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메모리 레이스]'엔비디아 선수금' 유무, 계약부채에 드러난 격차강력한 HBM 수요 뚜렷, 메모리 업계 이례적 행보
김도현 기자공개 2024-06-03 13:05:55
[편집자주]
메모리 시장에 차디찬 겨울이 지나고 따사로운 봄이 찾아오고 있다. 지난해 희망의 아이콘이었던 HBM을 필두로 DDR5, eSSD 등 기존 제품까지 살아나면서다. 양강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례 없는 불황을 겪으면서 더욱 단단해진 모양새다. 다만 이전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SK하이닉스에 HBM 주도권을 내준 삼성전자의 압도적 선두 지위가 흔들렸기 때문이다. 올해 자존심 상한 삼성전자와 자신감 붙은 SK하이닉스 간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두 회사의 '메모리 레이스'를 추적해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5월 31일 14:49 THE CFO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선점한 건 더 이상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HBM 한정으로만 보면 삼성전자는 분명 추격자다. 현재까지 분위기로는 당분간 이같은 구도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특히 HBM의 경우 엔비디아 등 주요 고객이 미리 대금을 지불한 것으로 나타나 수요가 확실하다는 점이 드러났다. 재무제표 상 계약부채 등 내역을 봤을 때다. 내년 물량까지 거의 완판됐다는 SK하이닉스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협력사 캐파 증대' 힘 실어준 엔비디아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올 1분기 말 기준 계약부채는 2조7459억원이다. 작년 4분기(1조5851억원) 대비 1조2000억원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SK하이닉스는 계약부채에 대해 '고객으로부터 받은 선수금과 반품부채가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메모리는 범용 제품 위주여서 중장기 물량을 확보해놓는 일이 흔치 않다. 주로 3개월 내외 단기 계약 위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인공지능(AI) 서버 핵심으로 거듭난 HBM은 상황이 다르다. 일반 D램처럼 생산능력(캐파)이 풍부하지 않아 수요공급 불균형이 발생했고 고객 맞춤형(커스터마이징)으로 전환됐다.
이 시기 SK하이닉스는 메모리 불황으로 적자 전환하면서 HBM 캐파 투자 여력이 부족했으나 엔비디아로부터 받은 선수금이 이를 상쇄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는 국내외 시설투자를 추진하게 됐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I용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구매담당자 등 엔비디아 임직원들이 SK하이닉스 사업장을 수차례 찾는 등 양사가 밀접하게 교류한 것으로 안다. 재무여건이 안 좋았던 SK하이닉스를 위해 HBM 대금을 선지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수한 거래인 만큼 일반적인 선수금이 아닌 계약부채 항목에 관련 금액을 포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2023년 말과 2024년 1분기 말 선수금은 각각 575억원, 562억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SK하이닉스는 올해 들어서도 엔비디아와의 끈끈함을 과시하고 있다. 5세대 HBM(HBM3E)을 경쟁사보다 먼저 공급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여전히 품질 검증(퀄 테스트) 단계인 것과 대비된다.
김기태 SK하이닉스 부사장은 "빅테크 고객들이 AI 시장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신제품 출시 시점을 앞당기고 있다. 이에 맞춰 우리는 차세대 HBM 등을 적기에 공급할 수 있도록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의 계획을 미리 논의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지지부진한 삼성전자, HBM 사업 시동 언제 걸리나
삼성전자는 반도체 외에도 모바일, 가전, 통신장비 등도 다루는 만큼 계약부채 규모 자체는 SK하이닉스보다 훨씬 크다. 다만 2021년부터 2024년 1분기까지 큰 변화가 없었다. SK하이닉스와 달리 HBM 선수금을 받지 못한 영향으로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주에는 로이터에서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HBM 납품을 위한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다양한 글로벌 파트너들과 HBM 테스트를 순조롭게 진해 중"이라면서 "다수의 업체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 지속 기술과 성능을 검증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 대목에서 확실한 건 삼성전자가 아직 주요 고객에 최신 HBM을 공급하지 못한 점이다. 당초 삼성전자는 상반기 중으로 12단 HBM3E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었으나 한 달을 앞둔 시점에서 목표 달성이 쉽지 않아진 상태다.
앞서 HBM 테스트 미통과 사유로 발열, 전력 효율 등이 거론됐는데 이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힘든 과제로 전해진다. 일반적인 데이터센터는 쿨링 시스템 가동 등에 따른 막대한 전력 소비량이 난제로 꼽힌다. AI 서버는 그 정도가 더 하다. 그만큼 HBM 지표에서 해당 사안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또 다른 문제는 HBM 재료가 되는 일반 D램에서도 삼성전자 경쟁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부분이다. HBM용 D램이 10나노미터(nm)급 4세대(1a)에서 5세대(1b)로 넘어가고 있는데 이 분야에서도 SK하이닉스가 수율(완성품 중 양품 비율) 등의 우위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된다.
여기에 3인자로 여겨진 마이크론까지 HBM3E로 직행하면서 삼성전자보다 엔비디아 공급망에 먼저 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캐파 등에서 국내 업체들 대비 밀리는 게 사실이나 최근 대규모 투자를 예고하면서 빠르게 올라오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의 위기감도 그만큼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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