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비만약' 신드롬]한미약품 오너 2세 임주현의 꿈, '한국판 위고비'③안정적 공급 및 가격 경쟁력 확보, 국내부터 공략…오너 우군 업고 개발 박차
차지현 기자공개 2024-01-31 08:39:38
[편집자주]
비만이 인류를 위협하는 질병으로 정의되면서 약물치료의 새 지평이 열렸다. 의지력 부족 등 개인 문제가 아닌 약물 치료가 필요한 영역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빅파마는 물론 바이오텍들까지 앞다퉈 뛰어들었다. 기존 약물 효능과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GLP-1' 계열 의약품이 등장하면서 시장은 급격하게 성장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제약사가 시장 선점에 나선 상황에서 국내기업이 설 자리는 있을까. 더벨이 관련 시장 현황과 국내사들의 전략을 짚어봤다.
이 기사는 2024년 01월 25일 08:1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국내 상위권 제약사 가운데 비만 치료제에 유의미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곳을 꼽자면 단연 대사질환 분야 독보적 기술력을 갖춘 한미약품이 있다. 프랑스 사노피, 미국 머크(MSD), 얀센 등 굴지의 빅파마에 당뇨 및 대사이상지방간염(MASH) 치료제 파이프라인을 조 단위 규모로 기술수출한 경험이 있다. 한미약품 입장에선 '비만 붐'이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그동안 기반 기술을 열심히 갈고 닦았고 이젠 신약 성과를 보여줄 때가 왔다. 빅파마로 도약하려면 기술수출만으론 부족하다. 한미그룹이 미래를 위한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비만' 키워드를 선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오너 2세를 중심으로 한 리더십 재편과 비만 파이프라인 강화 시점이 일치한다는 데 있다. 오너 2세가 연구개발(R&D)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 이후 대형 비만 프로젝트가 공개됐고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한 대대적인 R&D 조직개편까지 이뤄졌다.
◇한국판 위고비 에페글레나타이드, 국내 빈틈부터 공략
한미약품의 R&D는 작년 9월을 기점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한미그룹 지주사 한미사이언스가 "비만 관리를 미래를 위한 강력한 성장 동력으로 선정했다"고 밝히면서다. 한미사이언스는 비만 프로젝트를 'H.O.P(Hanmi Obesity Pipeline)'로 명명, 그룹만의 차별화한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겠단 계획을 내놨다.
H.O.P의 비전은 명확하다. 5종의 비만 신약을 개발하겠다는 게 골자다. △GLP-1 계열 '에페글레나타이드' △GLP-1·GIP·글루카곤을 동시에 타깃하는 차세대 삼중작용제 'HM15275' △경구용 비만치료제 △근손실 방지 및 섭식장애 개선 후보물질 △비만 디지털치료제 등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는 가장 가까운 미래에 한미약품의 성과를 보여줄 파이프라인으로 꼽힌다. 자체 개발 장기지속형 플랫폼 랩스커버리를 적용한 GLP-1 계열 약물이다. 2015년 사노피에 당뇨병을 적응증으로 해 39억유로(약 5조5970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한 물질로 유명하다. 사노피는 2020년 6월 해당 파이프라인의 권리를 반환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7월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해 왔던 에페글레나타이드를 비만 치료제로 개발하겠다고 공식화했다. 당뇨 치료제에서 출발해 비만 치료제로 탈바꿈시킨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의 전략과 동일하다.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에페글레나타이드는 한미그룹의 R&D 중장기 계획 중 '중기'에 속한다고 발표할 정도로 조속한 상업화 자신감을 드러냈다.
예상 상용화 시점은 이르면 2026년 하반기 늦어도 2027년 상반기께다. 이미 풍부한 데이터를 확보한 데다 어느 정도 개발 진척을 이뤘다는 점이 자신감의 배경이다.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권리 반환 당시 사노피로부터 5건의 임상 3상 자료를 넘겨받았다. 이에 기반해 자체적으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비만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기업으로선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르다.
핵심은 '한국형 GLP-1 비만약'이다. 신약은 속도전이다. 아무리 빨리 상업화에 성공한다고 해도 GLP-1 계열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위고비나 젭바운드 우위에 서긴 어렵다. 하지만 이들 치료제가 아직 한국 시장까지 점령하진 못했다. 한미약품은 세계적인 공급 부족 사태로 빅파마 제품의 한국 상륙 시점이 불투명하고 가격이 비싸다는 데서 기회를 찾았다.
