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3월 18일 07:0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레고켐바이오 직원들은 궁금했다. 한미, SK, 현대 등 유수의 대기업을 뿌리치고 왜 오리온 손을 잡았는지. 그래서 마련된 양사 교류의 장. 오리온 임원들이 레고켐 본사에 찾아가 직원을 만났고 레고켐 경영진도 오리온 본사에서 직원들을 만났다.그런데 이 자리에 뜻밖에 인물이 나섰다. 바로 오리온그룹 최대주주 이화경 부회장. 인터뷰는 물론 공식석상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그였다. 그저 얼굴을 비춘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직접 연단에 올라 레고켐이 오리온에 있어 어떤 존재인지를 설명하는 시간까지 가졌다.
'오리온이 왜 바이오를 할까'라는 의구심은 이 부회장이 발언한 단 몇십분만에 감동으로 뒤바뀌었다. 그리고 오리온은 물론 레고켐 직원들도 눈물 콧물을 흘리면서 공감했고 동조했다. 이 자리에 함께했던 아들 담서원 상무도. 오리온에 있어 바이오는 어떤 존재인건지, 이 부회장의 이야기를 옮겨본다.
# 아버지는 사회에 꼭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다. 먹을 게 없던 시절 제과를 만들고 국가 인프라를 위해 시멘트 사업을 했다. 처음은 제과였지만 시멘트에 더 애착을 가졌다. 식품 안전성 등 여러 억울한 일들이 많았던 제과사업에 상처 아닌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시멘트는 장녀, 나는 제과를 맡았다. 그다지 애착없던 제과를 나에게 맡기며 아버지는 알아서 잘 키워보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시멘트 사랑은 무척이나 애틋했다. 오죽했으면 죽어서도 시멘트 기계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싶다고 했을 정도. 그래서 처음 사업을 시작한 1호 '삼척 시멘트 공장' 바로 옆에 아버지를 모셨다. 지금은 타사(삼표)에 넘어갔지만. 그래서 아버지 묘소에 갈 때마다 늘 마음이 무겁고도 아팠다. 남의 땅을 밟고 가야 아버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에.
그런데 레고켐을 인수하고 나서 마음이 한결 가볍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 레고켐이 그런 회사가 될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할거다. "아버지 저 잘했죠."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나아가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레고켐 인수의 동기가 됐지만 본질적으로는 바이오 사업이 사회에 필요하다는 철학이 엿보인다. 실제로 오리온은 중국에 반드시 필요한 결핵백신과 대장암 진단키트를 첫 사업 아이템으로 선정했다. 레고켐은 '오직 신약만이 살 길이다'를 모토로 항암 파이프라인 등을 개발한다.
이러한 오너의 진심과 오리온 전문경영인 허인철 부회장의 '기업은 이윤을 벌어들여야 한다'는 확고한 경영철학이 어우러져 레고켐 인수로 이어졌다. 레고켐은 8조원에 달하는 기술수출 전력이 있고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플랫폼도 갖추고 있다.
'과학을 논하는 데 있어 감성을 내세우는 게 합리적일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숫자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진심이 더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한다. 올바른 기업을 만들고 사회에 꼭 필요한 신약을 창출하겠다는 각오가 풍수지탄의 마음에서 비롯됐다면 이는 그야말로 진정성으로 볼만하다. 그리고 그 정신은 사실 바이오 사업을 하기 위해 가장 필요하고도 충분한 철학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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