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4월 03일 07:0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시인의 '낙화'의 한 구절이다. 이별의 아픔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을 노래하는 시다. 젊은 시절 이 시 한 구절 읊어보지 않은 이가 있었을까. 뜨거운 마음을 억누르며 님을 그리던 이 노래를.
프라이빗에쿼티(PE)도 이별에 익숙해야 하는 족속이다. 죽을 듯 사랑하고 아꼈던 투자 포트폴리오를 결국에는 팔아야 하고 그 성과로 평가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별, 즉 투자금 회수(Exit)가 운명인 셈이다.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에게 CJ올리브영은 참 각별한 포트폴리오다. 글랜우드PE는 대기업 카브아웃딜의 명가다. 대기업의 비핵심 자산을 떼어와 인수한 후 기업가치를 높여서 다시 고가에 되파는 일에 능숙하다.
기본적으로 기업 경영권을 확보한 후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해 기업가치를 높이는 작업에 특화돼 있다. 강력한 장악력을 토대로 기업 성장 밑그림을 그리고 주도적으로 성장 플랜을 이행하는 것이 특기다.
이런 글랜우드PE에게 CJ올리브영 투자는 도전이었다. 2021년 3월 총 4100원을 들여 CJ올리브영 지분 22.5%를 취득했다. 경영권 지분이 아닌 소수 지분에 투자하는 첫 사례였다. 여기에 CJ 오너 일가 지분을 사오면서 세간의 뜨거운 시선도 견뎌야 했다. 오너 4세인 이선호 CJ제일제당 실장과 이경후 CJ ENM 실장은 이 거래를 통해 수천억원의 현금을 손에 쥐었다. 여기에 이재현 회장의 남동생인 이재환 CJ파워캐스트 대표 일가도 수혜를 봤다.
오너 일가의 현금 창구 역할을 해준 거 아니냐, 오너 일가 소유 기업의 기업가치만 뻥튀기 시켜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당시 적지 않았다. 도전적인 딜이었음에 틀림없었다.
투자 후 3년이 지난 올해 초 글랜우드PE는 보유 지분을 모두 CJ그룹에 넘기면서 투자금 회수에 성공했다. 4100억원을 주고 산 주식을 무려 7800억원에 팔았다. CJ올리브영 기업가치가 그 만큼 올랐기 때문이다.
주식 취득 당시 2조원 매출에 1378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던 올리브영은 매해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지난해에만 매출 3조8600억원, 영업이익 4600억원을 기록했다. 코로나 19위기를 성장 기회로 삼은 결과물이었다.
글랜우드PE 투자 당시 CJ올리브영 기업가치는 1조8000억원 수준이었다. 현재는 5조원으로 추산된다. 글랜우드PE는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대신 빠르고 안전한 엑시트 방안을 택했다.
CJ올리브영 투자금 회수 방안으로 기업공개(IPO)가 가장 유력했다. 다만 IPO는 변수가 너무 많다. 자본시장 추이와 비교 기업 가치 등에 따라 밸류 격차가 상당하다. 기업 본질 가치와 다르게 5조원 기업가치가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다.
일부 할인율을 감안하더라도 안전하게 CJ그룹에 지분을 되파는 선택을 했다. 올해 블라인드 펀드 조성을 위해서도 확실한 엑시트 실적이 필요했다. 전략적 판단을 한 셈이다.
CJ 입장에서도 손해볼 게 없었다. 적당한 가격에 CJ올리브영 지분을 대거 확보했다. 더욱이 CJ올리브영은 오너 4세 지분율이 여전히 높다. 승계 차원에서도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세간의 우려에도 CJ올리브영은 대한민국 최고의 카테고리 킬러 기업으로 성장했다. 비싸다고 여겼던 기업가치는 3년 만에 2배 이상 뛰었다. 이제 밸류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도전의 연속이었던 글랜우드PE의 CJ올리브영 투자는 기록적인 투자 수익률을 남기며 이제 아름다운 이별을 앞두고 있다. 글랜우드PE의 투자 더듬이는 다시금 제2의 CJ올리브영을 찾고 있다. 대기업과 활발한 물밑 협상 움직임이 그 증거다. 무모하리만치 용감한 그 도전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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