 질적 성장을 이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여러 1세대 바이오텍들이 자금 상환 압박에 시달리고 수차례 외부 조달로 경영권을 넘기는 수순을 밟는 상황에서 레고켐바이오의 행보는 단연 눈에 띌 수밖에 없다. 레고켐바이오는 기술수출 수익 외에도 합병한 칸메드를 통해 안정적인 실적을 낸다. 대규모 연구비용으로 영업적자가 나지만 기술수출 계약으로 받은 금액을 적절히 실적에 반영함으로써 관리종목에 오를 우려도 없다. 연구개발을 위한 현금도 풍부하다. 늘 1년 6개월 이전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한다.
이러한 '자금 운용의 묘'를 실현시키는 이가 CFO 박세진 부사장이다. 박 부사장은 단지 CFO 역할에만 한정되는 인물은 아니다. 사실상 김용주 대표와 함께 경영 전반을 관장한다고 해야 맞다. 수석부사장이라는 직위에서도 그의 역할을 가늠할 수 있다. 김 대표와는 가족보다도 가까운 사이다. 1987년 LG화학 기술연구원 시절부터 맺어온 인연이다.
CFO가 창립 멤버로 경영 전반에 참여하면서 기술에 대한 이해도까지 높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막강한 강점은 시장과의 소통에 힘을 더하고 있다.
◇일찍이 마련한 자금관리 시스템, 투자자 신뢰 쌓았다
레고켐바이오가 창업한 2006년부터 사업 초기 시절은 바이오 투자 시장이 급격히 악화하기 시작한 때였다. 일명 '황우석 사태'로 불리는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으로 바이오 인식이 좋지 못했고 2년 뒤에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마저 터졌다. 2006년부터 2012년 사이 기술특례로 상장한 9개 바이오텍들은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보다 떨어질 정도로 바이오 시장 침체기였다.
좋지 않은 시장 분위기에서도 박 부사장은 '함께 신약 개발 바이오텍을 해보자'는 김 대표의 제안에 한치의 망설임 없이 LG를 떠나 김 대표 사단에 합류했다. 그만큼 서로에 대한 신뢰가 공고했고 그 신뢰의 힘을 믿었다.
박 부사장은 창업 초창기 투자사들과도 신뢰를 쌓는데 집중했다. LG생명과학 신약연구소장이자 합성신약의 대가라는 김 대표의 명성에 따른 우호적인 시선이 있지만 실제 투자를 이끌어내고 그들과의 관계를 밀접하게 쌓아가는 가는 것은 박 부사장의 몫이었다.
박 부사장은 황만순(한국투자파트너스)·황창석(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신정섭(KB인베스트먼트) 등 바이오 핵심 VC들과 연을 맺으며 첫 투자를 성사시켰다. 이들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신뢰를 쌓았다.
그의 자금 조달 대원칙은 '1년 6개월'이다. 다음 자금조달계획을 1년 6개월 전부터 세우고 투자자들과 소통한다.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고 실현계획을 발표한다. 설령 예상보다 기간이 길어지더라도 중간중간 가감없이 진행상황을 공유해 신뢰관계를 지킨다.
자금조달과 운용계획을 세울 때도 경영자의 마인드로 접근했다. 소요자금의 규모와 소요기간을 계산할 때 늘 '2&3법칙'을 적용했다. 이는 신사업 추진 시 예상보다 비용은 2배 더 들고 시간은 3배 더 소요된다는 법칙이다. 현금흐름의 △베스트 △노멀 △워스트 시나리오 중 워스트 시나리오를 기준으로 '2&3법칙'을 적용해 리스크 발생을 최소화했다.
박 부사장이 사업 초기부터 구축한 체계적인 자금관리 시스템은 VC들을 움직였다. 설령 진행상황이 계획에서 벗어나도 '믿고 투자할 수 있는 바이오텍'으로 자리잡았다. 한투파·에이티넘·KB인베스트먼트 등 설립 초기부터 연을 맺은 투자사들이 이후 추가 투자에도 참여하고 상장 후에도 끈끈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던 배경이다.
이들은 레고켐바이오가 합성신약 기반 항생제·항암제 신약 개발에서 생소한 ADC 신약으로 개발 방향을 선회했을 때에도, 상장 과정에서 기술성평가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에도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했다.
2021년 레고켐바이오가 10년 플랜을 목표로 대규모 자금조달을 할 때에도 이들은 우려보다는 지지를 보냈다. 이들은 '회사가 잘나갈 때 경영자는 위기의식을 느껴야 한다'는 박 부사장의 철학에 동의했다. 마침 시장 흐름은 ADC 개발사에 유리한 환경으로 흘러갔다. 레고켐바이오는 이 시기를 놓치지 않았고 빅딜을 성사시키면서 투자자들에게 또 한 번 믿음을 줬다.
박 부사장은 "2030 계획을 세우면서 레고켐바이오의 목표는 명확했다. 글로벌 ADC 넘버1 기업이 되는 것, 독자적인 신약물질 임상을 진행해 부가가치를 최대로 높여 기술이전을 하는 것이다"라며 "우리의 전략대로 진행하며 얀센과의 딜도 잘 성사될 수 있었다. 목표대로 나머지 4개 물질의 1상 임상을 계속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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