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4년 05월 02일 16:44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한국항공우주산업(KAI)는 이름과 출발부터 국내 항공·우주산업에 천착하도록 만들어진 기업이다. 외환위기(IMF) 전까지 삼성과 대우, 현대 등 복수의 기업이 항공기 제작 분야에 뛰어들어 사업을 영위했고 빅딜로 한 데 모이며 KAI가 탄생한다.

국가 주도로 설립된 기업인 만큼 목적성이 뚜렷했는데 항공 방산 개발도 그중 하나다. 2000년 당시 산업자원부가 통합법인인 KAI에 방산 항공기 물량을 집중하려하자 역시 항공기 제작 사업을 꾸려온 다른 항공사가 크게 반발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우리나라는 항공 방산부문의 국산화율이 절반 수준인 불모지지만 KAI의 동력이 뚜렷한 족적을 새겼다. 한국형 4.5세대 전투기 KF-21을 개발하고 T-50계열과 수리온을 운영 중이다. 동남아 4개국을 넘어 미국으로의 수출도 노리고 있다.

◇"2030년까지 사용빈도 높은 50% 부품 국산화"

KAI의 목표는 명확하게 공표돼 있다. 2030년까지 국산화율 50%다. 기업 목표에서 제시된 숫자를 잘 뜯어봐야 하는 이유는 수의 의미에 따라 내실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초 기술 기반의 부품을 주로 국산화한다면 포부만큼 의미는 크지 않을 수 있다. KAI는 1800여종의 소재와 표준품 중 900종을 골라 국산으로 대체하겠다고 했다. 사용빈도를 기준으로 상위 50%를 잘랐다. 7500억원의 수입대체 효과를 자신했다.


계획을 내놨던 2022년 10월까지만 해도 81종을 국산화했다. 알루미늄 압출재와 티타늄 압연재, 분말 등 항공 소재 30여종과 기계류, 전장류, 배관류의 표준품 50여종 등이다. 이듬해 6월 파리 에어쇼에 참여한 KAI는 163종을 국산화했다고 밝혔다. 한 해만에 200% 성장을 이룬 셈이다. 빠르게 국산화가 이뤄진 배경은 항공소재개발연합의 기술교류 때문이다. KAI가 주도한 이 단체는 KCC, 한스코, 고려용접봉 등 37개 업체와 기관이 참여해 항공소재 국산화에 천착한다.

KAI는 민간·군용 항공기를 모두 제작하고 있다. 때문에 국산화율도 두 부문이 혼재돼 있다. 방산 부문만 떼어보기 가장 좋은 지표로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인 보라매 KF-21를 들 수 있다. 강구영 KAI 대표가 "21세기에 만든 유일한 4.5세대 항공기"라고 부연할 만큼 최신작이자 국내 방산항공 기술의 정수다.

KF-21 시제기의 국산화율은 60~70%로 알려져 있다. 일부 스텔스기 성능까지 탑재한 최첨단 전투기인데 국산화율이 국내 평균을 뛰어넘는 셈이다. 심장부인 엔진을 제너럴일렉트릭(GE) 생산하고 있지만 국산화 목표가 있고 실행 중이다. 협력사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통해서다. 2030년대까지 5세대 전투기에 맞춘 국산 엔진 개발에 나선다. 국산 엔진이 장착되면 국산화율은 최소 80% 이상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10년차' T-50·수리온 안정기, KF-21 도입 '목전'

KAI는 고정익과 회전익 항공기를 두루 생산한다. 군용기 중에서는 크게 고정익 T-50 고등훈련기와 T-50 기반의 FA-50 전투기, TA-50 전술입문기 등을 만들었다. T-50는 2006년 개발했다. 국산화율은 59% 수준이다. 경공격기 FA-50의 국산화율이 60% 이상으로 올라갔다.

KAI의 군용 항공기 국산화율을 이끄는 프로젝트는 앞서 설명한 한국형 전투기 KF-X 사업이다. 2015년 KAI와 대한항공의 경쟁 끝에 KAI가 개발자가 됐다. 엔진과 착륙장치, 기총 등 국산화가 아직 어렵거나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개발하지 않은 것들을 빼면 KF-21은 진짜 국산화 전투기로 칭할만 하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플랫폼이 우리 기술이라 개량 부품을 국내에서 바로 적용해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날개가 회전하는 동력으로 나는 회전익은 주로 헬기다. 수리온이 대표작이다. 수리온의 국산화율은 60~70%다. 수리온 외에 KUH-1, MUH-1 등의 헬기를 제작하는데 80% 이상의 부품이 공유돼 각 헬기의 국산화율도 수리온 수준일 것으로 보인다.

T-50계열과 수리온은 전력화가 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한 개발이 진행 중이다. 수리온은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등과 지난해 말 협약을 체결하고 약 1900억원을 투입해 2028년 12월까지 한국형기동헬기(KUH-1) 성능개량형 동력전달장치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헬기체계 3대 핵심기술로 완료하면 국산화율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폴란드·미국 조준한 FA-50, KF-21 신규수출 전망도

실적도 따라오고 있다. 1분기 연결기준 실적으로 매출 7399억원, 영업이익 48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30.1%, 147.5% 증가했다. 국내사업 매출은 438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3% 늘었는데 TA-50 2차 사업, 수리온 4차 양산 물량 납품 등이 반영됐다. KF-21의 최초 양산 계약이 반영되면 매출액은 큰 폭으로 늘 것으로 보인다.

해외 수출 기여도도 높다. 폴란드로 납품을 완료한 FA-50GF에 이어 2028년까지 순차적으로 납품 예정인 FA-50PL의 매출 인식과 이라크 계약자 군수지원(CLS) 사업 수행 등이 반영됐다.

KF-21이 안착하면 수출 활로가 더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KAI의 항공기를 운영 중인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주요 4개국이다. FA-50PH를 운용하고 있는 필리핀 공군 등이 KF-21 도입을 고려 중이다. FA-50의 미국 수출도 추진 중이다.

민항기 제작사와의 공조도 KAI의 역할 중 하나다. 보잉·에어버스와의 협업도 눈여겨 봐야하는 이유는 두 파트너사와의 공조로 앞선 기술을 배우고 전투기 등에 접목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고 있어서다. 보잉과 에어버스는 각각 지난해 기준 KAI 매출의 9.6%, 13.5%를 차지한 주요 고객사다. 항공기 제작과 함께 유지·보수(MRO) 사업도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