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판결문 뜯어보기]법률 개정으로 비롯된 의혹, 투자위험 은폐 없었다②제9조의2 도입, 모호한 유권해석에 혼선…삼성 측 정정 신고로 의무 다해
이상원 기자공개 2024-02-26 07:32:20
[편집자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1심 재판에서 이재용 회장의 무죄가 확정됐다. 덕분에 삼성은 '국정 농단' 사태부터 7년여간 이어졌던 총수의 사법 리스크를 당장은 벗어나게 됐다. 비록 검찰이 항소를 했으나 재판부가 19개 모든 혐의에 '무죄'를 준만큼 2심 선고의 변동성도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런 가운데 재판부가 삼성의 손을 완전히 들어준 까닭이 무엇인지도 관심을 끈다. 더벨이 입수한 해당 판결문에는 합병 과정에서 이 회장과 삼성의 어떠한 위법행위도 없었다는 재판부의 메시지가 명확히 담겨 있었다. 1589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판결문을 뜯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2월 22일 08:05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회장의 핵심 혐의 가운데 '투자위험 정보 은폐'가 합병 주총 준비 단계에서 집중적으로 이뤄졌다고 봤다. 합병에 따른 새로운 순환출자 발생 리스크를 인지하고서도 의도적으로 해당 내용을 증권신고서에 담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하지만 재판부의 생각은 달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상장사로서 어떤 투자자든지 정보에 접근 가능하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여기에 당시는 개정 공정거래법 제9조의2 도입 초기여서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었던 점도 고려했다. 삼성은 법률 자문 후 정정 신고서를 통해 해당 내용을 공지한 만큼 거짓 공시를 했다. 검찰의 주장이 재판부에 받아들여지지 않은 배경이다.
◇검찰, 엘리엇 공격에 삼성 허위사실 기재 주장…법원 "잘못된 판단"
판결문에 따르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두고 검찰은 이사회→주총→주총 이후→업무상 배임 등의 단계로 구분한다. 검찰은 이 중에서 '주총' 단계부터 삼성이 투자 위험을 숨기고 고의로 허위 정보를 유포한 것으로 봤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 미래전략실이 투자자를 속이기 위한 논리를 시장에 퍼트렸다는 주장이다.
검찰은 2012년 말 승계 계획안 '프로젝트-G' 수립 당시부터 합병으로 인한 신규 순환출자 발생 리스크를 인지하고도 삼성이 이를 의도적으로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삼성은 증권신고서, 투자설명서 등을 통해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발생 가능성, 이에 따른 처분 필요성 등을 사실대로 알렸다고 맞섰다.
양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법원은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삼성이 공시와 IR 자료를 통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사실대로 설명한 점'을 눈여겨 봤다. 특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모두 상장사로서 정보가 공시를 통해 시장에 공개되는 회사란 점도 재판부 판결에 영향을 미쳤다.
삼성은 엘리엇의 합병 반대와 이에 대한 논리까지 당시 공개했다. 재판부는 정보가 시장에 확산하고 있었던 점을 감안해 삼성 측이 투자 판단에 영향을 줄 중요사항의 거짓 기재는 없었다고 봤다. 엘리엇이 합병을 반대하자 주총을 앞두고 공시, IR 자료에 허위 사실을 포함시키는 등 삼성 측이 부정한 수단을 사용했다는 검찰 주장이 배척된 배경이다.
◇법안 개정초기 가이드라인 부재, 법원 "의도적 거짓 공시 단정 어려워"
해당 사안에 대한 의혹은 당시 순환출자 규제 도입으로 불거졌다. 2014년 개정 공정거래법 제9조의2가 만들어졌다. 이에 따라 그 해 7월부터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는 순환출자를 만들 수 있는 계열출자 제한을 받게 됐다. 단 계열사 간 합병에 의한 계열출자에 해당할 때는 예외로 적용됐다.
반면 신규 순환출자 형성에 해당하면 '처분의무'가 발생해 6개월 내 취득 또는 소유한 주식 전부를 처분해야 한다. 하지만 당시 도입 초기라 해석 기준이 없어 해당 법안을 해석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공정거래위원회마저도 '해당 조항만 보면 여러 가지 해석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봤다.
제일모직은 2015년 5월 합병 TF를 구성하고 로펌으로부터 순환출자 구도와 지분 처분의무 등에 대한 의견을 받았다. 그 결과 합병으로 인한 예외가 인정됐다. 추가 계열출자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삼성SDI가 추가로 취득할 제일모직의 지분은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당시 제일모직이 작성한 증권신고서 초안에는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삼성물산에서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SDI→제일모직으로 변동되는 점을 기재했다. 신규 순환출자 고리로 간주될 경우 6개월 내 이를 해소해야 할 수도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외에 제일모직→삼성전자→삼성전기→제일모직 고리 또한 6개월 내 해소 가능성이 언급됐다.
정작 2015년 5월 합병 발표와 함께 공시한 증권신고서 내 투자위험 항목에는 신규 순환출자 발생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같은 해 6월 공시한 1차 정정 신고서에서도 관련 언급은 제외됐다. 검찰은 이를 '삼성이 고의로 해당 사실을 빠뜨렸다'고 판단하고 기소 혐의에 포함했다.
그런데 삼성 측 합병사들은 이후 2차 정정 신고서에 순환출자 고리 내 회사 간 합병은 순환출자 단순화로 공정거래법상 예외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게재했다. 합병 절차 완료 후 예외 인정 여부에 따라 고리 해소 방안과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제일모직은 최종적으로 3차 정정 신고서를 통해 "원칙적으로 신규 순환출자를 형성하는 계열출자 및 추가적인 계열출자는 금지돼 있지만 합병의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며 "다만 해당할 경우 합병 후 6개월 이내에 처분하지 않으면 관련 법령에 따라 시정명령, 과징금, 의결권 제한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는 점 주의하라"고 명시했다.
이러한 사항을 기반으로 재판부는 "삼성에서 시장에 불필요하게 혼란을 줄 수 있는 내용은 제외하고 확실한 내용만 증권신고서에 추가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의도적으로 신규 순환출자 발생으로 인한 투자위험 기재 자체를 전부 누락시켜 버렸다가 이후 거짓 공시를 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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