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라이벌 열전]'무탄소 선박'에 접근하는 두갈래 방식③해운사 세우는 김동관, 머스크와 손잡은 정기선
허인혜 기자공개 2024-02-13 07:31:18
[편집자주]
기업들은 그 분야에서 앞서나가기 위한 경쟁을 하기 마련이다. 기업뿐 아니라 그 기업을 이끌어온 인물들도 라이벌이 된다. 기업의 대표로 참전하는 만큼 맞수전에서는 절친도, 친척 관계도 잠시 무용지물이다. 더벨이 지금 경쟁에 불이 붙은 라이벌들의 무기와 히스토리, 전망 등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07일 15:23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친환경 선박으로의 전환은 조선업계의 거대한 흐름이지만 단계로 보면 아직 초입이다. 여전히 친환경 배보다는 옛 선박들이 바닷길을 차지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이 빼앗을 점유율이 한참 남아있다는 의미다. 이미 잘 닦인 길을 따라갈 수 있는 전통사업 대비 신사업으로 향하는 이정표도 다양하다.아예 다른 길을 찾을 수는 없다. 조선사라면 이제 반드시 친환경 선박의 길로 가야한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50년까지 선박들의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제로(0)로 맞추기로 했다. 유럽 등 글로벌 정부도 선박에 대한 친환경 규제를 대폭 강화한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과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은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 여러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친환경 선박으로의 큰 항로는 동행하지만 각자 다른 길도 두드린다. 김 부회장은 친환경 선박 기술을 시현하기 위해 아예 해운사를 세운다는 통큰 계획을 내놨다. 친환경 선박 마케터로 뼈가 굵은 정 부회장은 글로벌 톱티어 해운사들을 일찌감치 고객사로 보유하고 있다.
◇'완전한 무탄소 선박' 개발 위해 해운사 세우는 김동관
굴지의 대기업을 이끄는 총수의 장점 중 하나는 목표를 위해 장기적 관점에서 대규모 투자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김 부회장이 올해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내놓은 해운사 설립 계획이 그렇다.
김 부회장이 해운사를 설립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진짜 해운사로서 물류업에 도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화오션이 개발한 친환경 선박을 구현하는 무대를 자회사로 직접 설립하겠다는 의도다.
최종 목표는 무탄소 추진선 밸류체인 구축이다. 김 부회장의 목표는 저탄소 선박이 아니라 완전한 무탄소 선박이다. 목표 시점도 짧다. 2~3년 내로 탄소를 전혀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선박을 내놓는다는 목표다. 가능하려면 100% 친환경 연료로 움직이거나 전기를 활용하는 선박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LNG선이나 암모니아선 등도 최소한 10%의 전통 연료를 사용해 완전한 무탄소 선박은 아니다.
신규 해운사는 암모니아 추진선으로 선단을 꾸릴 것으로 보인다. 수익성을 노린 해운사가 아니기 때문에 독특한 선단 구성이 가능하다. 암모니아만 연료로 사용하는 무탄소 추진 가스선이다. 수소연료전지 등도 보조 장치로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선박 기술 실현을 위해 새 해운사를 세운다'는 대담한 계획은 한화그룹의 사업 스타일, 김 부회장이 배워온 경영의 길과도 닮아있다. 2010년대 태양광을 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낙점한 한화그룹은 태스크포스(TF)부터 키워 가능성을 타진하는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태양광 사업에 조단위 투자를 감행하고 해외 태양광 회사들을 인수합병(M&A)하며 태양광 사업 부문을 확 키운다. 이 시기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실패했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쌓아둔 현금을 태양광에 썼다. '그 돈을 태양광에 투자하면 전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다'는 발언과 함께다.
김 회장은 당시 차장이었던 김 부회장에게 이 태양광 사업을 맡겼다. 김 부회장은 바이오와 2차전지, 탄소나노튜브 등 친환경·미래 사업을 함께 관장했다. 이 시기 나온 '내일을 키우는 에너지'는 한화그룹의 이미지를 2세대에서 3세대로, 한국화약에서 지속가능한 연료 기업으로 바꾼 캐치프레이즈가 됐다.
신사업으로 낙점했다면 전면전에 나서는 한화그룹의 스타일은 일단 태양광 사업에서는 성공했다. 이 사업을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인물이 김 부회장이다. 신기술 개발을 위해 해운사를 설립한다는 김 부회장의 비전이 불확실한 계획으로 보이지 않는 이유다.
◇'네트워크에 강한' 정기선, 머스크 메탄올선 잇따라 건조
정 부회장은 올해만 두 차례 공식석상에서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 머스크 의장을 만났다. 한 번은 국제 행사에서, 한 번은 우리나라 울산에서다. 정 부회장에게는 네트워크라는 무기가 있다.
정 부회장은 올해 다보스포럼 내 공급 및 운송산업 협의체 등에 참석했다. 공급 및 운송산업 협의체에는 글로벌 1·2위를 다투는 해운사 머스크가 포함돼 있다. 이곳에서 로버트 머스크 우글라 의장과 정 부회장의 만남이 성사됐다.
머스크와 MSC, 우리나라의 HMM 등 글로벌을 무대로 한 해운사들은 최근 바쁘게 친환경 선박을 도입 중이다. 친환경 선박 발주량은 최근 전년 대비 40% 이상씩 늘어날 만큼 증가세가 가파르다. 이중 머스크의 계획이 가장 구체적이고 적극적이다. 머스크는 2040년까지 탄소배출 제로를 꿈꾼다. 국제해사기구보다 10년이 빠르다.
HD현대가 지난달 말 건조한 선박의 이름은 '아네 머스크'호다. 이름에서 짐작이 가듯 고객사는 머스크다. 지난해 9월에도 '로라 머스크'호를 인도해 이번이 두 번째다. 두 선박 모두 메탄올을 연료로 쓰는 친환경 선박이다. 지난해 건조한 로라 머스크호가 21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 올해 건조한 아네 머스크호가 1만6200TEU급이다.
인공지능(AI) 기반의 스마트 조선소도 데이터와 가상현실 기반의 실험 등을 도입한 친환경 사업으로 분류된다. 정 부회장은 미국의 빅데이터 기업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의 CEO 알렉스 카프와 회동해 의견을 나눴다.
에너지 산업 협의체 소속 글로벌 기업들과도 네트워크를 쌓고 있다. 쉘, 토탈에너지스 등 30여개 글로벌 에너지 기업으로 구성된 모임으로 정 부회장은 경영진들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안의 이행 방안 등을 논의했다.
정 부회장과 김 부회장, HD현대와 한화오션 모두 무탄소 선박 개발에 매진하는 건 처음으로 무탄소 선박 개발에 성공한 회사의 제품이 '바이블'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품의 표준이 되면 그만큼 점유율 확대와 기술 개발 등 다양한 면에서 선두에 서게 된다. 또 중국 조선사들이 범람한 컨테이너선 건조 시장과 달리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부문인 만큼 국내 조선업계가 다시 우위에 설 기반이 마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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