접근 가능성이 높은 비만약을 국내 출시하는 데 초점을 뒀다. GLP-1 계열 약물을 평택 스마트플랜트에서 생산이 가능해 가격 경쟁력이 있는 의약품을 더욱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단 설명이다. 여기에 한국인 비만 기준에 맞춘 치료제를 개발한다는 걸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체질량지수(BMI)가 40 이상인 초고도 비만 환자 비율이 10%인 반면 국내는 BMI 30 이상인 비율이 7%가 안 되기 때문에 다른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봤다.
◇계열 내 최고 지위 노리는 HM15275, 글로벌 정조준
또 다른 유망 파이프라인인 HM15275의 시선은 글로벌을 향한다. GLP-1을 포함해 GIP, 글루카곤을 동시에 활성화하는 차세대 삼중작용제다. 기존 플랫폼 랩스커버리가 아닌 최근 완성 단계에 진입한 차세대 독자 플랫폼 기술을 적용한 게 특징이다.
에페글레나타이드보다 시간은 더 걸리더라도 계열 내 최고(Best-in-Class) 신약을 개발하겠단 구상이다. 현재 허가 받은 비만 치료제 대비 우수한 효과를 입증하면 빅파마를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걸로 풀이된다. 전임상서 25% 내외 체중 감량 효과를 확인했다. 수술적 요법에 따른 체중 감량 효과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위고비나 젭바운드와 비교해도 높다.
HM15275의 차별화 지점은 글루카곤에 있다. GLP-1 계열 약물은 포만감을 증가시켜 식욕을 조절하는 원리인데 부작용으로 근감소증을 동반한다. 반면 글루카곤은 에너지 대사량을 높이는 방식으로 체중 감량 효능을 내기 때문에 근감소증을 최소화하거나 근육량을 보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 1분기 임상시험계획(IND)을 제출할 예정이다. 오는 6월 당뇨병학회(ADA)에서 HM15275 주요 연구 결과 공개도 앞뒀다. 다만 같은 기전에선 일라이릴리가 앞서는 상황이다. GLP-1·GIP·글루카곤 삼중작용제 '레타트루타이드'는 비만을 적응증으로 허가받기 위한 임상 3상을 진행 중이다. 2026년에 결과를 도출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 밖에 H.O.P의 주요 파이프라인으로 낙점한 경구용 비만 치료제, 폭식 등 섭식장애를 개선할 수 있는 미공개 후보물질, 비만 치료제 사용 시 환자의 라이프 스타일을 교정하도록 돕는 디지털치료제 등은 모두 미충족 의료 수요(언멧 니즈)를 겨냥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한미약품은 경구용 펩타이드 플랫폼 기술 개발에 착수, 상용화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경구용 GLP-1 제제를 개발하겠다고 했다.
◇커진 임주현 영향력, 빨라진 비만사업 시계…개발 가속화
비만 프로젝트 중심에 오너 2세 임주현 한미약품 사장(사진)이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한미약품이 대사질환 분야 R&D에 뛰어든 건 꽤 오래됐지만 비만 분야를 메인으로 내세운 건 비교적 최근 일이다. 비만 치료제 힘이 실리기 시작한 시점은 임 사장이 R&D를 직접 관할하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임 사장의 영향력이 커진 건 작년 7월 한미사이언스 전략기획실 실장에 오르면서다. 이후부터 비만 사업에 본격적으로 속도가 붙었다. 임 사장이 R&D 주도권을 쥔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 회생 작업에 착수했다. 8월 R&D 센터장에 임 사장 측 인물인 최인영 상무를 앉혔고 얼마 지나지 않아 H.O.P가 윤곽을 드러냈다.
H.O.P 프로젝트 발표 이후 에페글레나타이드가 국내 규제당국 임상 3상 IND 승인을 받은 건 약 한 달. 이어 IND 승인 약 2개월 반 만에 첫 임상 대상자 등록을 마쳤다. 통상 제약바이오 기업이 IND 승인을 받고 실제 임상에 진입하기까지 4개월가량이 소요된다는 점에 비춰보면 매우 숨 가쁜 행보다. 이는 그만큼 임 사장이 이번 프로젝트에 진심이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임 사장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만큼 비만 치료제 개발 속도에 한층 탄력이 붙을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무엇보다 사실상 후계자로 지목된 임 사장에겐 경영 역량을 입증해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상황이다. 차기 리더십 자질을 증명하고 입지를 공고히 할 아이템이 바로 비만 사업이다. 풍부한 현금 곳간을 보유한 OCI그룹을 우군으로 확보한 데 따라 신약개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한 점도 긍정적인 요소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한국 제약 기업이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 기술로 개발하는 최초의 GLP-1 비만 신약이라는 점에서 이번 프로젝트가 의미를 지닌다"면서 "비만 신약 탄생이 신속하고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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