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부동산신탁은 지금]사세 키운 책준형사업 '부메랑'으로 돌아왔다①KB금융 후광효과로 수주 영업…대손상각비 급증, 신탁계정대 부담
김지원 기자공개 2024-03-08 08:18:09
[편집자주]
KB부동산신탁은 부동산 호황 바람을 타고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으로 시장 점유율을 키웠다. 하지만 업황 침체로 사업장 부실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실적 악화와 재무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위기 속에서 14개 부동산신탁사 중 유일하게 대표이사 교체 카드를 꺼내 들며 변화의 기로에 섰다. 더벨이 KB부동산신탁의 당면 리스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한 과제를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3월 06일 07:28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KB부동산신탁이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KB금융그룹의 후광효과를 등에 업고 시장 내 존재감을 빠르게 키웠던 게 오히려 독이 됐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자 수익성에 가려졌던 리스크가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리스크를 키운 주범으로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이 지목된다. 업황 악화에 따라 해당 사업장들이 미준공 위험에 노출되며 KB부동산신탁의 재무부담도 커졌다. 지난달 금융당국이 부동산신탁사를 대상으로 리스크 관리 강화를 주문하자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쌓을 수밖에 없었고 유례없는 영업적자를 냈다.
◇공격적 수주 통해 영업수익·시장지위·직원 수↑
KB부동산신탁은 1996년 KB국민은행의 출자로 '주은부동산신탁회사'라는 이름으로 설립됐다. 2002년 'KB부동산신탁'으로 상호를 바꾼 뒤 2008년 국민은행의 자회사에서 KB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지난해 말 기준 KB금융지주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KB부동산신탁은 2017년을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책임준공확약형 관리형토지신탁(이하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에 뛰어들었다. 이전까지는 계열사와의 연계영업을 통해 담보신탁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해 왔다.
토지신탁은 크게 차입형 토지신탁과 관리형 토지신탁으로 나뉜다. 차입형 토지신탁은 신탁사가 사업비를 직접 조달하는 방식으로 '고위험·고수익' 사업으로 통한다. 관리형 토지신탁은 사업비를 위탁사나 시공사가 조달하는 구조다.
한국토지신탁, 한국자산신탁, 코람코자산신탁 등 주요 부동산신탁사들은 상대적으로 수수료가 높은 차입형 토지신탁에 집중해 왔다. 다만 KB부동산신탁의 경우 KB금융지주가 리스크 관리를 주문함에 따라 신탁사가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차입형 토지신탁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지 못했다.
이에 절충안으로 고안한 사업 모델이 현재의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이다. 관리형 토지신탁에 속하는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은 신탁사가 시공사에 책임준공 확약이라는 신용공여를 제공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시공사가 공사를 진행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신탁사가 자체 자금을 투입해 준공해야 해 '중위험·중수익' 사업으로 분류된다.
당시 저금리 시기와 부동산 호황기가 맞물리며 KB부동산신탁은 책임준공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고 공격적으로 수주를 이어갔다.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의 경우 수주 시 신탁사의 신용도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KB부동산신탁은 KB금융지주의 도움으로 해당 시장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신용평가사도 신용평정 시 KB금융그룹의 유사시 지원가능성을 고려해 KB부동산신탁에 비금융지주계열사의 신용등급(기업어음 기준)보다 높은 'A2+'을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2017년 767억원이던 KB부동산신탁의 영업수익은 빠르게 증가해 지난해 1488억원을 기록했다. 2017년 말 영업수익 기준으로 당시 11개 부동산신탁사 가운데 5위를 기록하며 중위권에 머물렀으나 지난해 말 기준 14개 부동산신탁사 가운데 5위를 기록하며 중상위권으로 올라섰다. 직원 수도 2017년 말 166명에서 지난해 말 208명으로 25% 늘어났다.
◇재무부담 가중…책준 미이행 시 소송 리스크도
최근 부동산 업황이 악화하기 시작하며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을 중심으로 사업을 영위해 왔던 KB부동산신탁의 실적과 재무에도 부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수주를 진행할 당시만 해도 건설사들의 부도 및 미분양 위험이 적어 책임준공형 관리신탁 사업장의 리스크가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중소형 건설사들의 현금흐름이 악화되면서 책임준공확약을 제공했던 신탁사의 자금 투입 가능성이 커졌다.
KB부동산신탁은 지난해 1488억원의 영업수익과 96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영업손실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항목은 '대출채권 관련 손실'로 분류되는 대손상각비다. 신탁사는 손실이 예상되는 사업장에 대한 비용을 대손상각비로 반영하는데 지난해 KB부동산신탁의 대손상각비는 전체 신탁사 중 가장 높은 1331억원을 기록했다.
최근 금융당국이 부동산신탁사들에 리스크 관리를 주문하자 KB부동산신탁은 지난해 결산 과정에서 예년에 비해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을 수밖에 없었다. 해당 항목은 2021년 128억원, 2022년 112억원에 그쳤으나 지난해 전년 대비 10배 넘게 증가하며 영업비용 증가로 이어졌다. 당분간 부동산 업황이 침체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이같은 기조를 유지할 경우 KB부동산신탁의 대손충당금 규모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신탁계정대여금 규모도 커지고 있다. 신탁계정대여금은 공정이 지연되는 책임준공형 관리신탁 사업장 또는 분양률이 낮은 차입형 개발신탁 사업장에서 주로 발생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KB부동산신탁의 신탁계정대 잔액은 5051억원으로 전년 말(2423억원) 대비 2배 넘게 증가했다.
그간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경우 신탁사가 공사비를 직접 조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신탁계정대 부담이 거의 없었으나 부동산 경기 저하로 상황이 달라졌다. 지난해 책임준공형 관리신탁 사업장에 대한 신탁계정대여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3분기 말 기준 책임준공형 관리신탁 사업장에 대한 KB부동산신탁의 신탁계정대 잔액은 849억원으로 늘어났다.
시공사가 정해진 기간 내에 준공을 마치지 못할 경우 신탁사는 사업장을 떠안아 신탁계정대에서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 특히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에 대한 신탁계정대의 경우 금융기관의 PF대출보다 상환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에 차입형 개발신탁에 대한 신탁계정대보다 회수 가능성이 낮다.
신용평가사도 부동산 경기 저하로 신탁계정대가 발생하며 KB부동산신탁의 재무 부담이 확대됐다고 평가했다. 신탁사가 신탁계정대를 투입해 준공을 하더라도 해당 사업장의 미분양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자금 회수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신탁사가 책임준공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시공사 및 대주단과 신탁사 간의 소송전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미 일부 신탁사들은 책임준공형 관리신탁 사업장에서 책임소재를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KB부동산신탁의 경우 타 신탁사 대비 전체 책임준공형 관리신탁 사업 규모가 큰 만큼 관련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신탁업계 관계자는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는 건설사가 늘어나며 당분간 부실 사업장이 계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간 책임준공형 관리신탁을 중심으로 수주를 진행해 온 신탁사들의 경우 각 사업장의 리스크 관리 능력에 따라 실적이 갈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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