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bell interview]김경수 팹리스협회장 "한국판 엔비디아가 필요하다"인력·자금 지원 초점, 오픈 플랫폼·파운드리 공조 추진
김도현 기자공개 2024-04-25 07:36:03
이 기사는 2024년 04월 24일 09: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1%.'전 세계 반도체 설계(팹리스) 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이다. 반도체 강국이라 부르기에 다소 민망한 수치다. 빅테크가 즐비한 미국, TSMC 보유국 대만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밀리는 형국이다.
우리나라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글로벌 기업이 있으나 메모리에 지나치게 편중된 점이 문제다. 메모리보다 3배 이상 큰 시스템반도체 분야를 공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수년 전부터 범정부 차원에서 움직임에 나섰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국내 팹리스의 성장을 위해 발벗고 뛰고 있는 국내 조직이 있다. 한국팹리스산업협회다. 최근 새롭게 취임한 김경수 한국팹리스산업협회장을 만나 토종 팹리스 업계의 현주소와 미래 전략에 대해 들어봤다.
◇팹리스의, 팹리스에 의한, 팹리스를 위한 집단 그리고 파운드리
국내에서 최대 반도체 단체로 한국반도체산업협회(반도체협회)가 꼽힌다. 대기업부터 중견·중소기업, 스타트업에 해외 반도체 회사의 한국지사들까지 회원사로 있다. 분야도 소자 및 위탁생산(파운드리), 설계, 테스트 및 패키징, 재료, 장비, 상사 등 다양하다.
다만 많은 회원사가 존재하다 보니 각각의 목소리를 반영하기가 어려웠다. 정책 방향이나 의사결정 등이 대형 업체 위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에 팹리스 업계는 좀 더 세밀하게 운영할 수 있는 조직을 필요로 했고 2년 전 한국팹리스산업협회(팹리스협회)는 그렇게 탄생했다.
초대 협회장은 이서규 픽셀플러스 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를 중심으로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외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았다. 기존 반도체협회와 중복돼 통일된 의견이 나오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팹리스협회는 여러 노력 끝에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 3개 부처의 공식 협회로 인정받았다.
팹리스협회 출범 3주년을 맞아 이 대표 후임으로 넥스트칩 대표인 김 협회장이 선임됐다. 이달 초부터 조직 정비 및 목표 설정 등에 나서고 있다.
김 협회장은 "다들 (팹리스에 대한) 중요성은 인식하는데 실질적인 방법론은 부족했던 것 같다"며 "아직 다른 협회들보다 영향력이 약한 게 사실인데 좋은 플랫폼,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알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가장 밀접하게 교류해야 하는 파운드리 업계와 접점을 늘리기로 했다. 팹리스협회지만 파운드리 업체를 회원사로 포함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김 협회장은 "5나노미터(nm) 이하 첨단 공정에 관심이 쏠려있는데 토종 팹리스 기업의 수요는 28nm 이하 성숙(레거시) 공정에 있다. 이쪽에 웨이퍼를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침 중기부 주관으로 '팹리스-파운드리 상생협의회'가 23일 열렸다. 이 자리에서 팹리스협회 임원진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 SK키파운드리 등 국내 파운드리 4사 임직원 등이 마주했다.
유망 팹리스 스타트업에 신제품 검증 기회 제공을 위해 멀티프로젝트웨이퍼(PW) 공정 이용 및 비용 지원 등이 골자다. MPW는 하나의 웨이퍼에서 다양한 칩을 제작하는 방식이다.
김 협회장은 "산업부, 과기부 등 정책이 인공지능(AI) 반도체나 미세공정 쪽에 쏠려있는데 밸런스를 맞출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는) 오히려 90~180nm 등 많이 쓰이는 레거시 공정 경쟁력이 약하다. 이런 부분을 키우고 파운드리 측에서도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피력했다.
최근 급부상한 대만의 경우 TSMC를 필두로 팹리스-디자인하우스-파운드리-OSAT로 연결되는 탄탄한 시스템반도체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이 과정에서 TSMC는 영세한 회사에도 기회를 주는 등 직접 고객을 육성 및 발굴하는 역할도 했다.
같은 맥락에서 김 협회장은 테크데이 등을 개최하면서 팹리스와 파운드리 간 교류의 장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다. 실제로 서로 어떤 지적재산(IP)을 갖췄는지, 어떤 공정을 보유했는지 등을 몰라 논의 자체가 벌어지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후문이다.
◇가장 중요한 건 '돈과 사람', 협력 방안도 모색
김 협회장은 "국내 팹리스 업계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이같은 관점에서) 한국에도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나와줘야 한다"면서도 "대신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어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바로 인력과 자금"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 수준의 칩을 개발하려면 수천억원이 들어간다. 더불어 김 협회장에 따르면 국내 벤처캐피털(VC)은 이제 반도체 투자에 관심이 없다.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해도 모자를 판에 '돈줄'까지 막힌 셈이다.
김 협회장은 "한국 팹리스의 강점이 효율성이다. 같은 칩을 만든다면 미국, 유럽 등은 인력이 5배 더 들어간다. 우리는 적은 인력으로 순발력 있게 만들어낸다"며 "이를 마케팅으로 연결하고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재 양성 차원에서 김 협회장은 일원화된 정책을 촉구했다. 각 부처가 중구난방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탓이다.
그는 "산업부, 중기부, 교육부, 고용부 등 주요 부처가 인력 관련 예산이 있는데 이를 조금씩 모아서 팹리스 협회에 주면 기업 입맛에 맞는 교육을 진행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팹리스 업계에도 각자도생보다 함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협회장은 "요즘 반도체는 여러 칩을 합쳐 만드는 시스템온칩(SoC), 칩렛 구조가 대세다. 어려운 걸 혼자 다 할 필요가 없다"며 "각자 장점을 갖춘 기업끼리 전략적으로 함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활발한 인수합병(M&A), 홀딩스 체제 구축 등을 통해 강도 높은 팹리스 간 협업 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IP를 공동 구매하거나 설계 과정에서 협력하는 플랫폼 개설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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