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젠, 엔데믹 첫 투자 소규모 'M&A' 천천히 멀리 간다 국내 IT 업체 브렉스 지분 100% 인수…외형확장보다는 기술 중심 내실성장
차지현 기자공개 2024-01-18 09:05:52
이 기사는 2024년 01월 17일 08: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분자진단 전문기업 씨젠이 엔데믹 전환 이후 첫 투자로 정보기술(IT) 분야를 택했다. 이번 인수합병(M&A)이 포스트 코로나 전략의 첫 투자이지만 단 100억원도 안되는 소규모 투자라는 데 눈길이 간다. 조단위 혹은 수백억원대의 대규모 투자에 나선 에스디바이오센서나 엑세스바이오 등과 대비된다.당장 성과를 내는 데 주력하기보단 자체 기술력을 고도화하는 방식을 통해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전략이 깃들어 있다. 당장 보여주기 식 외형확장이 아니라 내실을 중심으로 한 투자로 천천히 멀리가겠다는 구상이다.
◇국내 IT 업체 지분 100% 인수, 인수 규모 100억 미만 추정
씨젠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IT 업체 브렉스 지분 100%를 인수했다고 밝혔다. 금액은 밝히지 않았다. 디지털 혁신에 박차를 가하는 투자였다고 설명했다.
브렉스는 소프트웨어와 사용자경험·인터페이스(UX·UI) 등을 기획하는 업체다. 홍익대 광보홍보대학원 출신 손성일 대표가 2019년 설립했다. 신한은행, 쿠팡이츠, 이마트 등과 굵직한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2022년 기준 연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42억원과 5억원을 기록했다.
인수 금액은 정확하게 공개하지 않았지만 여러정황으로 볼 때 예상할 수는 있다. 씨젠은 브렉스 지분 취득에 따른 인수 대금 일부를 자기주식으로 지급하기 위해 19억7430만원 규모의 보통주 8만4632주를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연 매출이 42억원 정도인 브랙스의 규모를 감안하면 대략 50억원 안팎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씨젠 관계자는 "디지털혁신을 지원할 IT 전문 회사로서 내부조직처럼 지속적인 협업이 가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협력사가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인수를 결정했다"면서 "향후 브렉스는 씨젠의 디지털 전환뿐만 아니라 신사업을 비롯한 사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퇴직 M&A 임원 복귀 후 이뤄진 투자, '노시원 전무' 주도
이번 인수는 엔데믹 전환 이후 씨젠의 첫 투자 행보라는 데 의미가 있다. 코로나19 특수를 톡톡히 누린 진단 업체들은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최근 몇 년간 활발한 투자에 나섰다. 씨젠도 팬데믹 창궐 초창기 적극적으로 M&A 대상을 물색하겠단 계획을 내놨다. 2021년 투자전략부를 신설하고 박성우 M&A 총괄 부사장, 노정석 투자기획실장 전무 등을 영입하며 의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투자 담당 부서를 신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M&A 업무를 담당하던 기존 임원은 물론 신임 임원의 줄퇴사가 이어졌다. 진단키트 수요 감소로 실적이 급전직하한 상황에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응할 신성장동력 부재에 대한 시장의 우려도 커졌다.
반전 조짐이 보인 건 하반기부터다. 회사를 떠났던 M&A 관련 임원을 다시 불러들이면서다. 재작년 퇴사했던 노시원 전무가 그 주인공이다. 노 전무는 서울대 경영학 석사를 졸업하고 삼정KPMG에서 컨설팅 이사를 거친 인물이다. 그는 2012년부터 10년 넘게 씨젠에 몸담으며 해외영업, 투자기획 등 업무를 담당하다 2022년 초 퇴임을 결정했다.
이후 회사를 관둔 지 1년여만인 작년 3분기께 사업개발실장으로 돌아왔다. 퇴사 당시 직위는 상무였는데 복귀하면서 전무로 승진했다. 같은 시기 M&A 조직도 탐단위에서 실 단위로 격상한 것으로 파악된다. 예상대로 이번 M&A를 노 전무가 주도했다는 게 씨젠 측 설명이다.
◇이종분야에 크지 않은 규모의 딜, 배경엔 '기술공유 사업'
퇴임 임원을 불러들이면서까지 단행한 엔데믹 전환 후 첫 딜. 그러나 거래규모로 따지면 작아도 너무 작다. 작년 9월 말 기준 1794억원가량 현금성자산을 보유한 씨젠으로선 '과하지 않은 딜'이었던 셈이다.
또 다른 진단업체인 에스디바이오센서가 2조원대 M&A로 몸집을 불린 것과 대조적이다. 최근 엑세스바이오는 300억원 규모의 싸이토젠 인수 딜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를 감안하면 씨젠의 이번 딜은 시장이 놀랄만한 큰 규모의 딜은 아니었던 셈이다. 더욱이 장고 끝에 내린 결단치고는 상당히 소규모다.
또 진단과 유사업체가 아닌 IT 기술이라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분자진단이라는 메인 사업과는 다소 떨어진 영역이다. 타 진단업체들이 진단과 유사한 사업을 하는 기업을 투자처로 지목한 것과 다른 양상이다.
이런 결정엔 씨젠이 추구하는 사업 방향성이 녹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씨젠은 기술공유 사업을 통해 해외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술공유 사업이란 씨젠의 PCR 노하우를 세계 각국 진단 업체에 무료로 제공하고 현지 맞춤형 제품을 개발·생산하는 사업이다. 이렇게 개발한 제품의 판권은 씨젠이 갖는다. 오는 2028년까지 100개 업체와 협력하겠다는 포부다.
이는 선례가 없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현지 업체를 인수해 해외 유통망을 구축하는 게 아니라 자체 기술력을 고도화하면서 글로벌 입지를 넓히는 전략이다. 대형 M&A 없이 스스로 힘만으로 충분히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적 측면에선 M&A보단 성과가 더딜 수 있지만 기술을 축적하면서 장기적인 성장을 도모하겠단 의미로도 읽힌다. 기술공유 사업에 필요한 핵심 요소가 IT 역량이다. 여러 협력 업체 및 해외 자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이 내부 시스템 구축이기 때문이다. 외형확장을 위해 무리하게 투자하는 게 아닌 기술 중심의 장기적 성장을 도모하겠다는 '진단 외길' 전략이 주목된다.
노시원 씨젠 사업개발실장은 보도자료를 통해 "민감한 의료정보, 기술정보를 다루는 사업의 경우 우수한 내부전문가 확보가 특히 중요하다"며 "이번 인수로 기술공유 사업을 위한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기획·개발하고 관련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M&A를 시작으로 향후 투자 움직임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어지는 M&A 역시 이런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점쳐진다. 당분간은 새로운 영역 확장을 위한 대규모 빅딜도 추진하지 않을 것이란 게 씨젠 측의 입장이다. 이번 계약과 비슷하게 기술공유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IT 업체 또는 인공지능(AI) 업체가 M&A 대상으로 거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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