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2월 14일 07:39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박상규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에 대한 의외의 사실 하나. 철학에 매우 박식하다. 바쁜 가운데도 짬을 내 책을 읽고 강의를 들으며 지식을 쌓아 올렸고 철학과 관련한 블로그를 운영했을 정도로 큰 열의를 보였다. 경영학을 전공한 뒤 전략통으로 인정받아 굴지의 대기업 대표이사에 올랐다는 이력에서 유추되는 이미지와는 사뭇 거리가 있다.고된 업무와 회사생활을 이겨내는 와중에 철학적 고찰을 이어간 결과일까. 박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고 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내세우는 '행복경영'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생각의 방향이 비슷하다. SK그룹 내부적으로는 최 회장의 경영철학을 가장 잘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최고경영자(CEO)로 박 사장을 지목하기도 한다.
외부에서 박 사장의 진가를 알 수 있었던 것은 SK네트웍스 대표이사로 재직했을 때부터였다. 2017년 SK네트웍스 대표이사로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회사의 정체성이 애매모호했다. 휴대폰 단말기 유통부터 주유소, 종합상사, 패션 등 뚜렷한 연관성을 찾기 어려운 사업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진행했다.
박 사장이 취임한 뒤 SK네트웍스는 뚜렷한 방향을 찾았다. LPG 충전소와 석유 도매 유통사업, 주유소 사업을 매각했고 철강 트레이딩 사업도 중단했다. 대신 공유경제라는 키워드에 집중했다. SK네트웍스에 인수된 SK매직에 더해 2019년 품에 안긴 SK렌터카(옛 AJ렌터카)가 중심이 됐다. 이같은 체질개선은 수익성 제고로 이어졌다.
SK엔무브를 이끌었을 당시에도 눈에 띄는 행보를 보였다. 박 사장은 SK엔무브에서 이례적으로 언론관계자들이 대거 참석하는 대규모 행사를 개최하고 미래 비전을 발표했다. 전기차 윤활유 시장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또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광고를 대중매체에 공개하기도 했다. 알짜 기업인 SK엔무브를 알리기 위한 의지다.
박 사장이 앞서 두 회사에서 보여준 경영방식에는 공통점이 있다. 명료한 비전을 설정해 기업가치를 높였다는 점이다. '리노베이션'에 성공한 셈이다. 리노베이션은 단순히 내·외부를 개조하는 것을 넘어 기능과 성능까지 고도화하는 개보수 활동을 뜻한다. 사업을 정리하고 행사·광고에 나선 것은 리노베이션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해석된다.
각 기업의 정체성과 역할에 대한 부단한 고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간 계열사 리노베이션에 성공해온 박 사장이 SK이노베이션에서 맡을 과제 역시 명백하다. '철학자' 박 사장의 SK이노베이션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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