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메모리 레이스]'전영현 오자마자 견제구' 하이닉스, 영업기밀 오픈HBM 수율 이례적 공개, '호실적' 엔비디아 촉각
김도현 기자공개 2024-05-24 07:28:28
[편집자주]
메모리 시장에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이 찾아오고 있다. 지난해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HBM을 필두로 DDR5, eSSD 등 기존 제품까지 살아나면서다. 양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불황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진 모양새다. 다만 이전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내준 삼성전자의 압도적 선두 지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올해 자존심 상한 삼성전자와 자신감 붙은 SK하이닉스 간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두 회사의 '메모리 레이스'를 추적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3일 13:21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수장을 교체하자 SK하이닉스가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공개로 맞불을 놓았다. 수율을 공식적으로 오픈하는 건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인공지능(AI) 메모리 패권 다툼 과정에서 그만큼 묘한 신경전이 이어지는 분위기다.대결 구도 중심에 있는 엔비디아는 호성적으로 상승세를 이어갔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엔비디아 쟁탈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SK "HBM3E 수율 80%" 발언에 업계 반응 제각각
권재순 SK하이닉스 수율담당은 22일(현지시각)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5세대 HBM(HBM3E)의 목표 수율인 80%에 거의 도달했다. 생산할 필요한 시간을 50% 단축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수율은 반도체 제조사의 핵심 가치로 꼽힌다. 공정 기술력, 원가경쟁력 등과 직결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 HBM3E 10개를 만들면 이 중 8개는 정상품, 2개는 불량품이라는 의미다. 난도가 높은 최신 제품인데다 양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치다.
이번 언급은 다소 파격적이다. 수율 정보는 중요한 만큼이나 민감해서 영업기밀로 관리되기 때문이다.
의도했는지 알 수 없으나 시점도 묘하다. 삼성전자가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을 경계현 사장에서 전영현 부회장으로 바꾼 다음 날 나오면서다. AI 메모리 2라운드 초입에서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의중으로 읽히는 배경이다.
그동안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60~70%, 삼성전자가 40~50% 수준의 최신 HBM 수율을 확보한 것으로 추정했다. 권 담당 말대로면 양사 수율 격차가 최대 2배 달하게 된다. 이미 후발주자 처지가 된 삼성전자로서는 HBM3E 경쟁에서도 난항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다만 80%라는 숫자에 대한 의견이 엇갈린다. HBM은 여러 개 D램을 실리콘관통전극(TSV) 공정, 첨단 패키징 등을 통해 적층한 고부가 메모리다. HBM3E의 경우 10나노미터(nm)급 5세대(1b) D램이 원재료가 된다.
결국 △1b D램 △TSV △패키징 등 각각의 수율을 복합적으로 계산해야 HBM3E 수율이 나오는데 명확한 수치를 산정하기 애매한 지점이 있다. 제조사마다 공정 방식이나 순서, 측정 방식 등에 차이가 있어서 일대일 비교가 어렵기도 하다.
SK하이닉스는 1b D램 양산에 돌입한 지 1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관련 수율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TSV다. TSV는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는 전극을 투입하는 과정인데 HBM 세대가 거듭될수록 급격하게 난도가 올라가고 있다. D램 생산 수율이 90~100%에 달하더라도 TSV를 거치면 HBM 수율이 대폭 낮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권 담당이 어떠한 기준으로 80%를 제시했는지까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분명한 건 SK하이닉스의 자신감 표출이다.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기술력을 갖췄음을 강조하기 위한 일종의 도발인 셈이다.
반면 삼성전자는 4월부터 8단 HBM3E, 2분기 중 12단 HBM3E 양산 계획을 공표했지만 여러 소문에 휩싸인 상태다. 아직 엔비디아로부터 품질 검증(퀄 테스트)을 통과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K하이닉스와의 수율 격차가 적지 않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엔비디아 '신무기' 출격 임박, 메모리 3사 분주
SK하이닉스의 깜짝 발표에 이어 엔비디아의 '깜짝 실적(어닝 서프라이즈)' 소식이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회계연도 1분기(2024년 2~4월) 매출 260억4400만달러(약 35조6000억원), 영업이익 169억900만달러(약 23조10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각각 전년 동기 대비 262%, 690% 증가한 결과다.
당초 증권가에서는 이 기간 엔비디아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각각 246억9000만달러, 128억3000만달러로 추산했으나 실제는 이를 큰 폭으로 웃돌았다.
엔비디아는 이번 실적에 대해 "H100 GPU 출하가 크게 늘어난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메타, 아마존, 오픈AI 등이 AI 서버 확장에 나서면서 엔비디아의 최고급 칩 주문을 지속한 것이다.
이같은 흐름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엔비디아는 차세대 제품인 '블랙웰' 기반 B100 제작에 한창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AI 공장을 구축해 AI라는 새 상품을 만드는 엔비디아는 다음 성장의 물결을 맞이할 준비가 됐다. 블랙웰이 본격 양산 중으로 이번 분기 출하돼 다음 분기에는 생산량이 더욱 증가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B100이 정식 출시되면 HBM3E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관측된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은 확판을 위해 물밑 작업을 펼칠 전망이다.
SK하이닉스가 선제적으로 수율을 공개한 것도 마케팅 공세 차원으로 풀이된다. 전 부회장 체제를 맞이한 삼성전자는 더 이상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HBM3E 수율 향상에 총력을 기울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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