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K파운드리]뛰는 미·중, 나는 대만, 걷는 한국①뒤늦게 지원 프로그램 마련한 정부, 미중 줄타기 관건
김도현 기자공개 2024-05-30 07:24:38
[편집자주]
우리나라는 '반도체 강국' 중 하나로 꼽힌다. 다만 메모리 의존도가 과도하다는 취약점을 안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정부와 기업이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조성에 적극 나선 배경이다. 파운드리가 집중 육성 분야다. 아울러 코로나 팬데믹이 이어진 사이 파운드리 업계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문제는 이 시기 급성장한 토종 파운드리 회사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반도체 호황기가 한풀 꺾인 탓이다. 팹리스 육성까지 차질을 빚는 '이중고'다. 이를 지탱해야 할 정부는 경쟁국 대비 턱없는 지원만 하고 있는 상태다. 파운드리 업계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개선이 필요한 방향을 짚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28일 11:02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반도체 분업화 경향이 짙어지면서 제조 전반을 담당하는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의 가치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전통적인 설계(팹리스) 기업이 개발한 범용 칩을 사용하던 빅테크까지 자체 반도체 제작에 나서면서 파운드리 플레이어를 향한 러브콜이 쏟아진 덕분이다.다만 상향 평준화되던 파운드리 업계는 점차 격차가 벌어지는 모양새다. 전례 없는 반도체 불황을 겪은 뒤 수요가 인공지능(AI) 시장으로 쏠린 영향이다. 첨단 기술력 또는 압도적인 가격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 지원, 동맹전선 형성 등이 승부를 가르는 요소가 됐다. 문제는 우리나라 경우 경쟁국 대비 부족한 보조금과 네트워크로 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라 전체가 반도체' 대만 추격하는 한·미·중
현시점에서 파운드리 최강국은 대만이다. 대만은 TSMC를 필두로 UMC, PSMC 등이 뒤를 받치면서 전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약 70%를 차지하고 있다.
대만의 강점은 월등한 선두주자 TSMC의 존재다. 30년 이상 업력을 자랑하는 TSMC가 중심을 잡고 전·후방 생태계를 이루는 △팹리스 '미디어텍' △설계 및 생산 지원(디자인하우스) '글로벌유니칩(GUC)' △패키징 및 테스트 전문(OSAT) 'ASE' 등이 힘을 보탠다. 이들 역시 각 부문에서 선두권이다.
TSMC의 경우 대만 곳곳에 반도체 팹을 두고 있다. 이를 기점으로 대만 영토 전반이 '반도체 벨트'를 이룬다. 분야별 협력사 또는 경쟁사 등이 해당 벨트를 둘러싼다.
대만 정부는 경제는 물론 국가안보 차원에서도 핵심인 반도체 활성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의 위협이 도사리는 가운데 이같은 '반도체 방패(실리콘 실드)'는 대만 외교의 근간이 되고 있다.
파운드리 점유율 2위는 한국이다. 삼성전자와 DB하이텍, SK하이닉스시스템아이씨(IC), SK키파운드리 등이 포진하고 있다. 2017년 파운드리사업부를 독립시킨 삼성전자가 단기간에 '완전한 2위'로 올라섰고 나머지 구형(레거시) 반도체를 다루는 업체들이 반등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삼성전자는 TSMC와 격차를 줄이지 못한 채 파운드리 시장 진출을 선언한 미국 인텔의 추격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TSMC와 선단 공정 경쟁이 격화하면서 퀄컴, 엔비디아 등 대형 고객을 내주기도 했다. DB하이텍 등은 8인치(200mm) 반도체 수요 부진에 힘을 내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 정부 차원의 지원은 주요국 중 가장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용인 등지에 반도체 클러스터 구축에 돌입했으나 여러 이슈가 겹치면서 당초 계획된 일정보다 미뤄지는 흐름이다.
수년 전부터 반도체 지원법을 추진했으나 이마저도 여야 의견 충돌 등으로 난항을 겪었다. 이달 윤석열 대통령이 26조원 규모 '반도체 산업 종합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지만 실효성 여부는 지나봐야 한다. 그동안 메모리 중심의 정책이 펼쳐진 게 사실인데다 해당 금액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아쉬운 수준이다.
뒤를 잇는 미국과 중국은 세계대전을 방불케 하는 반도체 패권 다툼의 전면에 서면서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내세워 글로벌 기업의 반도체 공장을 유치하고 있다. 이미 TSMC와 삼성전자가 현지에서 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 중이다. 인텔은 아시아에 쏠린 파운드리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자국 지원 아래 막대한 투자를 단행 중이다.
생산능력(캐파)에서 다소 뒤처진 미국이지만 파운드리 고객인 초대형 팹리스가 즐비한 만큼 언제든지 분위기를 반전시킬 저력이 있다. 반도체 장비, 소프트웨어 등 필수 요소도 꽉 쥐고 있는 점도 무기다.
중국은 미국 제재로 반도체 굴기가 한풀 꺾일 뻔했지만 최근 들어 반등에 성공했다. 애국소비 등 자국 기업 밀어주기 전략이 통하면서다. 계속된 기회 속에 반도체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도 대폭 줄이고 있다.
이에 중국 최대 파운드리사 SMIC는 올 1분기 UMC와 미국 글로벌파운드리스를 넘어 세계 3위에 올랐다. SMIC는 극자외선(EUV) 장비 없이 화웨이의 7나노미터(nm) 기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생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능,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등에서 1~2위 대비 크게 밀리는 게 사실이나 구형 설비로 7나노 칩을 구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간의 이목을 끈 바 있다.
또한 이달 중국은 3440억위안(약 65조원) 규모 반도체 투자기금을 조성했다. 이번 건은 1차(1400억위안), 2차(2000억원위안)에 이은 3차 펀드로 사상 최대 금액이다. 중국의 반도체 육성 의지를 엿볼 수 있는 움직임이다.
◇외로운 샌드위치 신세, K파운드리 '뭉쳐야 산다'
분업화만큼 중요한 게 연결고리다. 역할을 분담한 뒤 이들을 모아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거대한 내수시장을 앞세워 자체 생태계를 만드는 한편 미국과 대만은 일본, 유럽 등과 손을 잡고 연합군을 결성하고 있다.
한국은 연합군에 발을 걸치고 있지만 주도적인 활동은 못 하고 있다.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면 사실상 배제된 처지다. 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완전하게 노선을 정하지 못한 여파다.
미국은 세계 최대 팹리스 보유국이고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소비국이다. 정치와 경제 모두 두 나라와 밀접하게 엮인 한국 입장에서는 어느 한 쪽을 택하기가 쉽지 않다. 특정 기업은 더욱 그렇다. 정부와 산업계가 머리를 맞대고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가는 것이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궁극적으로 양자택일의 시기가 찾아올 텐데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수적이다. 업계에서는 탄탄한 자국 시스템반도체 생태계 확립을 전제조건으로 뽑는다. 소부장-팹리스-디자인하우스-파운드리-OSAT로 잘 짜인 '원팀' 체제를 갖춘다면 우리만의 실리콘 실드를 구축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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