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엔비디아 vs 탈엔비디아' 삼성의 이중생활 젠슨 황, 'HBM3E' 승인 사인…오픈AI·메타 등 협업 제안
김도현 기자공개 2024-03-25 13:06:04
이 기사는 2024년 03월 22일 08:10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삼성전자가 다소 모순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와 협력을 추진하면서 반대진영과도 동맹전선을 형성하는 흐름이다.이러한 줄타기 결과에 따라 삼성전자의 부활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엔비디아와 관계 설정, AI 생태계 패권 다툼 등이 관전 포인트다. 삼성전자에서 반도체를 다루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 내 3개 사업부(메모리·시스템LSI·파운드리) 모두 얽혀있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이목이 쏠린다.
◇엔비디아 CEO의 '삼성 극찬', HBM·파운드리 교류 기대감↑
이번 주 엔비디아가 미국 새너제이에서 개최한 연례 개발 콘퍼런스 'GTC 2024'는 어느 때보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해 '챗GPT' 등장으로 AI 산업이 급성장한 가운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내세운 엔비디아가 '승자 독식'을 실현했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핵심 파트너로 거듭난 SK하이닉스는 또 다른 위너로 꼽혔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건 삼성전자다. 앞서 엔비디아의 최신 GPU 수주 물량을 TSMC에 내준 데 이어 고대역폭 메모리(HBM)는 사실상 SK하이닉스가 독점하면서다. 특히 HBM 주도권을 허용한 건 30년 넘게 메모리 1위 자리를 지켜온 삼성전자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지점이었다.
경쟁사 대비 HBM에 소홀했던 과오를 인정한 삼성전자는 절치부심에 나섰다. 4세대 HBM(HBM3)에서의 완패를 딛고 5세대 HBM(HBM3E)에서는 반전 드라마를 쓰겠다는 의지다.
관련 태스크포스(TF)를 꾸리는 등 HBM 역량 강화에 심혈을 기울이자 엔비디아가 반응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GTC 2024 기간 삼성전자를 치켜세우면서 "(삼성의 HBM을) 테스트하고 있고 기대가 크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삼성전자 부스에 마련된 12단 HBM3E 샘플에는 '승인(Approved)'이라는 친필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업계에서는 황 CEO의 움직임을 두고 양사 간 거래가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미 삼성전자가 상반기 HBM3E 양산을 예고하기도 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미주총괄(DSA)도 "삼성전자와 엔비디아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면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가 올해 HBM 생산량을 2배 늘리더라도 엔비디아가 원하는 물량에 못 미친다. 마이크론 역시 생산능력(캐파)이 크지 않아 삼성전자가 가세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파운드리 측면에서도 여지를 뒀다. 황 CEO는 파운드리 협력사 확대 가능성에 대해 "그럴 수 있다. TSMC와의 관계는 매우 깊으나 다른 파트너사들과도 깊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삼성은 '비범한 기업'이다. 우리가 오토모티브에 들어가는 것은 모두 삼성에서 한다"고 전했다.
◇국내외 빅테크 기업과 '엔비디아 거리두기' 공조 모색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와 한층 가까워진 것과 별개로 엔비디아 의존도를 축소하려는 이들과도 손을 잡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네이버와의 밀월이다.
진작부터 삼성전자와 네이버는 AI 반도체 공동 개발을 진행했다. 작년 말 샘플이 공개됐고 연내 상용화될 것으로 점쳐진다. 이번 프로젝트는 값비싼 GPU와 HBM 대신 자체 제작한 AI 가속기와 로우파워더블데이터레이트(LPDDR) D램을 활용하는 것이 골자다. 중장기적으로 네이버가 직접 설계할 칩을 삼성전자가 양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달 20일 정기 주주총회를 연 삼성전자는 AI 가속기 '마하1'을 소개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내부 기술이 집약된 제품으로 GPU와 메모리 사이의 병목현상을 8분 1 수준으로 줄이는 구조로 설계됐다. HBM 대신 저전력 메모리로 구현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정상적으로 개발 완료된다면 엔비디아 GPU를 일부 대체하게 된다. 현재 네이버와 마하1 관련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 등에 납품하는 것도 타진 중이다.
'탈엔비디아'를 선언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지난달 방한 당시 삼성전자 경영진과 메모리 및 파운드리 협업에 대해 이야기 나눈 것으로 파악된다. 챗GPT를 앞세워 AI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오픈AI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마련해 엔비디아 GPU가 아닌 자체 반도체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어 한국을 찾은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회동한 바 있다. 메타 역시 대규모 언어모델(LLM) '라마'를 통해 AI 경쟁에 뛰어든 상태인데 마찬가지로 반도체 내재화를 도전 중이다. 유력한 파트너로 삼성전자가 거론된다.
해당 업체들은 엔비디아 GPU 공급난, 막대해진 엔비디아 영향력 등을 경계하기 위해 자생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삼성전자는 엔비디아 대항마로 불리는 기업들과 다각도로 협동을 모색하는 셈이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불편하게 여길 수 있는 대목이다. 황 CEO가 삼성전자를 수차례 언급한 것이 단순 '립서비스'가 아님을 보여주기도 한다. 일종의 호소 또는 경고로 풀이된다.
다른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결국 AI 생태계에서 TSMC와 SK하이닉스의 대안은 삼성전자다. 파운드리와 메모리 둘 다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될 것"이라면서 "탈엔비디아 기조가 강해질수록 삼성전자에 많은 기회가 주어질 수도, 오히려 최강자인 엔비디아와 멀어질 수도 있다. 슬기로운 대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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