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스펙트럼 리포트]산업 바이오의 태동, 의약품에서 소재·식품으로 확장하다[총론] 합성생물학 발전이 이끌고 시대적 어젠다가 미는 바이오의 확장
정새임 기자공개 2024-06-07 09:12:12
[편집자주]
무지개는 하나의 빛이 물방울 안에서 반사되고 굴절되며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표현되는 현상이다. 바이오 산업의 발전은 마치 무지개와 같다. 합성생물학의 눈부신 발전은 빛과 물방울의 만남처럼 바이오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히고 있다. 기초연구 단계에서 이제는 산업계의 태동으로 이어지는 레드·화이트·그린바이오. 바이오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 새로운 시장을 더벨이 들여다본다.
이 기사는 2024년 06월 04일 15:16 thebell 에 표출된 기사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고 쓰는 제품을 구성하는 부품이 화학소재가 아닌 '바이오'라면? 생분해되는 플라스틱으로 화학 폐기물 문제를 해소하고 거미가 만들어내는 실크 단백질을 대량생산해 옷을 만든다면. 나아가 미생물로 디젤과 휘발유를 대체할 수 있다면.2000년대 초 태동한 합성생물학의 발전이 바이오의 무궁무진한 확장력을 이끌고 있다. 이 시장을 이끄는 힘은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인류의 근본적 과제에 있다. 달라진 시대적 요구가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한다.
◇분야 확장하는 바이오, 합성생물학의 발전이 이끈 무한한 가능성
레드, 화이트, 그린. 최근 들어 바이오에 다양한 색깔이 입혀진 건 생명공학기술(BT)이 눈에 띄게 발전하면서다. 생물체의 유전체 정보와 그 기능을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이 고유의 특성을 활용하거나 개량해 광범위한 부가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자연에서는 극히 미량만 존재하던 물질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필요에 맞게 유전체 설계도를 만들어 세상에 없던 물질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면서 활용도가 확장되고 있다. 이 기술을 의약품에 적용하면 레드 바이오, 화학산업 소재나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면 화이트 바이오, 작물이나 식품에 적용하면 그린 바이오라고 부른다.
레드·화이트·그린바이오의 구분은 우리나라에서 산업적 분류를 위해 편의상 만들어낸 용어라 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바이오 스펙트럼을 넓힌 근간 기술에서 따온 합성생물학 시장(Synthetic biology market)이라 주로 지칭한다.
실제 합성생물학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의약품에 쓰일 수도 있고 에너지나 소재, 식품 등 다양하게 적용될 수 있다. 마치 무지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곱 가지 색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고 서서히 번지듯이 레드와 화이트, 그린 바이오는 합성생물학이라는 공통된 뿌리에서 뻗어나온 가지와 같다.
아직 기초 연구가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한 만큼 관련 산업도 이제 막 태동하는 단계다. 산업화의 핵심은 '설계(Design)-제작(Build)-시험(Test)-분석(Learn)'을 의미하는 DBTL 순환을 기본 원리로 한 바이오 인프라 시설 '바이오파운드리'에 있다.
필요한 기능을 담은 유전체를 디자인해 제작하고 기능시험을 거쳐 고도화를 이루는 '바텀 업' 방식이다. DNA 조립과 새포 개량 등 복잡한 과정을 얼마나 정교하고 저렴하게 대량 생산할 수 있느냐에 따라 경쟁력이 결정된다.
◇식품·화학업계가 주도, 진정한 융합의 시작
합성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레드·화이트·그린 바이오 산업이 성장하려면 거대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하는 것은 물론 기존 소재를 대체할 기술 연구, 상용화를 위한 설계도 등 다방면에서 연구와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 대학 연구기관부터 스타트업, 대기업과 정부가 모두 뛰어든 배경이다.
한국은 주요 선진국에 비해 성장 속도는 빠르지 않은 편이다. 정부는 최근에야 첨단 바이오 클러스터 구축 등 지원책을 발표했고 이제 막 상용화를 위한 시도가 일어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레드를 제외한 화이트·그린 바이오 성장을 주도하는 쪽이 기존 제약사가 아닌 화학업계, 식품업계라는 점에 있다.
GS칼텍스, LG화학, 대상, CJ제일제당 등 식품·화학 업계를 주도하는 굵직한 기업들이 합성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다. 이는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면서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한다.
이 같은 추세에 따라 한국바이오협회의 역할도 대폭 확대되는 모습이다. 한국바이오협회는 2021년 '화이트바이오 연대협력 협의체'를 발족했다. 여기엔 GS칼텍스, CJ제일제당, 대상 등 기존 회원사를 비롯해 롯데케미칼, 애경유화 등 화학 기업도 참여하고 있다.
협의체는 친환경 고부가가치 화이트 바이오 제품 개발을 위해 바이오와 화학 기업이 협력모델을 발굴하고 초기 시장을 창출하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10개사로 시작한 협의체는 약 3년 만에 36개사로 늘었다.
◇시대적 흐름이 이끄는 산업 성장, 한국은 태동기
이미 생활에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풍족한 사회에 도대체 '왜' 바이오 소재로의 대체가 필요할까. 시대적 어젠다가 달랐던 과거에는 합성생물학이 산업으로 발전할 니즈가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질적 성장을 요하고 친환경 소비를 원하는 시대적 흐름이 레드·화이트·그린 바이오를 성장시키는 주된 요인이다. 특히 먹거리, 입을거리 등 소비자와 밀접한 분야에서 이 같은 요구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이는 석유 연료를 대체할 신재생 에너지의 필요성, 환경오염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화학 폐기물의 폭발적 증가, 장기적 식량난을 대비한 대체제 마련, 기존 치료법으로 정복할 수 없는 병마와의 싸움 등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인류의 근본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분자생물학과 IT 등 관련 기술의 발전으로 합성생물학은 빠른 속도로 연구가 증가하고 전 세계 곳곳에서 상용화 시도가 이어진다. 이미 미국에서는 합성생물학 분야 선구자로 꼽히는 긴코바이오웍스가 대장주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덩달아 실험실에서 산업계로 이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 산업계에선 특출나게 앞서가는 기업은 극히 드물다. 그나마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는 곳은 CJ제일제당이다. 민간 기업 가운데 유일하게 바이오 파운드리 생산 기반을 확보하고 있고 이 분야에서 핵심 인력들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곳이기도 하다. 꽤 적극적으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벤처 중에서는 합성생물학 연구를 이어가는 바이오니아를 필두로 몰젠바이오, 바이오 소재 상업화를 앞둔 큐티스바이오 등이 활약 중이다. 바이오니아를 제외한 대부분은 창업 초기 단계다.
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2010년대 후반으로 넘어오면서 전 세계가 지속가능성이라는 공통적인 어젠다를 설정하면서 기존 화학 소재를 대체할 수 있는 바이오 소재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며 "아직 한국은 산업계가 태동하는 단계로 창업에 도전하는 벤처들이 등장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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